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를 앞두고 어느 대회든 나에겐 긴장감과 설레임과 걱정이 앞선다. 역시나 이번대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수영이 많이 걱정이 되었다. 웬지 모르게, 최근 왕산에서 오픈워터가 좀 안풀리더니 영 찜찜하다..
전날 도착해서 수영연습을 하는데도 여전히 찜찜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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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래 사진을 찍고나서 펜스위에 살짝 걸어둔 내 수트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내일 시합은 어떻게 하나?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데, 홍섭이가 들어온다.. 내가 여기서 홍섭이를 기다리느라 대회장 사진도 찍고 수트에 물을 빼고 있기는 했다. 급하게 대회장 안내방송에도 내 배번 992번 수트 실종을 알리고 빨리 내 수트 돌려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해본다. 그러나 이미 내 손을 떠난 수트는 돌아올줄 모른다.. 아,, 내일 시합은 초장부터 웬지 불길하다.
다행이 내 수트 옆에 걸린, 상어 이빨자국에 많이 헐뜯어진 수트가(해녀 경력 20년이상) 눈에 들어왔다. 살짝 사람들의 눈을 살피고, 내가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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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
내일을 위해서 큰집에서 잘려다가 공룡으로 이전하고, 그곳에서 편안한 밤을 잤다. 물론 새벽 2시부터 눈이 떠졌다가 감았다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고,, 새벽 4시50분에 숙소를 나서고,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많은 철인들이 결전을 위해 팔뚝에 배번을 새기고, 짐꾸러미들을 이고지고 언덕을 올라간다.. 6시40분부터 본조비의 'Living on a prayer '를 들으며, 간단히 몸을 풀고 Rolling 으로 입수를 시작한다. 우리팀은 45분 페이스 후미로 이동해서 줄 사이에 섰다. 다시 한번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전 다행히 우리 쌍둥이를 볼 수 있었다. 수영 스타팅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재희가 아픈몸으로 애들을 어떻게든 데리고 와주었다.. 아침 잠도 많은 애들을 그 시간에 깨워서 데려와준게 철인 완주보더 더 힘든데..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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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시작,,, 생각보다는 호흡도 편안하고 주변에서 치고 박는 철인들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최근 구매한 수경에 물이 안들어온다.. 시야도 잘 보이고,, 물론 나는 중간 중간 노란색과 빨간색 아이언맨 부표만 보면서 나아갔다. 약 42분에 수영을 마치고, T1 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T1에서 홍섭이가 들어왔다.
잔차에서는 이번에 양말을 신지 않고 타보기로 했다. 한 3시간 타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자전거도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내 자전거 속도계가 안돌아간다.. 계속 속도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 가민시계를 의존해서 나아갔다. 이번 잔차에서는 무엇보다 '유바(airobar)'의 활용과 그 효과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다. 아마 내가 제대로 에어로바를 이용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단 , 내 상체 체중의 30%이상을 유바에 의지하고, 기존 유바없이 주행할때 상체에 들어간 많은 힘을 소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장거리 주행이 편안해졌다. 더불어, 바람이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여, 자연스럽게 속도를 더 올릴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평속 30k로 달렸다. 91K에 3시간 2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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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차까지는 편안했다. 전혀는 아니지만 힘들지가 않았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충분히 우리 클럽 에이스인 규형형님은 내가 이 참에 멋지게 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나를 위해 전날 베팅한 기혁형님이나 기보를 봐서라도 말이다..
웬걸, T2에서 간단히 근전환하면서 런닝화로 갈아 신고, 런 모자착용하고 런 주로에 나선다. 이상하게 런 주로에 공룡터널 같은 곳을 지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업힐,,, 아침에 올라간 그 길,, 그리고 한참 내려갔다가 또 다시 올라오는데, 이미 태양은 직선으로 내리쬐어 이글이글 거리고, 풍성한 나무아래 그늘은 하염없는 안식과 휴식을 준다. 그러면서 내 몸상태를 계속 체크해본다. 현재 내 몸은 밧데리가 10%에서 8%, 5%로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이미 방전을 예고한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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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 면 어찌 해보겠는데, 20K라고 생각하니 맘이 무겁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거 이미 멘탈로 극복할 만한 선을 넘어선 듯 한 생각에,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런 구간은 더 가관이었다. 업힐과 다운힐이 반복되는데, 중간 중간 주로마다 보급소가 있었다. 물과 이온음료, 콜라, 에너지바, 바나나 ,, 다 좋다, 그 자원봉사자분들의 힘찬구호, 힘내세요, 화이팅 ,, 다 좋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응원을 해도 나에게는 다 짜증으로밖에 안들린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왜 이 짓을 또 하고야 말았는가?
