사례관리업무 종료 후 당사자의 연락,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혜선
6년간 애정 쏟았던 현장을 떠났습니다.
퇴사 하는 날까지 여러 주민들과 인사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이별에 충분한 시간은 없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퇴사 후 몇 달 지난 어느 날, 사례관리 사회사업으로 만났던 당사자에게 문자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바뀐 복지사에게 점심을 대접했어요.
메뉴는 소고기 무국. 그런데 너무 잘 먹더군요. 세 그릇 뚝딱 남은 국물도 후루룩.
신 복지사님도 잘 지내고 계신거지요?
이따금씩 연락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상을 알려주기도 하고, 사회사업가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사례관리 사회사업으로 함께 노력해 왔던 일의 근황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반가운 이웃 소식도 전해 듣습니다. 스쳐 지나간 인연을 기억 해 주는 마음이 고맙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론 고민이 있습니다.
‘지금 담당자가 따로 있을 탠데 내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도 되는 걸까?’,
‘공적인 관계가 종료된 후에 관계를 유지해도 되는 걸까?’
헤어짐도 당사자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당사자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립니다.
처음부터 흔쾌히 마음 열어주신 분도 있지만 대부분 마음 거리가 가까워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한 달이 걸리기도 일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사회사업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부지런히 찾아뵙고 인사드리며 당사자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고받은 이야기가 쌓이며 어느 순간 삶을 나누는 존재가 됩니다.
당사자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갑니다.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고민 있을 때 사회사업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당사자도 있습니다.
‘친한 관계’를 목표로 하지 않지만 당사자 삶에 잠시 함께하며 진심으로 응원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사람 사이 온정을 나눕니다.
업무가 종료되었어도 사람 관계까지 단번에 정리하긴 어렵습니다.
당사자를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여기며 만났다면 이별을 위한 마음이 준비될 때를 기다립니다.
당사자 마음 준비 없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고 끊는다면,
그동안 만남을 사회사업가 쪽 필요에 의했던 것이라 오해할지 모릅니다.
당사자를 업무 수단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실천 과정은 인격적이었을지라도 진정성에 의문이 남습니다.
처음 만날 때 당사자 마음 속도에 발맞추었던 것처럼 헤어질 때에도 당사자 마음의 속도를 헤아립니다.
꽁꽁 닫혀있던 마음을 사회사업가에게 처음으로 조심스레 열었을 당사자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처음 마음 준 상대라면 그만큼 헤어짐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사자와 함께 한 시간이 진심이었다면 헤어질 때에도 예를 다 합니다.
당사자 의도에 비추어 지난 실천을 돌아보기
복지사님 잘 지내시지요? 김장은 하셨는지요? 보고싶어요.
예전에 같이 모임 했던 기억이 한 번씩 떠올라요.
바쁜 일상으로 잊고 지낼 쯤 한 번 씩 박 씨 어머님 안부 연락을 받습니다.
사회사업가 일상을 묻기도 하고, 과거에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주민모임에서 알게 된 다른 이웃 근황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박 씨 어머님께서 종종 연락 하시는 이유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 노력 해 왔던 것, 즐거운 추억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마치 ‘덕분에 저 잘 살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받는 듯합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지난 실천을 인정받는 느낌입니다.
당사자의 연락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그리움, 궁금함과 같은 순수한 이유였습니다. 반면에 금전적 부탁, 서비스 지원과 같은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요청을 받는다면 사회사업가도 반갑진 않을 것입니다.
‘왜 이런 부탁을 나에게 하지.’라며 당사자를 향해 불만을 뱉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연락을 계기로 당사자가 기억하는 사회사업가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 입니다.
‘무엇이든 다 해결 해 주겠다.’며 당사자를 무력한 존재로 본 적은 없었을까요?
당사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빼앗진 않았을까요?
그런 경험이 쌓여 사회사업가에게 무엇이든 부탁하면 해결 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요?
당사자의 염치마저 없앴던 건 아닐까요?
달갑지 않은 당사자 연락을 거울삼아 나의 지난 실천을 돌아볼 때입니다.
그리움을 나눌 이웃관계의 부족함
어린 시절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가 멀리 이사 갔습니다.
