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tiger 2011-07-28
요즘엔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자주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며
한창 젊으셨을 때는 지금의 모습이란 상상도 못했었는데 생각 할 수록 가슴한켠이 아려온다.
우리 부모님들도 여늬 부모님들과 다를게 없이 한평생을 지내셨을 것이란 짐작만 할 뿐이지
실은 그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는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내 눈에 비친 것만, 내가 경험한 것만, 내가 아는 것만 알고 있는 정도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나를 돌아 보며 나한테 가장 가까운 내 가족들한테도
나를 다 보여 줄 수가 없었고, 또 내 생각을 다 알게 해 줄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하루를 끝내고 미시건 호수 건너편으로 지는 석양의 마지막 아름다운 낙조를 보면서
한인간의 삶의 마지막도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였으면 하는 환상을 그려 보았다.
이제 앞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들을 보며 정말 세파에 많이 시달리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는 전쟁을 직접 겪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은 한국이 일제식민지로 2차대전과 6.25 한국전쟁을 몸으로 겪으신 분들이다.
특히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제시대 말에 학병으로 만주까지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오신 분이다.
그리고 5년 후에 또 한국전쟁을 겪어야만 하셨다.
그것도 30도 안된 젊은나이였으니 이번엔 의용군으로 끌려 갈 위기를 맞아 숨어 다니시느라
피난도 엄마와 함께 못가신 것 같았다.
한국전쟁 때엔 이미 결혼을 하신 후로 두딸의 부모가 되어
두살된 언니와 낳은지 두달도 채 안된 나를 등에 업고 친할머니와
1.4후퇴 때에 피난을 가셨다는 이야기는 가끔 엄마로 부터 들었었다.
아버지는 학병시절의 이야기나, 한국전쟁에 당신이 스스로 겪었던 고충을 한번도 입밖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단편적이나마 엄마가 말씀하신 것만으로 짐작 할 뿐이다.
단 한번 아버지께서 오래전에 전쟁중에 겪은 경험을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학병시절에 만주 벌판에서 부대 근방으로 정찰나갔다가
우연찮게 전쟁이 끝났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부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길로 갖고 있던 총자루와 군복을 벗어 버리고 가까운 민가로 내려가
아무 옷이나 얻어 입고는 중국의 청진으로 향하는
긴 한국인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 수 있으셨단다.
한국의 인천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한 기나긴 그 대열은 몇날을 걸어서
청진항구에 도착했고, 인천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서도
또 몇날을 걸려서야 인천항구에 도착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수일 동안에 걸쳐서 중국의 만주에서 부터 한국의 인천항에 도착하기까지 상황은
아비규환으로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아 볼 수가 없었으며,
그 혹독한 일본 군부대와는 또 다른 극한 상황이였다고 한다.
만주에서 부터 생사를 가름하는 위기를 수없이 넘기면서 인천항에 도착한 피난민들의 모습은
죽음의 지옥에서 부터 새로운 삶의 세상으로 나온 사람들 처럼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 어린 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만주에서 부터 아버지와 함께 떠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인천에 도착해서 보니 그 젊은부부 중에 부인은 아기와 함께 남편이 아닌
다른 젊은 남자와 함께 배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감정을 주고 받으며 서로 애증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게 되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 외엔 전쟁을 겪으시며 경험했던 말씀은 전혀 없으셨다.
그 쓴 경험이란 다시 떠올린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닐 것으로 이해가 된다.
90년 가까운 세월을 사셨으니 돌아보면 무슨 일인들 없었을까 싶다.
태어나셨을 때는 나라도 없이 남의 나라 말로 교육을 받으셨고,
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에 전쟁터로 끌려나가 죽을 만큼 고생을 하셨고
해방을 맞아 없어졌던 나라가 다시 만들어지는 혼란과 함께
결혼해서 살기 시작하자마자 또 한국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과 함께 한국의 불안한 정국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젊은시절을 보내고, 겨우 안정을 찾을만 한 시기에
젊지않은 나이로 미국까지 오셔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나의 부모님들은 유난히도 변화무쌍한 일생을 사신 분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분들의 삶의 목적이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겨들도 없으셨을 것 같고 ,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전쟁과 혼란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을 것이라는 짐작이 더 맞을 것 같다.
30여년 전 어느 날 막내인 내 동생은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어려워하지 않고
우등생으로 졸업을 한 뒤, 대학 재학 중에는 공부하기가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힘겨운 나머지 아버지께 하소연을 했었다.
"아버지, 나는 불행한 세대로 태어난 것 같아요."
