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더 가지려는 사람들과 가지려는 사람들의 반란! ◈
미국 대선에서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한편으론 200여 년의 역사밖에 안 된 나라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겠다는 말로 충격을 억누르다, 반만년의 역사를 떠벌리는 나라도 비슷한 일을 먼저 겪었음을 인지하고 꼭 연조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난 당선인에 관하여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그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 심지어 짓는 표정이나 입 모양에서 사람(청중)에 대한 배려나 존중감을 찾을 수 없음이 그 첫째요, 자국의 이익이라는 말로 인접 나라와의 국경을 높은 담으로 차단하겠다는 발상에서 성정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이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여 남발한다.(대통령 재임 기간 중 2만 건이 넘는 거짓말을 남발함)
그런 사람이 어떻게 미국이란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곰곰이와 함께 천변을 걷다 얻은 결론은, ‘더 가지려는 사람’과 ‘이제는 가져보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코미디가 곁들여진 해프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는 천박한 역사와 말초적인 인간 삶의 비애가 각지게 스며 있다.
가진 자들은 변화에 몸서리친다. “지금 이대로가 좋사오니”를 가장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에 의한 변화만 용납할 뿐, 타인이나 특히 자신과 반하는 세력에 의한 변화는 극렬하게 경계한다. 그러니 공유하자, 더불어 살자, 존중하며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을 어찌 자신들의 지도자로 삼으려 하겠는가.
또 한 부류는 “이제는 나도 가져보고 싶다”는 욕망에 지배당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는 결코 가질 수 없다. 그러니 갖게 해주겠다는 사람에게 의존하여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전자들은 지켜내려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니,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는 사악한 사람들과 어리석은 사람들이 연대하여 공연된 막장드라마임이 분명하다.
이 슬픈 사건에 종교도 큰 몫을 했다. 하느님의 뜻은 그들의 입에서 단골처럼 흘러내렸고, 여러모로 응원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나라가 어쩌면 이리도 닮은 꼴인지,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가 미국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난 하느님 나라의 시민권자이니 하느님 뜻을 제대로 알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