가깝게는 올해 동아마라톤에서 느꼈던 그 고통..
작년 9월 구례를 꾸역 꾸역 완주하면서 느꼈던 그 느낌..
매번 크고 작은 대회에서 '몸을 이렇게 혹사 하면서까지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 ....
힘듬은 철학을 하게 한다. 매번 철인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왜 할까, 그리곤 또 하곤 한다.
나는 지금 걷고 있다. 앞 사람은 달린다. 나도 그들처럼 달리고 싶지만, 나는 달릴 수 가 없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보급소마다 물로 배를 채운다. 허기진 갈증을 물로 채우다 보니 달리기에는 더 안좋아진 상태..
포기와 완주의 경계에서 고민 하고 고민하다, 어느새 마지막 한랩을 남겨두게 되었다. 다소 희망이 보인다. 저 멀리 홍섭이가 보급소에서 자봉들께 물을 잘 비워달라고 작업을 한다.... 즐겁게 달리는 홍섭이를 뒤로 하고, 나는 마지막 랩을 향해 걷다 달리다 한다.
이제 피니쉬라인 쪽 방향이다.
기보가 응원해주고, 이제 피니쉬라인에서 재희가 내 쌍둥이를 데리고 와서 힘차게 응원을 한다. 옆에 유동이도 보인다. 그리고 앞에 외국애들도 보인다. 이때까지도 비몽사몽인 듯...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애들과 세레머니도 했었어야 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손만 번쩍들고 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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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성여행은 이렇게 끝이났다. 내가 고성가서 공룡박물관 가고, 엑스포에서 뭔가 고성 박물관에 맛난 것 먹고 왔다면 이런 여행 후기를 쓰지 못할 것이다.
죽기 살기로 힘든 초여름의 고성의 열기를 느끼고 실제 엄청 먹고왔기에 내가 이렇게 나마 후기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Specially thanks to ;
- 새벽 출발날 잔차 캐리어 잘 달아줘서 무사히 고성까지 가게 해주신 창호행님
- 자봉으로 참전해서 끝까지 고성팀을 잘 케어해 주신 기혁행님
- 함께 선수로는 뛰지 못해 많은 아쉬움속에서도 멀리 고성까지 와서 함께한, 환자자봉 재희
- 자봉 똘마니들 , 기보와 유동이 , 힘든 2일간 full 로 케어하느라, 낮에는 운전 밤에는 음주로..
- 먼 거리를 억지로 따라와준 아무 생각없는 우리 쌍둥이와 재희 아들 수현이
- 새벽아침, 군 떠나는 아들 보내는 어머님의 마음으로 정성스런 식혜와 삶은 달걀 꾸러미를 준비해준 나연누님
- 고성에만 눈길이 가있을때, 데상트에 자봉으로 가셔서 선수들을 독려해준 회장님, 나연누님
- 함께 하진 못했지만, 단톡으로 카페로 많은 응원주신 우리 클럽 회원님들 ,,
결론은,
철인대회는 7할이 런이다.. 아무리 수영, 싸이클 잘해도 결국 최종 승패는 런에서 결정된다. 절대 런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팀의 에이스는 하루 아침에 에이스가 된 것이 아니다. 규형행님의 에이스는 하루 아침의 산물이 아니다. 경기운영과 힘의 안분, 뭐 기록이 좋아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는 신기한 양반이다. 다시 한번 행님에게 자만한 것, 다시 한번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고성에서 경기장에 걸린 현수막의 문구로 이 후기를 마친다.
수영은 물의 저항과의 싸움이고
싸이클은 바람의 저항과의 싸움이고
런은 나의 저항과의 싸움이다. 끝.
첫댓글 역쉬 종호의 멋진후기..잘읽었습니다
와~ 후기 멋지네요 ^^
우리 종호형님 멋져요 ^^ 감동입니다.
후기 잘 봤습니다.
역시 후기는 김훈부 후기야~~
현장의 생동감과 주로의 선수맘이
팍팍 꽂치네...고생했다.
와우 ~~ 종호 행님 멋진후기 감동입니다.~ 또 한번의 깨달음을 얻으신거 같으시네요~ 함께 해서 행복 했습니다. ㅋㅋ
손총 아니었음 대회도 제대로 못치를뻐누했네.. 옆에서 챙겨져서 고마우이...손 많이 가는 형 챙겨줘서.
형님 글을너무잘쓰시는데요ㅎㅎㅎㅎ
고통이 절실히 체감되는 후기였습니다 ㅠㅠ
고생많으셨어요 ㅠㅠ
생생합니다^^~~
부러워요 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