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에 거주하는 이 모씨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해 평생을 휠체어를 이용해왔다. 그런 그가 대학교에 재학중일 때, 갑자기 학교에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 가려고 했으나 장애인 콜택시는 부르고 짧아야 30분, 길면 2시간이 지나야 탑승이 가능했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원하는 버스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버스정보안내 시스템의 조회버튼을 누르려고 버튼을 찾았다. 하지만 버튼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겨우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춘천시는 2020년 10월부터 ‘장벽 없는 도시’ 사업을 시작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배리어프리’라는 개념을 도입하겠다는 뜻이었다. 배리어프리란 보통 장애인의 시설 이용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개선한다는 뜻이다. 춘천시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편하다’는 이 배리어프리적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모든 정책에 장애인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를 만들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춘천시 대중교통과는 “장애인들이 보다 편하게 버스나 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사업이 없다.”고 밝혔다. 이 모씨는 이에 대해 “버스 정류장을 직접 보면 개선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의 이용은 가능하도록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대중교통과에서는 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시설을 이용하기 불편함을 넘어 이용할 수 없거나,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 규칙>과는 다른 부분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시청과 춘천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나 퇴계동과 후평동 등과 같이 주거시설이 많은 곳의 버스 정류장 20개를 선정해 직접 체크해본 결과다.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버스정류장에는 시각장애인이 위치를 감지할 수 있도록 점자블록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퇴계주공5차 아파트 정류장에서는 점자블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맞은편의 현진에버빌2차 정류장도 마찬가지였으며, 이 문제는 이 구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춘천시청 별관 정류장은 충분히 시청을 방문하기 위해 교통약자가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삭주로에 설치된 대부분의 버스 정류장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이처럼 점자블록이 설치되어있지 않을 경우, 시각장애인들은 정류장의 위치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워 이용에 큰 불편함을 겪는다.
시행규칙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사용을 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선택한 버스의 노선이 어떻고 현재 버스의 위치가 어디인지 보여주는 정보시스템이 있는데, 이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하지만 어떤 버튼이 어떤 기능을 하는 버튼인지에 대한 점자가 없거나 아예 스크린으로 되어있어 버튼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또한 버스노선 안내판의 경우에도 시행규칙에서 “점자안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권장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권장사항이기는 하지만 직접 돌아본 20개의 정류장 중에서는 단 한 곳에도 점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이 경우,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은 버스가 어느 정류장들을 경유하는지는 고사하고, 몇 번 버스가 오는 정류장인지조차 인지하기 힘들게 된다. 실제로 안대를 착용하고 이를 이용해본 춘천 시민 김 모씨(26, 남)는 단 한 번도 정보시스템과 안내판을 이용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점자가 없어 어떤 버튼인지 알기 힘든 버스 정보 시스템의 조작버튼(왼쪽)과 스크린(가운데), 몇번 버스가 오는 지 조차 파악이 힘든 버스 안내판(오른쪽). 퇴계동에 위치한 정류장.
이런 문제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용에 있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 모씨는 “버스 정류장 이용이 불편해서 버스 이용을 기피하게 된다.”고 밝혔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버스정류장은 휠체어의 진출입과 회전 등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휠체어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회전할 수 없게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씨는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 버스가 와도 정류장 옆에서 타는 게 더 편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런 문제점은 직접 돌아본 20개의 정류장 중 8개의 정류장에서 나타났다.
버스정보시스템에 있어서도 휠체어 이용자들의 불편함은 계속됐다. 시행규칙은 “휠체어 사용자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버스정보 조회버튼을 바닥면으로부터 1.2미터 이내에 설치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5개의 정류장은 1.2미터에서 조금 벗어난 것도 아닌, 성장이 끝나지 않은 어린이들이나 허리가 굽은 노약자도 이용하기 힘들 정도의 높이에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정류장 내에서 회전을 할 수 없도록 설계된 정류장(왼쪽)과 손이 닿지 않는 버스정보조회 버튼(오른쪽), 퇴계동.
춘천시 대중교통과는 개선 사업이 없는 이유에 대해 “버스 정류장까지의 이동이 힘들어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개선하더라도 낭비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춘천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문의한 결과, “집 앞까지 와서 편하고 다른 이용객의 눈치가 보이지 않아 버스보다는 장애인 콜택시를 선호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호의 문제이지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강원시작장애인협회에 소속된 한 시각장애를 가진 익명의 인터뷰자는 “버스와 정류장의 편의가 개선된다면, 버스는 장애인 콜택시에 비해 시간이 정해져 있고 대기시간이 짧기 때문에 충분히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 모씨 역시 대중교통과의 답변에 대해 “탑승까지 걸리는 시간의 편차가 너무 커서 약속시간보다 1시간 빨리 도착하거나 1시간 늦게 도착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버스 대신 이용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달라.”며 질책했다. 비장애인인 김 모씨는 “이용을 불편하게 해 놓고 이용률이 낮아 경제성을 이유로 개선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모순적이며 '장벽없는 도시'사업이 정치적 쇼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에서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이 모씨는 “최소한 법에 적혀 있는 정도로는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으며, 김 모씨는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한 것은 노령자나 일반인들도 이용하기 편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는 장애인을 배려하여 사업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는 <2020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를 통해 “강원도는 교통복지 행정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계속 외면한다면, “장벽 없는 도시 사업은 정치적인 도구일 뿐이다.”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