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공평하지 않다
누가 이를 공평하다고 말하겠는가
저 먼 옛날 동래에서 곰방치던 우 선달의 여름이
어저께 성안길에서 마라탕을 마신 최 주사의 여름과
같은 여름일 수 있을까
저 먼 남쪽 거제에서 일하는 유 기사의 여름이
저 먼 북쪽 신촌에서 공부하는 이 학생의 여름과
같은 여름일 수 있을까
비지땀을 흘리며 카페를 찾는 오 대리의 여름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미소를 짓는 박 캐셔의 여름과
같은 여름일 수 있을까
유리창 너머
불볕더위를 바라보며 밀크티를 기다리는 1학년 김아름의 여름이
골목길 위의
아지랑이를 바라보며 명세서를 뜯어보는 3학년 유재현의 여름과
같은 여름일 수 있을까
에어컨 바람에 날아가는 마스크를 꼭 붙잡는 아름이의 여름이
동생의 칭얼댐에 선풍기를 보고선 한숨짓는 재현이의 여름과
같은 여름일 수 있을까
지친 몸 이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을 여는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은 아름이가
지친 몸 이끌고 계단을 내려와 현관을 열던 어제를 빼앗긴 아버지를 기다리는 재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저 높은 곳에서
뙤약볕 아래서
모두가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공평치 못하게도 홀로 서서 견뎌야 한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리어
문득 일어서서 창 밖을 바라보니
저 낮은 곳에서
제각기 갈 길로
사라진 저 사람들은 제각기의 여름들이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까
첫댓글 '같은 여름일 수 있을까'라는 구절의 반복을 통해서, 부각되면서도 그 의미를 확실하게 전해주는 것 같아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