매일 만나 땀에 흠뻑 젖도록 놀고 서로 집을 오가며 간식도 먹던 일상을 함께할 수 없다는 슬픔이 컸습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때때로 이사 간 친구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너무 그리운 날에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리움을 공유하고 공감 할 존재가 있다는 자체에 위로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맞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새 친구와 신나게 어울려 지내다 보니 이사 간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제 나름 일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별을 경험 해 봤을 것입니다. 멀리 이사 간 친구, 헤어진 연인, 죽음으로 이별한 누군가.
모든 이별이 아픔으로 남지 않습니다.
떠난 이를 함께 기억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다면 이별은 아픔이 아닌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그렇게 때때로 어울려 지내다가 떠올리는 반가운 추억이 됩니다.
퇴사, 업무 변동으로 헤어진 이후에도 종종 사회사업가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운 사람이 떠오를 때 위로와 공감을 나눌 대상이 없는 건 아닐까요?
또는 지나간 인연이 수시로 떠오를 만큼 외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회사업 현장에서는 여러 이유로 담당 사회사업가가 자주 바뀝니다.
그럴 때마다 남겨진 이웃들과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떠난 사회사업가를 그리워할 겨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우리가 만나는 동안 이웃과 인정을 이상삼아 부지런히 돕습니다.
당사자 연락이 곤란한 때에는
연락 주고받기 곤란한 시간 대, 어려운 상황일 때도 있습니다.
만나는 기간 동안 신뢰가 쌓였다면 사회사업가 쪽 사정을 당사자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생계에 쫓겨 바쁘게 살다보니 사람 관계 맺고 유지하기 서툰 당사자도 있을 것입니다.
악한 의도 없이 그리운 마음이 앞서 저지른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당사자 연락을 성가시게 여기며 피하기보다 사회사업가 사정을 솔직하게 전하면 좋겠습니다.
평소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던 사회사업가의 진솔한 부탁을 외면할 당사자가 있을까요?
반면에 부탁하기도 전에 당사자가 먼저 사회사업가 사정을 배려하기도 합니다.
연락하기 편안한 평일 낮 시간대에만 연락하기도 하고 전화보단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라.’며 먼저 연락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배려는 사람과 어울림을 속에서 배웁니다. 타인에게 배려와 존중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타인을 배려합니다.
선한 행동을 따라 합니다. 배려 받을 때보다 기분 좋은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 나보다 상대 입장을 헤아리는 품격이 생깁니다.
책「 동네 이웃과 모임으로 만나기」(이가영, 구슬꿰는실, 2020)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책모임에서 여러 이웃과 어울리며 울고 웃는 경험을 한 은영님은 사람 속에서 우울증을 극복하고 치유 받는 경험을 합니다.
이후 은영님은 자신이 사람을 통해 위로 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살필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마음의 품을 내어주며 치유를 돕습니다. 사회적 경험의 결과입니다.
사회사업가와 당사자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사자를 만나는 동안 예를 갖추었을 때 당사자 역시 사회사업가에게 예를 다합니다.
당사자가 통화하기 편안한 시간대에 전화하고, 방문하기 전에 허락을 구합니다.
가정에 방문해서도 주인 허락을 구한 뒤 앉고, 행동합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을 들어갈 때에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합니다.
작은 행동 속에서 당사자는 존중받음을 느낍니다.
당사자를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서 존중하고 대한만큼 사회사업가도 돌려받습니다.
사회사업가에겐 선물과도 같은 인정
사회사업가로서 일하는 동안 이웃과 인정을 이상 삼아 돕습니다.
약자도 살만하고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주선하며 거듭니다.
당사자는 여러 이웃을 소개받기도 하고 때때로 어울려 지내며 사람살이 온기를 느낍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가까워진 이웃 사이만큼 사회사업가와 관계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딱딱한 사무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업무적 사이를 넘어 이웃 관계를 선물해 준 고마운 존재로 와닿습니다.
때론 우리 지역과 이웃을 잘 아는 일원처럼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주민들에게 사회사업가와 이별은 여느 이웃 간 헤어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일의 시작과 끝처럼 말끔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당사자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기 위함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 위함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 순간 경험한 크고 작은 존중, 함께 어울려 보낸 시간이 쌓여 신뢰를 만듭니다.
사회사업가와 당사자 사이에 관계를 선물합니다.
이웃과 인정을 이상삼아 도왔던 사회사업가에게
당사자가 전하는 따뜻한 안부는 '최고의 찬사'일 것입니다.
첫댓글 '슈퍼비전 글쓰기 모임 : 슈글' 2024년 6월 공부에서 신혜선 선생님이 나눈 뒤 다듬은 글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7.08 00:0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7.08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