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82년 아케이드 게임이 처음 선보이며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절.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게이머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소년이 게임 선수권 대회에 나가지만 아깝게 결승에서 패합니다. 한편으론 NASA에서 게임과 플레이 영상이 담긴 캡슐을 우주로 쏘아올리기도 했고요.
그 후로 30년이 흘러 현재. 게임천재 소년은 비디오 게임기와 주변기기를 설치하는 기사가 되었고 어릴적 함께 오락실을 다니던 친구는 무려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NASA가 쏘아올린 메시지를 자신들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로 오독한 외계의 지적존재들은 아케이드 게임을 그대로 구현한 방식으로 지구를 침략 대결을 신청합니다.
이제 30년 전 반짝이는 삶의 15분을 즐겼던 소년은 다시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기회를.. 잡나?
아이디어가 매우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이렇게 결과물이 나오고 보면 누구나 생각했을 법 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정작 여태 누구도 이런 형태로 구현해본적 없는. 새롭지만 익숙한 아이디어 말입니다. 성인 관객들은 물론이고 극중에서 언급했듯이 리메이크한 버젼을 스마트폰으로 즐긴 요즘 세대들에게도 나름 어필할 만한 고전게임들이 현대의 기술로 화면에 3D화 하여 구현된다니 영상적으로도 신기할 일입니다. 게다가 감독은 크리스 콜럼버스고 이외에도 알아주는 개그맨들이 주연자리를 차지했어요. 근작들이 영 빌빌한 아담샌들러가 메인이긴 하지만 케빈 제임스의 최근 타율은 좋고 거기다가 왕좌의 게임 생존왕 피터 딘클리지도 나옵니다. 기대가 될만한 기획이에요. 예고편도 제법 잘 뽑혔고요.
하지만 결과물은 많이 아쉽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식피식 웃긴 했지만 엔딩크레딧을 보고나면 껄쩍지근하달까요.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생각해봤습니다. 영화는 잽 같은 개그와 앞뒤를 잘 맞춘 설정들 특장점을 잘 살린 그래픽으로 가득해요. 전체적인 줄거리는 매우 익숙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세대를 초월해서 꾸준히 사랑받는 테마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뜨뜻 미지근한 데에는 결정적으로 클라이맥스가 없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존재하긴 합니다. 그 클라이맥스를 위해 첫 장면부터 꾸준히 이야기를 쌓아올리기도 하고요. 적어도 '저 자리에 저 인간은 왜 있어?'싶은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아요. 하지만 정작 가장 짜릿해야할 부분에서 영화는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후반부 외계인의 마지막 침공은 크게 두 이야기로 나뉩니다. 지상에서 강습해오는 적들을 대항하는 러드로우와 에디. 그리고 외계인 모선으로 직접 들어가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는 샘 일행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러드로우의 짝사랑 게임 캐릭터, 샘의 어릴적 트라우마인 동키콩이 배치되어 있는데 양쪽 모두 초반부터 복선을 깔아두었어요. 설계는 나쁘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이들을 기승전결의 물결에 편입시켜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에 실패합니다. 주인공들은 '지구의 위기야!' '어릴적 트라우마야!' '나의 드림러버!' 라면서 느낌표를 남발하는데 관객 입장에선 심드렁하다는 겁니다. 그것도 영화의 하이라이트여야할 부분에서!!
일단은 지나치게 친절한 복선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처음 5분동안 제시되는 떡밥들을 보면서 저건 저렇게 요건 요렇게 써먹겠구나, 생각했던 것을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진행시키려면 감정의 진폭을 크게 만들 요소, 그리고 잔잔한 잽들을 적절히 섞어 쿵더덕 쿵덕 박자를 맞추는 연출이 필요해요. 그런데 영화는 그런 노력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인 윌이 후반부 깜짝 등장하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메인스트림에서 내쳐진 탕아들이 자력갱생을 위해 나섰다가 큰 위기에 처한 순간 자신의 자리와 안전마저 박차고 따라와준 친구가 등장해 그들을 돕는다는 결정적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시나 영화 처음에 던진 떡밥을 활용해요. 예, 설계는 괜찮게 되어 있다니까요. 하지만 이걸 빵 터뜨리기 위해서 잡아 끌어야할 호흡을 쉬지 않고 재채기마냥 불쑥 내뱉어요. 위기로 작용한 개구리 캐릭터가 나타난 호흡도 뜬금없고 위기가 해소되는 호흡도 급합니다.
