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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훈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그 내용이나 문체들이 너무도 익숙하여 과거에 이미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 역시 비슷하게 생각되었고, 그 까닭은 이미 출간된 책들의 내용들을 추리고 새로운 글을 엮어 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에게는 이미 출간된 3권의 책이 ‘이미 오래 전 절판된’ 것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내용이라고 여겼던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렸다.’라는 ‘일러두기’의 내용은 적어도 나에게는, 저자의 무책임 혹은 만용으로 비춰졌다.
누군가는 구입했고, 또 어느 도서관에서는 장서로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저자의 말 한마디로 그저 없던 것처럼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비록 저자가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에 썼던 글들은 비록 부끄러운 내용일지라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책을 출간했고, 많은 독자들을 보유한 작가의 이러한 ‘선언’이 매우 실망스럽게 여겨졌던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읽는 내내 책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저자의 문체나 글을 구성 등이 지닌 문제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 하나를 구성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노출되어 있고, 나열식의 문체 등이 내용에 집중하기 힘들었다고나 할까?
이 책이 이미 출간된 책들의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엮었다는 ‘일러두기’를 읽고, 실상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로서는 어떤 글이 새로 집필되었고, 또 어떤 내용들이 이미 출간된 책들에 수록된 것인지에 대한 구분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전체 5부로 구성된 내용들 중에서, 뒷부분에 위치한 글들은 시점으로 보아 과거에 집필되었다고 추측될 뿐이었다. 또한 ‘몸’이란 제목의 3부의 내용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여겨졌다. 전체 7편의 연작으로 구성된 ‘여자’라는 산문들은,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때로는 성적인 묘사가 엿보여 자칫 '여성비하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내용들로 특히나 읽는 동안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이 책에서도 저자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나 있고, 그러한 가운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징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과거를 회상하면서 저자와 동년배들의 궁핍하고 신산했던 삶을 떠올리면서, 지금과는 다른 ‘역사’의 현장을 살아왔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도 익숙한 듯한 문체와 내용 등은 만족스럽다고 평가하기가 힘들 것이다. 드리고 자신이 썼던 글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저자의 ‘선언’을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기에, 아마도 당분간은 그의 글은 손에 잡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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