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콘텐츠가 뭐지?” …OTT와 TV, 심의 기준 너무 다르다
OTT와 TV, 심의 기준 달라 멀티미디어 소비자 '혼란'
흉기 흡연 장면 등 노출 수위 제각각... OTT 자율등급제 실시로 간극 커질 듯
영화ㆍ드라마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OTT 플랫폼의 자체 제작 영상물과 TV 방송 콘텐츠의 심의 기준이 달라 멀티미디어 이용자를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콘텐츠 심의 기능이 혼선을 빚고 있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OTT 콘텐츠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영상 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등급 심의를 받는다. 반면 TV로 방영되는 드라마 등 콘텐츠는 ‘방송법’의 규제를 받으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심사받고 있다.
이처럼 적용법과 심의기관이 다르다 보니 허용되는 영상 소재와 노출 장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다르다. TV 방송 기준으로는 19세 판정을 받아야 할 장면이 OTT에서는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는 등 OTT의 영상물들은 대체로 방송 콘텐츠보다 약한 기준의 적용을 받아 제작, 유통되는 추세다.
장 대표적인 사례가 흡연 장면. 15세 이상 관람가인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D.P.>에는 전체 6편 작품 중 5개 편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흡연하는 장면이 아무런 화면처리 없이 그대로 등장한다. 반면, 같은 시청 등급인 JTBC 드라마 <알고 있지만>의 1화에서는 담배를 손으로 가려 흡연 모습이 노출되지 않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19세 이상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불은 붙이지 않는 등 최대한 흡연 장면을 직접 노출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사진1 : JTBC 드라마 <알고 있지만>의 1화 장면. 담배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취한 후 흡연 장면은 손으로 가리는 식으로 연출했다. (사진=티빙 화면 캡쳐) / ▲사진2 :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D.P.>의 2화 장면. 여러명이 흡연하는 장면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화면 캡쳐)
TV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이렇게 다루는 것은 방송법에 따라 방통위의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방송심의규정 제28조(건전성)에서는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정보통신망법에는 흡연 노출과 관련한 조항이 따로 제정돼 있지 않다.
드라마 내에서 사용되는 흉기의 노출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19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은 tvN 드라마 <블라인드>의 1화에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흉기에 전체 모자이크 처리가 됐다. 동일 등급의 JTBC 드라마 <인사이더> 역시 둔기 일부에 모자이크 효과를 적용했다.
그렇다면 OTT 속 흉기들은 어떨까. 지난해 9월, 전 세계적인 흥행에 힘입어 비영어권 최초로 미국 에미상 감독상·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넷플릭스 웹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출연자들이 칼과 같은 흉기를 든 모습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수리남>에서도 상해를 입히는 용도로 사용되는 도끼와 칼 등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송출됐다.
▲사진1 : tvN 드라마 <블라인드>의 1화 장면. 사람을 공격하는 용도의 흉기가 전체 모자이크 처리됐다. (사진= 티빙 화면 캡처) / ▲사진2 :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장면. 참가자를 공격하기 위한 흉기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화면 캡처)
이는 방송 콘텐츠는 ‘범죄의 흉기 묘사에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방송법 제38조(범죄 및 약물 묘사)에 마련돼 있지만, OTT 콘텐츠는 관계 법령인 정보통신망법에서 흉기 묘사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TV 방송 콘텐츠는 방송법에 근거하여 방송에서 노출할 수 있는 표현이 제약되고 방통위는 이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주제, 폭력성, 선정성, 언어 사용, 모방위험의 5가지 기준으로 콘텐츠 심의를 한다. 그러나, OTT 콘텐츠의 기준이 되는 정보통신망법에서는 불법 정보 유통이나 유해 사이트 등에 대한 규제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콘텐츠 자체의 심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7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OTT 영상물에 대한 자율 등급제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영등위의 심의 없이 자체적인 등급 분류를 통해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OTT 업계 관계자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한편으로는 TV 영상물의 심의 기준과의 간극이 더욱 커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메조미디어 2022 OTT 업종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OTT 시장 규모는 지난 3년 내 이용률이 대폭 상승, 지난해에는 국내 OTT 시장 규모가 1조 원대에 달했다. 갈수록 소비자들이 느는 추세인 매체에서 소비자들에 유해한 콘텐츠의 심의가 더 약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도준호 교수는 “OTT 콘텐츠는 현행법상 방송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방송보다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며 "OTT의 영향력이 증가하면 관련 법체계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OTT를 포괄하는 규제정책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 교수는 자율등급제의 시행으로 TV 방송과 OTT의 심의 간극이 커지는 것 아닌가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차별적인 대우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소비자는 한 휴대폰으로 모자이크 처리된 흉기와 칼날이 그대로 드러나는 흉기를 든 출연자들의 모습을 연달아 볼 수 있게 돼, 심의 기능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