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역 앞에 2인분 한 판에 1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뼈 붙은 진짜 돼지갈비집이 있다고
파주 사는 분께 소개해주고 막상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6월 30일 일요일 말 나온 김에 같이 가보자던 친구와 함께 가보려 하니 시간이 안된답니다.
낙동강 오리알은 파주삼릉을 들러서 가보기 위해 구파발 롯데몰 정류장으로 갑니다.
스맛폰을 가지고 놀다 정류장 하나 더 지나칩니다. 별로 멀지 않아 걸어 가는데 'MOON CLUB'?
미군부대가 철수해서 조그마한 동네가 폐촌이 되어 버렸습니다.
체육공원(조리읍)에 무슨 현대식 슬라이딩 자동문?
알고 보니 여기가 이전한 미군부대 부지입니다.
오늘 판문점에서 정상 회담 하는 날입니다. 머리 위로 헬기들이 바쁩니다.
파주삼릉 정문입니다.
해가 중천에 뜬 지 오랜 시간인데도 인적이 드뭅니다.
10평도 안되는 역사문화관 정문에서 보이는 숲,
앞으로 걸을 산책로에 대한 기대감을 '업' 시켜 줄만큼 아름답습니다.
3개 왕릉 제사 준비를 모두 이곳에서 했던 듯 재실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시원스레 죽죽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 거의 나 혼자 독차지하고 걷는다니 괜히 황송합니다.
위에 보이는 공릉은 한명회의 셋째 딸로 8대 예종의 원비(임금의 정실) 장순왕후의 능입니다.
그외 순릉은 한명회의 넷째 딸로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능입니다.
나머지 영릉은 '이덕화'와 관계 없는 진종소황제(영조의 장남으로 즉위하지 못하고 10세에 사망)와
효순소황후 능입니다.
공릉 곁으로 새로 조성된 산책로가 나옵니다.
새로 개방되었다는 뜻은 이웃한 군부대가 이전하며 통행이 가능케 된 듯 합니다.
얼마나 사람 손을 타지 않았으면 소나무 가지가 치렁치렁할 정도일까요?
피톤치트 산책로라 자랑할 만 합니다. 개중엔 병충해 입은 소나무도 보여 아쉽습니다.
버스를 내려 조리체육공원 정문으로부터 삼릉 입구까지 웬 날파리가 극성인지
손을 휘저으면 손바닥에 부딪힐 정도였습니다. 정문에서 날파리 퇴치용 부채를 줘서
걱정을 많이 했으나 이미 험한 꼴을 겪은 지라 산책로 날파리 정도는 견딜 만 했습니다.
아까 오던 부대 옆 길과 나란한 작은 개울에 잡초와 개구리밥 천지던데 그게 문제일까요?
요즘은 아이들도 외국으로 여행을 가니 왕릉에서 아이들 소풍 온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도 없고,
어른들도 명품아웃렛, 맛집, 영화관, 리조트 정도나 돼야지 왕릉 정도는 성에 차지 않을 겁니다.
나야 한적해서 좋지요.
아 아니네요, 아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도 있군요.
빗방울을 좀 볼 줄 알았는데 날은 점점 더 맑아지고 있습니다. 무슨 장마가 이런가요?
간단히 산책을 마치고 금촌역 앞 갈비집으로 갑니다. 숨은 얼굴 찾기용 사진입니다.
버스를 잘못 타 조리읍 봉일천 시장 앞에서 088 마을 버스로 갈아탑니다.
버스 정류장 건너편 대낮에 문 열어 놓은 돼지 부속구이집이 나를 유혹합니다.
파주, 그중에서도 조리읍에 장군집이란 유명한 부속구이집이 있지요.
갈비집을 찾아가니 휴무입니다. 삼릉에서 12시 경 전화했더니 받질 않아 바빠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차를 갈아탄 조리읍 버스정류장에서 부속고기나 먹을 걸...
금촌 통일시장으로 들어 갑니다, 강호동 얼굴을 내건 쌀국수집이 보입니다.
강호동은 대체 여기까지 와서 뭘 먹은 거야?
두 가지 시키면 모를까, 쌀국수집에서 한 가지로 반주할 만한 음식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만만한 게 소고기쌀국수.
스리라차 소스와 쏘이빈 소스 듬뿍 치고 고수와 숙주나물 다 때려 넣고,
고기가 서울보다 많고 질도 낫네요. 이래서 강호동이 왔었나?
거봐, 반주하긴 좀 모자라잖아? 고수를 좀 더 달라합니다.
웬 호박 쪼가리를 날로 먹는가 했더니 라임 조각이 돌아 누운 것이었네. 에고 국물만 남았으니 우짜?
그나저나 힘든 걸음하고 공쳤으니 갈비를 언제나 먹지?
파주엔 돼지고기가 맛있습니다. 전엔 삼겹살을 샀는데 이번엔 꼬리를 사봅니다.
돼지꼬리를 조리해서 다음에 보여 드리지요. 돼지꼬리는 모양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데
'우라까이'한 막창을 곱창이라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돼지꼬리도 토막내면 들 수 있을 겁니다.
닥다리 블로그
http://blog.daum.net/fotomani
첫댓글 왕릉에 함께 있는 한명회의 두 딸이 가끔 대화도 할까요?
임금과 결혼해서 아버지의 권력유지에는 도움이 됐겠지만
본인들의 인생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네요ㅉㅉ
한명회가 압구정을 잘 지켰으면 후손이 땅재벌이 됐을텐데
생전에 권력을 누렸지만 부관참시 당했던가요?
애비나 가문의 부귀영화를 위해 여자가 제물이 되는 게 어디 조선뿐만이었겠습니까?
서구권에서도 여권이랍시고 내 세울만 한 게 50년대 이후 아닐까요?
여자야 거의 물건 취급... ㅜㅜ
파주 금촌은 군인도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삼겹살(돼지고기)가 맛있습니다.
물론 조리읍 돼지부속도 유명하고요.
벼르고 별러 파주삼릉을 거쳐 금촌역 우리집갈비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은 꽉 닫혀있고
꿩 대신 닭이었는지 닭 대신 꿩이었는지
근방에선 유명하다는 괴흐엉관의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
며칠전 두바이 왕비가 두자녀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 했다던데
더구나 이 왕비는 현 요르단 국왕의 이복 동생 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왕실에 살았던 그녀들도 그리 행복 하지만은 않았나 보네요
자유스러움은 부유함보다도 지킽 만한 가치가 있는 보물과 같은 것인 모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