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상상과 믿음
(IMAGINATION AND BELIEF)
무언가 일이 잘못되면,
당신은 타인을 탓하려고 한다.
그로 인해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만다.
혼란한 마음은 혼란을 더 가져오고,
그렇게 되면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사실상 문제 해결에서 더욱 멀어진다.
이 잘못된 상황을
하나님이 바로잡고 있다는 상상과 믿음은
가장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이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을수록, 해결책은 더 빨리 찾아온다.
‘하나님의 전능함’을 더 깊게 깨달을수록,
우리는 높은 법칙에 다가가게 된다.
영적인 차원에서의 상상, 비전, 믿음은 모든 것을
우리의 정신적 시야 안에 가져올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현시킨다.
“침묵하라. 인내하라. 내가 이 상황을 처리할 것이다(1-7).”
2-1. 상상과 믿음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고 믿은 것이다.
우리가 지닌 믿음은
우리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기를 부여하는 믿음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믿음을 지니고 있으며,
이 믿음이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생계를 꾸리는 것이 쉽지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라고 나는 물었다.
“제 경험으로 보아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의 생계의 어려움이
정신 상태 때문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정신 상태를 만든
원인은 알지 못했으며,
단지 어릴 적의 어떤 정신적 인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어린 시절과 유년의
가정 환경에 대해 조사 하면서,
그의 아버지가 삶은 힘든 투쟁이며
생계를 꾸린다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마음에 심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믿음은 아들의 정신적 시야를 좁혀서,
주위에 있는 더 큰 기회와
가능성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타고난 머리와 배울 의지가 있었다.
내가 예시와 사례로 그에게 상상과 믿음의 힘을 구축하고,
확립된 믿음을 발판 삼아 정신적 시야를 점차 넓혀 가면서,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빠르게 배웠다.
급속도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갔다.
만약 그에게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그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은 왜 자신이 변할 수 없는지에 대한
수백 가지 변명을 찾고 제시한다.
이 변명들은 잠재의식 안의
반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일 믿음과 믿음이 가진 힘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식 속에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정신적 정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노력에 따른
확실한 결과를 기대한다.
이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노력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과가 확실히
자신의 노력에 따라온다고 느끼는데,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실천가와 창작가인 경우가 많다.
당신은 이들의 성과 뒤에는
항상 일관된 창조적 상상력이 있음을 보게 된다.
당신은 창작물을 작업할 때,
그것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
당신이 노력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당신은 단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형성할 뿐이다.
따라서 당신이 성취하고 있다고 믿는 것을
당신은 성취한다.
우리 대부분은 과거에 심어진
부정적 인상과 싸우고 있다.
우리가 그 과거의 사실을 인식하면
우리는 그 부정적 인상에
너무 많은 힘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바람을 이루기 위해
그 거대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제거해야 할
장애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렇다면 왜 어릴 적에 심어진 정신적 인상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가?
우리가 장애물을 덜 인식할수록,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장애물도 적어지게 된다.
소위 장애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디딤돌로 여기고, 목표에 시선을 고정하라.
극도로 예민하지만 똑똑하고 재능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 어떤 형태로든
불친절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매 맞는 아이처럼
상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과민함의 진짜 원인이다.
만약 그 누구도 그녀를 공격하지 않으며,
단지 상상 속 두려움이 그녀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그녀는 자유롭게 될 것이다.
물론 그녀가 자유롭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다.
어느 날 뉴욕에서 매우 계몽된 여성을 만났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과도하게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예민한가요?“
잘 모르겠어요.” 대답했다.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을 깎아내릴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죠. 그렇지 않나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대답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그 원인을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계속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아마도 당신이 어릴 때 가난했고,
사회적 혜택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친절한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그녀는 그 말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것으로 인해 당신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배려를 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되었죠.”
그녀는 이에 동의하며 물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아는 거죠?”
“저도 한때 사람들의 의견에
매우 예민했던 사람이거든요.
미국에서 초기에 겪었던 일들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어요.
저는 제 믿음을 바꾸면서 예민함을 극복했죠.”
"어떻게 믿음을 바꾼거죠?” 그녀는 물었다.
“우선 저는 신이 저를 돕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저에게 친절하고 우호적이기에,
제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조차 저만큼
많은 친구를 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을 걱정해야 할까요?
그때부터 저는 예민함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그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가졌던 믿음보다 더 새롭고, 강하고,
보다 나은 믿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생명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특정 수의 사람들을 주었으며,
이들이 동료 영혼이라는 믿음입니다.
동료 영혼들을 더 많이 찾으려 할수록,
더 많은 동료 영혼들과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줌다, 그리스도와의 대화”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