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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정상적인 가족제도를 훼손시키는 존재들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기생들 역시 남성중심 사회의 피해자라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기생들을 찾고 소비하는 존재들은 남성들이고, 그것도 대부분 경제적으로 풍족한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주로 술자리에서 향락과 희롱의 대상이 되는 기녀들을 일컬어 ‘해어화(解語花)’나 ‘노류장화(路柳墻花)’라는 표현으로 지칭된다. ‘해어화’란 글자 그대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꽃이란 의미이며, ‘노류장화’는 길거리에 핀 버드나무(路柳)나 담장 위에 핀 꽃(墻花)처럼 누구나 쉽게 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기생들에 대한 인식 역시 대부분 남성들의 기록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기생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들의 기록에 존재하는 기녀들의 모습은 대체로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거나, 남성들을 즐겁게 하는 재주를 지닌 것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역시 기생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보다, 남성들의 시각에 의해 굴절된 모습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생시켰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기 목소리로 기생들의 생각과 생활을 토로하고 있기에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기생들이다. 당시에는 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장한>이라는 잡지를 직접 발간하고, 여기에 수록된 그들의 글을 통해서 신세를 한탄하거나 기생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들을 수록했다고 한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토로하기도 하고, 자기들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내용들도 발견할 수 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기생도 사람이다’라는 제목 아래, 당시 활동하던 기생들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비록 기생이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글도 수록되어 있다. 제3자가 아닌 기생으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이 글들을 통해서 기생들의 생각을 비교적 상세하게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기생들을 찾는 남성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통해서 결국 기생 제도가 남성 중심사회에서 파생된 것이며, 기생들을 천시하면서 찾기도 하는 남성들의 이중적 의식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기생들의 육성을 통해 토로한 글들을 접하게 된다면, 음습하게만 여겨졌던 일반적인 기생관과는 다른 면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어떻게 기생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역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기생이 된 계기와 기생 생활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다. 여기에는 비교적 기생들의 진솔한 목소리가 담겨있는데, 이 역시 <장한>과 같은 기생들의 글로 구성된 잡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3부는 ‘소설 속의 기생’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3편의 소설을 수록하고 있다. 이태준의 <기생 산월이>와 <시드는 꽃>이란 작품에서 기생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뛰어난 작가임에도 그 역시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비해 박화영의 <우리의 참사랑>이라는 작품은 과거 기생이었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작품이다. 아마도 여성으로 짐작되는 작가는 기생의 처지에서 진솔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태준이 바라보는 기생에 대한 형상과는 전혀 다른 면모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생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4부의 내용은 당시의 신문기사나 잡지에 실렸던 기생들의 면모를 전하고 있는데, 일종의 ‘기생열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초로 긴 머리를 자르고 단발로 활동했던 강향란, 영화 <밀정>의 모델이었다는 후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현계월, 비극적 결말로 이끌었던 애절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강명화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대체로 인터뷰나 르포 형식으로 구성된 기사를 쓴 사람들도 역시 남성이다보니, 흥미 위주로 기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글속에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사람들이 기생들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적지 않았고, 또한 기생들 중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들도 적지 않았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생의 생각이나 생활을 알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하여 그들이 느꼈던 고충과 기존의 관념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라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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