했더니 그 말에 아버지께서는
"그러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버진 아버지세대가 불행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동생의 말은
"요즘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공해도 점점 심해져서 나쁜 환경에서 살아야만 하고,
또 인간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생존경쟁이 날로 심해지니까요."
아마 그 때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무척 불행했었던 젊은시절을 떠올리셨을 것 같다.
결국 그 세대들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행복한 것 보다는
불행한 것을 먼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었다.
삶의 의미란 말에 나는 언제나 답이 궁한 사람이다.
그 의미란 무엇인지, 또 안다면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김수환추기경 선종 소식 중에서 김수환추기경이 생전에 기자와 인터뷰에서
"사람은 왜 산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기자는 대단히 심오한 답변이라도 기대했으련만 의외로 간단 명료하게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지."
나는 그 질문 자체가 조금은 생뚱맞게 생각됐다.
사는데 이유가 있어야만 하나..., 아니면 꼭 목적이 있어야 하나...
나로서는 살다 보니 그때 그때 당면한 소소한 목적이나 이유가 생기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도 거의 없어졌다.
(지금 말하는 소소한 목적이란 것이 그 당시엔 내 전부를 걸다시피한
절실하게 생각되던 것들이였음에도 지나고 보니
소소하게 생각되리라고는 미처 몰랐었다.)
아직 나의 두남매가 결혼 전이니까 굳이 만든다면 그 아이들의 결혼이 보고 싶다는 것이
목적으로 될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꼭 목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닌성 싶다.
추기경님의 답변대로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으로 다가 아닌가.
좀더 성숙된 인간이라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대로 그 의미에 부합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말이다.
인생을 거의 다 보내고 난 우리 부모님들을 곁에서 보는 딸의 입장에서
험한 세상을 만나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사신 내 부모님들의 삶과,
부모님들에 비해선 내가 태어난 해가 한국전쟁시기였지만
끼니를 걸러 본 적도 없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학비걱정을 해본 적도 없는
비교적 안정적인 시절로 반생을 넘게 보낸 나의 삶을 비교해 보더라도
(각자가 당면했던 사건, 사고들이란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이 당면한 사람들에겐 절실하다는게 나의 생각이므로)
고만고만한 일들로 엮어진 평범한 인생으로 저물어가는
내게 주어진 앞으로의 시간들을 흐지부지 하지 않고,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작은 내 주변이지만 간결하게 정리를 해놓은 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마음 편한 생애 종반기를 보내고 싶은 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면 목적일까...
첫댓글 미스타이거님 부모님연세가
제부모님과 거의 연세가 비슷하신 분들이시네요.
1927년생 친정아버지와 1930년생 어머니시거든요.
저는 전쟁후에 태어났지요.
아버지께서 1970년에 미국에 오셔서
친정식구들이 미국에서 살게 되었어요.
아버지께서는 알렉산드리아 친정집 사다리에서
떨어지셔서 1994년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지금 그 알렉산드리아 친정집에서 살고 계셔요.
위의 글을 14년전에 쓰셨군요.
저는 아주 심각한 일들을 안느끼는 편입니다.
고생했던 일이 생각이 안납니다.
제 친정아버지께서도 본인 고생하신 일보다
늘 주윗분들 도우실 생각만 하시다 돌아가셨어요.
누구나 젊어서 고생하는데 뭐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제가 친정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그러나 저는 남을
그리 도우면서 살아오지 못했어요.
친척분들이 그러셨고 제어머니께서도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위의 글을 읽어보니 전쟁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혜롭게 행동하신 미스타이거님 아버님 참 훌륭하십니다.
이제 더이상 대한민국이 다른나라에 짓밟히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훌륭하신 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생각을 하게하는
값진글을 제가 오늘 읽게 되었네요.감사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겪어신분들은 해방되자 또 전쟁을 겪어셨으니 한분 한분 인생 스토리가
영화나 드라마, 대하 소설인것 같을것 같습니다.
미스 타이거님 아버님께선 학병으로 징집되어 만주까지 가셨군요.
강점기에 독립운동으로 희생되신 분들도 계실테고,
학병으로 끌려가서나 전쟁에 징집된 신분들 전쟁중에 돌아가셨던 분들도 있을테고
피난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실터라 그 험난한 시절에 생존한것만으로도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아마 삶에 의미와 목적을 자식들에게 다 두었을듯.
덕분에 지금의 잘사는 대한민국이 가능했고. 현재는 비록 경제가 많이 나빠지고 있지만,
이또한 극복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