여기선 좀 더 극단적 위기 상황을 만들어주면서 인물들에 동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해요. 그냥 그렇게 설렁설렁 넘길 일이 아니라니깐. 이 장면에서의 위기상황이나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이 거의 흡사한 '토이스토리3'의 소각장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바로 이 장면...)
동키콩을 모방한 외계인의 마지막 미션에서도 위기는 싱겁게 해소됩니다. 여전히 그 상황을 위해 사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블럭들이 있음에도 그냥 허비해버려요.
하나 더하자면 인간측에서 위기를 조성하는 인물로 에디(피터 딘클리지)와 포터(브라이언 콕스)가 있는데 한쪽은 위기를 만들지만 싱겁게 해소되고 다른 한쪽은 잔뜩 분위기만 잡고 말아요. 계속 이런 식입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전반부의 신선한 아이디어, 그리고 제법 그럴듯하게 설정들을 잡아가며 조성한 분위기를 막판에 흐지부지 흐려버립니다. 영화의 뒤쪽 절반은 앞쪽 절반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탕탕!
80년대 오락실에 심취했던 사람들이라면 깨나 향수를 자극할 장면들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세대도 다르고(정말?) 오락실엔 자주 가보질 못한 터라 고작해야 갤러그와 동키콩 정도만 알겠더군요. 게임보이들은 좀 더 많은 재미를 찾을 수 있었으려나요?
영화의 설정과 아담 샌들러 주연이란 점 외에 사전 정보 없이 봤는데 캐스팅 보는 재미는 괜찮더군요.
일단 바이올렛으로 나온 미셸 모나한! 로우틴 아들을 둔 이혼녀 역에 이제 세월의 흔적도 느껴지지만 여전히 예쁩니다. 좀 더 많은 영화에 좋은/예쁜 역할로 나와주세요 ㅠㅠ
숀빈과 브라이언 콕스도 나옵니다. 각각 영국과 미국의 군인으로 등장하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숀빈은 죽지 않습니다.
30락의 제인 크라코스키도 그리고 이 영화와 비슷한 느낌의 고전 고스트 버스터즈의 댄 애크로이드 모습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특별출연으로 세레나 윌리엄스와 마샤 스튜어트가 본이 역할로 나옵니다. 세레나의 경우 제법 대사도 있어요. ㅎㅎ
+
사실 설정을 놓고 보자면 외계인들의 행동양식은 해괴합니다. 저 정도 능력이 있으면 그냥 단박에 쳐들어올 것이지 지구측에서 보낸 게임을 활용한 미션을 통해 대결을 한다니요. 게다가 여기서 지구인이 이기면 순순히 물러가겠다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룰에 대한 집착은 어떻고요. 정말 고지식할 정도로 고전게임룰에 충실해서 심지어 지구인의 치팅을 이유로 화를 냅니다. (그런데 이 치팅은 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극중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공격이 있을 적마다 지구인들에게 꼬박꼬박 공격장소와 일시를 공지합니다.
이때 취하는 방식이 방송전파해킹, 이른바 전파납치인데요. 이 지점이 흥미로운 것이 87년 미국서 진짜로 방송전파를 누군가 가로채서 기이한 영상을 내보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래 링크가 당시 장면 녹화분인데요. (기괴함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sM7Q1WiepoQ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는 수수께끼 인물이 뒤집어 쓰고 있는 가면은 맥스 헤드룸이라는 CG 캐릭터 가면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을 모선으로 초대할 때에 이 맥스 헤드룸 캐릭터가 등장하지요. 깨알같은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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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버트(의 모습을 한 외계인)가 치즈볼을 좋아해서 아담 샌들러가 계속 던져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건 후반부 큐버트가 레이디 리사로 변신하는 결말을 대비한 잤잤 복선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러니까 레이디 리사의 흡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음, 흐흠... 보여주는 것이지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잤잤까지 써주실 줄이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