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칼럼 3
허준은 어떤 사람이었나
정 성 삼
「약파만록」에 구암 허준(許浚)이 코끼리를 고쳐주어 명성이 자자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 이야기에 살이 붙어 아픈 호랑이를 고쳐주고 금침을 얻은 허준이 그 금침으로 중국 천자의 병을 고쳐준 뒤 병을 고치지 못한 죄로 감옥에 갇힌 중국 의원들을 풀어주자 그 의원들이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책에 적어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동의보감」이라는 설화가 등장하여 허준을 신화로 만들었다.
허준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될 문헌을 찾아 요약해 보았다.
허준은 경기도 김포군 양천의 무인출신 허씨 가문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신분은 중인으로 규정되었다.
그의 이복형은 궁궐을 지키는 내금위이고 동생 허징은 서자이면서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등을 지내고 영의정 노사신의 사위가 되었다.
허준이 의관(醫官)의 길을 택한 동기나 그의 스승에 대한 문헌이 없는 상태이다.
유학자 유희춘의「미암일기」에 허준은 선조2년 1569년에 이조판서 홍담의 추천으로 1573년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허준의 관직(官職)으로 볼 때 장년이후의 삶은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허준이 내의원 관직을 얻은 1571년부터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이다.
이 21년 동안 허준은 내의(內醫)로서 명성을 얻기는 하였으나 최고의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선조23년 1590년 허준은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 품계를 받았다. 이 품계는 「경국대전」이 규정한 서자 출신인 허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인 종3품의 한계를 깰 정도의 예우를 받았다.
둘째, 선조25년 1592년 임진왜란이후 선조가 승하하던 선조41년 1603년 때까지이다.
허준이 선조의 의주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 함으로써 선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선조29년 1596년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친 공으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 중에 하나인 동반(東班)에 적(籍)을 올렸다. 선조37년 1604년에는 임진왜란 공신책봉이 있었는데 허준은 호성공신 3등에 책정되는 한편, 그는 본관인 양천(陽川)의 읍호(邑號)를 받아 양평군(陽平君)이 되었다. 이와 함께 품계도 승진하여 선조39년 1606년 선조의 중환을 호전시킨 공으로 선조는 그에게 조선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승록대부를 주고자 하였으나 사간원·사헌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셋째, 선조41년 1608년부터 그가 죽던 해인 광해군7년 1615년까지이다.
이 7년 기간은 시련기로 선조가 승하한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 의주로 귀양을 가는 등의 불운이 있었고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광해군의 어의(御醫)로서 임금의 측근으로 총애를 받았다.
그는 광해군 아래에서는 의서(醫書)를 주로 편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대표적인 의서가 「동의보감」이다.
허준은 이 책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치료법마다 우리의 한약으로 치료방법을 거의 빠짐없이 설명하고 또한 약 이름을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썼다.
1610년 완성된 동의보감은 총25권, 25책으로 당시 국내 의서인 「의림촬요」를 비롯 중국측 의서 86종을 참고하여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내경편(6권), 외형편(4권), 잡병편(11권), 침구편(1권) 등 다섯 편으로 구성된 백과의학전서는 오늘날까지 한의치료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동의보감은 중국, 일본에 전해져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왔다.
한국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200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허준의 인생역정으로 보면 그의 출세는 조선역사에서 거의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연속이었다. 이는 그의 의술솜씨와 우직한 충성심이 빚어낸 성취였다.
그러나 우리가 허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소설·드라마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소설·드라마의 내용 가운데 허준의 스승이란 유의태가 허구이고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해 놀랄 만 한 깨달음을 아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모두 꾸민 이야기이다.
실제 허준은 30여 년간 조선왕실의 내의원 어의로 활약하면서 신묘한 의술을 펴고 의성(醫聖)이 되고, 서자출신 신분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가 되었다.
그는 동의보감을 비롯해 8종의 의학서적을 집필하여 조선을 대표하는 의학자(醫學者)로 우뚝 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