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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집사 댁 심방은 큰 충격이었다. 백 목사는 목회 현장이 순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설자는 교인 심방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백 목사는 어떻게 다음 심방을 이어갈까 고심하다 교적부를 뒤져보았다. 등록된 교인 수는 100여 명이나 되었다. 교적부에서는 학습, 세례, 직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석부도 비치되어 있고, 그동안의 주보도 한 권씩 제본되어 있어 지난날 교회의 일들을 참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임자가 목회의 흔적을 이렇게 자료로 남긴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처음 부임한 목회자에게 급선무는 교인들의 가정을 일제 심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 목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했다. 아내와 둘이서 무작정 골목을 헤맬 수도 없고 의처증 남자가 일으킨 소동을 생각하면 조정숙 집사와 동행하는 것도 아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도 바울은 흩어져있는 교회들에 편지를 썼다. ‘그렇다! 교인들의 가정으로 편지를 보내자.’ 백 목사는 그때까지 비교적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우선 50여 명의 주소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임 인사와 함께 그간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썼다.
OOO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는 지난 3월 1일 갈릴리교회에 부임한 백형기 목사입니다.
3년 전 주님의 손에 이끌려 광나루 선지동산에 올라 섬김의 훈련을 받고
이곳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땅끝까지
목회자가 가야 할 곳은 많지만 저는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교회를 위해 오래도록 기도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발전을 거듭했지만 농촌은 여전히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을 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해방 후에는 농촌 재건을 위해 헌신한
고 배민수 목사님의 삼애정신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삼애정신’이란 하나님 사랑, 농촌 사랑, 노동 사랑입니다.
주님은 가장 연약한 우리들을 찾아오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늘진 땅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작은 빛입니다. 작은 빛이라도 모이고, 또 모이면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라도 환하게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늘진 곳을 비추는 사람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평강이 OOO님의 가정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973년 3월 XX일
담임목사 백형기 올림
백 목사는 편지를 다 부치고 나서부터 새벽기도회 때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했다. 김성식 집사 댁을 심방한 다음날부터 그들 부부가 새벽기도회에 동참했다. 첫 주일에 세 사람이 예배했는데 새벽기도회에는 네 사람으로 늘었다. 백 목사에게는 한 사람의 교인이 큰 교회 열 사람보다도 더 귀하게 보였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15:10) 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나 어떻게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할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지금부터는 마을 사람들과 한가하게 얘기를 나눌 시간도 잘 얻을 수 없을 것이었다. 설자도 김 집사댁에서 교회의 지난 일들을 듣고부터는 여러 가지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집 안에 있지 말고 바람을 쐬면 좋겠네요. 마산항 구경이라도 해봅시다.”
“그러지요. 우리도 복음을 전할 지역을 돌아봅시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려 할 때 먼저 그 땅을 정탐했잖아요.”
백 목사와 설자는 교회를 나섰다. 지난번에는 용마산에 올라 마을을 조망했지만 오늘은 용마산을 왼쪽으로 끼고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산자락에는 허름한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바다로 흘러드는 회원천 옆으로 상남초등학교도 보였다. 합포동사무소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 용마산 남쪽 자락을 쳐다보며 걸었다. 용마산은 산이라기보다는 도심의 동산이나 공원 같았다. 산 아래쪽에 용마고등학교와 합포초등학교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마을은 용마산 북쪽과는 딴판이었다. 회원동과 합포동에 비하면 교회가 있는 산호동 쪽은 그늘진 땅이었다. 그런 곳에 창립50주년 기념교회를 세운 대영교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교회를 빨리 성장시키는 것보다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백 목사는 이사야선지의 말씀을 떠올렸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이사야9:1-2) 오래전에는 용마산 북쪽 산호동 일대는 버려진 땅이었다. 옛 마을과 논밭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늪이나 자갈밭이었고, 마산수출자유지역 플랜으로 바다를 매립할 때 산호동 지역도 함께 택지가 조성되었다. 그 후에 갈릴리교회가 세워졌고, 1970년에 수출자유지역이 열리면서 1만여 명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곳이 되었다. 오늘의 허당로를 따라 마산항으로 나왔을 때는 29만 평의 거대한 수출자유무역지역이 눈앞에 펼쳐졌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이사야40:4) 백 목사는 미래를 밝혀가는 목회자의 자부심을 새롭게 다졌다. 마산항 선착장에는 작은 어선들이 나란히 정박해있고 부둣가에는 여기저기 횟집과 술집들이 즐비했다.
두 번째 주일에는 다섯 사람이 예배에 참석했다. 백 목사 부부 외에 지난 주일에 참석했던 홍정기 청년이 또 한 사람의 동료를 데려왔고, 조정숙 집사가 처음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남편 김 집사는 다음주일부터 모 교회로 돌아간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진해 장복교회에 갔다고 했다.
백 목사는 <요한복음 21장 15절-17절> 말씀으로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베드로를 향한 질문은 백 목사의 마음을 그때마다 새롭게 했다. 오늘 설교는 원고를 다듬어 정리한 것이 아니라 백 목사의 가슴속에 젖어 있는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감동을 더 했다. 백 목사는 다음 주일이 부활주일이라고 광고했다. 예배 후 조정숙 집사는 청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조 집사님 오랜만입니다.”
박진태 선생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박 선생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전도사님, 이분은 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셨던 청년입니다.”
조 집사는 백 목사에게 박 선생을 소개했다.
“박 선생님 반갑습니다. 홍 선생님도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백 목사는 두 청년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김 집사님은 오늘 안보이네요.”
박 선생은 조 집사에게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이제 백 목사님이 오셨으니까 우리도 본교회로 돌아와야지요. 오늘은 다니던 교회에 고별인사차 가셨습니다.”
조 집사는 주방으로 가서 점심 식사 준비를 도왔다.
“그저께는 아내와 함께 수출자유무역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래전 뉴스를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굉장히 큰 단지로 보였습니다.”
백 목사는 그저께 나들이했던 일을 얘기했다.
“자유무역지역은 10여 년 전에 외국인 투자유치와 수출 진흥을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지역입니다. 설립 초기에는 기계, 장비제조업, 섬유, 의복 등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차츰 가공식품, 화장품, 피혁제품, 반도체, 정밀기계 등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현재 1만여 명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혹, 단지 안에 신우회 조직이 있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특근이 있을 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약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저는 유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기 전에 교회학교에서 1년 동안 교사로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한때 가득 찼던 교회당이 이렇게 텅 비어서 목사님이 힘드시겠습니다.”
“지난날 교회의 얘기는 조 집사님으로부터 자세히 들었습니다. 교회학교에는 앞으로 박 선생님과 홍 선생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 시간을 내어서 교회에 나왔던 아이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이 교회 앞 공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교회로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두 청년은 점심식사 후에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저녁때 회사로 들어갔다. 저녁에는 김 집사 내외가 함께 예배를 드렸다. 백 목사와 설자는 자유무역지역에서 교회에 나오는 두 청년과 본교회로 돌아온 김성식 집사 내외가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일꾼으로 생각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