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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현실이 매우 다양하게 적용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주의’라고도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입각한 모든 억압, 폭력, 착취를 종식시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취해졌던 각종 제도나 관습들이 당사자들에게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을 감안한다면,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반폭력’은 일견 다른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각종 제도나 사회 현실이 여전히 성차별적인 요소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을 깨뜨리기 위한 ‘물리적 힘’의 사용에 대해서는 정당성 여부를 깊이 있게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여혐'에 맞선 '남혐'이 강력하게 대두되면서, 극단적인 주장과 ‘언어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일단 독자를 10대 여성으로 상정하고, 그들에게 들려주는 페미니즘에 대한 입문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독자가 단지 10대 여성들에게 한정되지 않고,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은 남성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다. 실상 페미니즘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26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 이해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대단히 유용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역사 또는 실제의 현실에서 벌어진 문제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고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은 매우 쉬운 문체로,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났거나 벌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페미니즘 A부터 Z까지’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주요 개념들을 영어 알파벳 순서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덧붙인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을 풀어서 제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일부 항목에 한국적 현실을 적절히 소개하여 한국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내용이 미국적인 상황과 인물들을 예로 들고 있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쉬운 문체로 친절하게 ‘눈높이’에 맞춰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미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주어졌던 현실이 미국이나 우리 사회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도 내용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제도가 견고하게 시행되고 있었으며, ‘여성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남성과 여성을 떠나 자신의 주체성을 찾고, 자신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페미니즘은 시작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화내면 안 된다’라는 제시어에 마땅히 화가 나는 일이 발생하면 화를 내고, ‘여자니까 하지 말라고’하는 시선에는 당당하게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만들어낸 ‘날씬한 여성’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심한데, 과연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하는 다이어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자의 문화 배경이 미국이기에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과 함께 인종차별이라는 중층적 측면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교차적으로 접근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단지 ‘남성과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백인과 흑인’, '부유층과 빈곤층' 등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이 개인의 삶을 제약하는 미국 사회의 특징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여겨진다. 즉 이제는 페미니즘을 단일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종과 경제적 차이에 따른 복합적인 관점에서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한국 사회도 역시 ‘다문화 사회’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결혼 이민자의 증가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산업 전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저자가 제시하는 ‘교차적으로 접근하는 페미니즘’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하겠다.
또한 책의 구성에서 특징적인 것은 매 항목에 ‘페미니스트 역사’라는 제목으로, 주 항목의 내용과 연결시켜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바로 해 보는 페미니즘’이라는 내용도 곁들여, 독자들이 스스로 페미니즘의 문제에 대해서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미국의 현실과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것을 우리의 상황에 대입하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 그동안의 역사적 상황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문화가 지배적이었기에,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곧바로 우리 현실에도 통용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페미니즘을 어렵게 여기고 있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통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 탐구생활>이라는 제목은 책의 내용과 맞아 떨어지는 선택이었다고 여겨졌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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