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김주열 열사
김주열 열사는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남원 금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참가 후에 실종되어 4월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이 발견 되었다.
그의 죽음과 참혹한 시체의 발견은 다시 마산의 민주화운동에 붏을 붙였고 마침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2. 춘향이
춘향전은 판소리 12마당의 하나이고조선 영조 ·정조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될 뿐, 작자·연대는 미상입니다.
춘향이는 춘향전에 나오는 여주인공입니다.
줄거리 : 남원부사(南原府使)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退妓) 월매(月梅)의 외동딸 춘향이
서로 사랑에 빠졌을 떄 이도령의 아버지가 서울로 옮기게 되어 두 사람은 이별의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이 때 새로 부임한 남원부사 변학도는 수청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춘향을 옥에 가두고 고초를 받게 하여 사경(死境)에 빠뜨린다.
서울로 간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다.
부사의 생일 잔칫날 각 읍의 수령들이 모인 자리에서 통쾌하게 어사 출또를 하여
부사를 파직시키고 춘향을 구해내어 백년을 해로한다는 이야기
3.김용택
1948 전북 임실
출생
1982 <<창작과비평21신인작가상>>에 시 <섬진강1>을 발표
1986 제6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전라북도 임실군 진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소설책, 만화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1969년 순창농림고교를 졸업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다.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2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밤마다 산은 어둠을 베어 내리고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 깨고
물을 퍼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 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스스로 허리띠를 풀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구나.
섬진강 3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 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 와 섰으니
그만큼 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그대 이 길 돌멩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들었으니
이 땅에 정들었으리.
더 키워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이 바라보는
그대 야윈 등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
섬진강은 30여편정도 된다.
4.공선옥
1963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소설에서부터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따뜻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소설집으로 『피어라 수선화』(1994), 『내 생의 알리바이』(1998), 『멋진 한세상』(2002) 『명랑한 밤길』(2007), 『나는 죽지 않겠다』(2009) 등을 펴냈다. 등단 초기부터 꾸준히 장편소설을 창작하여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1993), 『시절들』(1996), 『수수밭으로 오세요』(2002), 『붉은 포대기』(2003), 『유랑가족』(2005), 『내가 가장 예뻤을 때』(2009), 『영란』(2010), 『꽃 같은 시절』(2011) 등을 발간하였다. 이 가운데 생명에 대한 애착과 모성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도록 했던 『붉은 포대기』와 사람의 터전을 따라 고통의 세월을 보내면서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유랑민들의 애환을 그려낸 『유랑가족』은 공선옥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 하다. 동화 『울지 마 샨타』 등을 비롯하여 산문집으로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2000)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2003), 『행복한 만찬』(2008) 등이 있다.
1995년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고 2004년에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명랑한 밤길』의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제1회 백신애문학상(2008)의 수상자가 되었으며 2009년도에는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5.조태일
현대시인. 전남 곡성(谷城)출생. 호는 죽형(竹兄). 1966년 경희대학 국문과 졸업.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船舶)〉이 당선되었다. 또한 동인지 《신춘시(新春詩)》에 작품을 발표했다. 1969년 8월호부터 1년에 걸쳐, 시전문지 《시인(詩人)》의 주간으로 《아침 선박》(65)과 《식칼론(論)》(71) 등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연작시 〈나의 처녀막 1~5〉에서 청춘의 고뇌와 양심의 갈등을 준열하게 추구하던 그는, 점차 현실에 대한 저항적 자세와 시언어의 민중적 가능성을 개척하는 한편, 〈고여 있는 시(詩)와 흐르는 시〉(71), 〈민중언어의 발전〉(72), 〈민중과 1970년대 시의 주류(主流)〉(73), 〈신동엽론(申東曄論)〉(73) 등의 평론을 통해서, 한국 시단의 낙후성과 한국시의 기교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민중적 감정과 민중적 언어의 시적 결합을 모색했다. 시집 《식칼론》 이후에는 연작시 〈국토(國土) 1~30)〉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작가는 1960년대 이후의 어두운 현실에 가장 과감하게 대결해 나가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조 시인은 1989년부터 광주대에서 후학을 길러내 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1999년 9월 광주대 예술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중 간암으로 작고했다. 조 시인은 2000년 박석무 5·18기념재단 전 이사장 등 지인들이 사후 유공자 등록운동을 벌여 5·18 유공자로 등록돼 국립5·18민주묘지에 이장됐다.
태안사에 조태일 시문학관이 설립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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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야 빨리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