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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표현을 제기한 내용으로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 치하에서, 그의 정책을 수행한 아이히만이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현장을 참관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글로 채워져 있다.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재판 현장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관료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책의 내용이 무엇이든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동기이며, 정의감이 없이 단지 자신의 직분만을 충실하게 한다면 누구라도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대중들은 히틀러를 추종했던 인물들의 본성이 ‘악마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아렌트가 지켜본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을 사용하자, 대중들은 아이히만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결국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오랫동안 논쟁을 거쳐 이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디양한 자료와 재판 과정을 통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이히만은 관료로서의 출세욕 이외의 학살에 대한 동기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평가되었고, 관리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단지 그것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 정권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아이히만은 위로부터 하달된 명령과 법을 따랐을 뿐이며, 히틀러 치하에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그의 문제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여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며, 재판 과정 내내 아이히만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은 중간 관리로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여러 곳에 설치된 가스실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된 현실을 알면서도, 자신은 명령에 복종할 뿐이라는 변명과 함께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렌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방대한 양의 소송 서류를 읽고 분석했으며, 다양한 기사와 인터뷰 등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단지 재판 참관기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와 정치적 상황까지를 포괄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렌트는 재판을 참관하면서 법정에서 느꼈던 생각들, 피고인 아이히만의 성장 과정과 삶의 내력, 그리고 히틀러 정권의 대 유대인 정책 등이 갖는 의미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발생했던 유대인 정책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비로소 왜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면밀히게 검토하여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아이히만처럼 상황 속에 휩쓸려 다른 사람의 인생이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1980년의 광주항쟁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의 행위라든지, 최근의 '정권 농단'에 개입했던 인물들의 행위도 결국 ‘악의 평범성’이란 측면에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 있는 다음의 문구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유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악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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