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왜 쓰였는가
지난 시리즈에서 홍천 본초연구원의 다과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생강차 한 잔에서 시작해 인진과 구절초를 지나 경학에 닿았던 이야기입니다.
오늘부터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2020년 12월 17일. 코로나가 온 세상을 닫아걸었던 그 겨울이었습니다.
『주행본초학 개론』 출판기념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던 때라, 화면으로 모였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작은 화면 하나에 세 나라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하고 돌아가 한의사가 된 제자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한국말로 하는 강의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의 목적은 책을 알리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강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제가 여지껏 책을 몇 권 했지만 출판 기념회다 뭐다 하는 이런 거 생각지도 않았었어요."
그렇다면 왜 이번에는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가.
"이 책을 선전하고 부수를 많이 늘려서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의학계에 오해되어 있는 또 잘못되어 있는 또 실전(失傳)된 부분, 이런 부분들을 알려야 되겠다."
무엇이 오해되었다는 것인가.
우리는 보통 의학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디가 아프면 병을 고치는 것. 아프면 의사에게 맡기고 약에 나를 내어주는 것.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의학을 베푸는 의사들도, 현존하는 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무언가 오래전부터 잘못 전해져 왔다는 것입니다.
"뭔가 조금 잘못된 부분, 오도된 부분이 오랜 기간을 두고 잘못 전해지고 쌓이고 쌓이고 이러다 보니까 이 정도(正道)가 상실되고 정의가 상실되고..."
그렇게 오해된 상태의 의학을 우리는 바른 의학인 줄 알고 배우고, 그것으로 치료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강연자는 이 일을 사명이라 불렀습니다.
50여 년을 이 분야에 종사하며 의학도들과 대화하고 강연해 온 이유가 하나였다고 합니다.
"우리 한의학의 의학의 본의(本義)를 찾자."
오늘부터 이 강연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한 편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초라는 이름이 왜 잘못되었는지에서 시작해, 인간이 무엇을 잃었는지, 허준이 왜 달빛 아래 주저앉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금 우리가 하는 호흡 이야기로 끝납니다.
천천히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본초(本草)라는 이름은 왜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