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사슴님의 교우 단상: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
아빠가 오토바이 사고를 낸 탓에 한 생명이 병상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 집 살림이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보니, 인생의 가치관이 뒤바뀌었다. 돈 벌어 호화롭게 사는 것이 아닌 남을 섬기는 일을 하며, 복음전파와 생명을 살리는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두 아이는 간호대를 입학했다.
이 저곳을 돌며 등록금 마련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취업 합격의 기쁨을 전하니 교우들이 경사라고 더 난리다. 책과 장학금, 옷을 주신 분, 심지어 화장품을 주신 분, 편지글로 격려해 주신 분, 게다가 보이지 않게 도움주신 분들로 인해 난, 나눔이 참 따뜻함을 체험했다.
친지에게 옷을 받아와 입혔음에도 싫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감사하다며 입어준 내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고맙고 감사했다.
요 몇 주, 면접 본다고 토닥토닥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니 무삼 예뻐 보이는 것을...
예수병원은 말씀과 찬송이 울려 퍼지고, 기도처가 있으니 힘들 때 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잘 감당 해갈 줄 믿기에 더욱 든든하다.
두 아이 용돈은 못주어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열에 하나를 드렸지만, 이젠 스스로 감격하며 성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친구들보다 10년은 늦게 만나 결혼하여 이룬 우리가족이지만 무릎걸음으로 바짝 주님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해 본다.
들꽃의 사랑 넘치는 가족 여러분, 우리 교회와 직장을 빛내는 자녀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취업합격선물로 “나이팅게일의 눈물”, “아기예수의 성녀 테레사”, “쉐펭 간호 선교사“ 책을 주어야 겠습니다.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를 자녀에게 새겨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랫 글을 추수감사 때 현정이가 예쁜 카드에 써서 내게 준 편지입니다. 기특해서 소개 합니다.
엄마, 아빠 저 현정이예요. 오랜만에 편지를 써봅니다.
요즘 들어서 부쩍 간호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꾸만 하나씩 아픈 부위가 늘어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눈물이 납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너무 고생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철들지 못하고 부모님을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살가운 딸이 되어서 안마도 해드리고 포옹도 해드리고 많이 도와드리는 그런 딸이 되겠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프지 말고 저와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살날이 아직 창창한데 부모님이 빨리 제 곁을 떠날까 두렵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번에 예수병원 면접 준비하면서 성경에 흥미도 조금은 갖게 되었습니다. 조금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저와 오빠를 위해 기도하고 애쓰시는 부모님, 목사님, 전도사님, 대모 권사님, 사랑합니다.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그런 가족이 됩시다.
- 하나밖에 없는 딸 현정이가-
◈ 새벽숲(김영철)님의 교우 단상: 신앙인과 사랑인 ◈
제가 전철로 출퇴근하는 길에 세탁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몸무게가 89kg이 나가다보니 옷가게에서 사 입는 기성복이 맞지 않아 양복점에서 가서 맞춰 입어야 했는데 요즘은 72kg으로 줄어서 기성양복이 척척 맞으니 기성양복을 구입하여 세탁소에서 바지 길이만 줄여 입으면 되니 바지를 줄일 세탁소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계절이 바뀌어 바지를 줄일 일이 생겨 저의 출퇴근 길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세탁소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이 "어서 오세요~" 하고 맞이하고 "무슨 용무로 오셨나요?" 등등... 그런데 작업대 위에 카세트라디오가 설치되어 있고, 그 카세트라디오에서는 성령님을 찬미하는 찬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작업대 옆에는 성경도 놓여 있구요.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많이 닳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사장님이 저렇게 일하면서까지 찬송가를 틀어 놓고 주님을 의지하는데 초보자인 나는 저 분을 본받아 더 열심히 성경말씀도 읽고, 묵상하고, 실천에 옮기고, 찬송가도 열심히 불러야지..." 마음을 먹고 그 세탁소를 단골로 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몇 번 그 세탁소에 다녔을 겁니다. 그런데... 그 세탁소에 다니면서 그 사장님의 태도가 뭔지 모르게 2%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표현할 길이 없는 그 무엇...
며칠 뒤 바지를 줄일 일이 또 생겨 이번에는 골목 안에 있는 다른 세탁소에 맡기러 갔습니다. 세탁소의 자리가 큰길에서 더 들어가야 하고, 규모도 크지 않으며, 더구나 주인은 장애가 있는 듯(약간 발음이 어눌한)한 세탁소였습니다.
첫인상은 전번 세탁소보다 더 허름하다는 인상이었고, 여기 주인은 고객을 맞이하고, 용무를 물어보고, 찾아가는 약속을 잡는 등 전번 주인과 크게 다름이 없는데... 이번 세탁소 안에는 성경도 없고 작업대 위에 찬송가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라디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맡긴 바지를 찾아 나오면서 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세탁소 주인은 골목 안쪽에 있는 자신의 세탁소를 일부러 찾아와준 것에 감사하면서 "바쁘지 않으면 다림질해드릴 시간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으세요?" 하시면서 제가 의뢰하지도 않은 다림질을 해주시는 거에요. 저는 흔쾌히 "그럼요. 기다리고말고요"라고 대답하고 부인인 듯 한 분이 권하는 간이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바지를 찾아 나오면서 저의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공짜 다림질 서비스를 받았다고 해서 느끼는 기쁨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 한 구석에 "아냐. 전번 세탁소 사장님은 사무적으로 고객을 대하지만, 성경을 가까이 놓고 읽으시고, 작업대 위에 카세트라디오까지 설치해 놓고 찬송가가 흘러나오게 하고... 하느님께 청하고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분인데... 이 세탁소는 성경도 없고, 카세트라디오도 없어서 말씀이나 찬송가도 들을 수 없는데...
내가 세탁소를 바꾸면 기독교 신앙인을 팽개치고 신앙인이 아닌 분을 도와주는, 개념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이 세탁소는 자리가 썩 좋지 않고 주인이 기독교인이 아닌 듯이 보이지만
(1)고객을 대함에 있어 '감사'함을 가지고 있고, 그 감사함을 무엇으로든지 표시하는 것을 본 인이 즐거움으로 삼는구나 하는 것이 느꼈고,
(2)그 부인이 객관적으로 보면 매력 있는, 멋진 남성이 아님에도 남편을 대하는 눈빛이 좋 고, 덩달아 고객을 정답게 대하며,
(3)지금은 세탁소를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양복기술자였다는 주인의 고백을 들으면서 더욱 믿음이 가는 점.
이 세 가지로 본다면 전번 세탁소보다는 이번 세탁소가 더 단골로 삼고 싶은 마음이 갔습니다. 여간해서는 단골을 바꾸지 않는 저의 성격(이발소, 목욕탕 등)이지만 이번만큼은 단골세탁소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어느 분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까운가를 생각해보고 두 분 모두 훌륭하지만, 그 분들의 세례 여부는 선택의 기준으로는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뭔가 아쉽다고 생각했던 세탁소 주인의 밖으로 드러나는 태도, 그것은 '사랑'이었음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성경에서 늘 강조하고 양우 목사님이 항상 외치시는 '사랑'을 제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생각들이 우리 들꽃 교우님들이 생각하시는 것에 견줘서 마땅하기는 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