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입맞춤
나비의 입맞춤(Butterfly Kisses)
최정열
바람은 건조한 고독의 냄새를 가득 안고 얼굴로 달려든다. 수많은 얼굴을 지닌
숱한 바람의 냄새들.
고독을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 지독한 상상일 것이다.
하지만 운명만큼 고독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명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먼 사막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생명이 없다고 말하는 사막에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우롱이라도 하듯이
야생화가 가끔씩 피어있다.
먼지의 향기. 불어오는 사막의 바람은 먼지의 향기를 허공에 날리며
삭막한 사막의 풍경을 연출해
낸다. 먼지의 향기는 명진에게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며 아롱다롱한
꽃무늬로 장식을 했다.
먼지의 냄새를 향기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슴에
고독이 치밀어 오를 때
퀴퀴한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그 지독한 향기. 그것은
강한 고독을 겪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의 향기였다. 먼지의 향기는 짧은 순간의 운명
처럼 고독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잠깐 머물다가 함몰되어 스러지고 가슴에 강한 여운만
을 남겨놓는다.
야생화의 주위로 벌들이 마치 어둠속을 날아다니는 상념과도 같이
날아다니고 있다.
벌들의 날갯짓이 비명처럼 명진의 가슴으로 다가왔고, 벌들은
안간힘을 쓰며 매몰찬 야생화
주위를 앵앵하고 날아다닌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듯, 얼마 되지 않은 사막의
야생화는 자신의 꿀을 지키기 위해 꽃잎을 닫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는 고독한
운명을 닮은 바람 줄기. 야생화에 머무르려는 벌들은 바람줄기에
내쳐져서 달콤함을 포기한 채
그대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시름에 겨워 날아왔다.
사막의 바람에 시달린 넓은 나비의 날개는 기운을 잃고 안타까이
야생화의 위에 그 몸을 얹었다.
명진은 그 장면을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어둠에 빛나는
별처럼 명진의 가슴에서 걷잡을 수
없는 추억의 물결이 몰아쳤다. 그의 눈에 한 여자가 풀밭을 뛰어
다니는 것이 비쳐진다.
그녀가 보이자 그는 그녀를 잡기라도 할 듯이 손을 내밀어 보지만
손을 내밀자 여자는 퍽
하면서 조각조각 깨져서 날아갔다. 잡을 수 없는 환상은 그의
가슴에 한만을 남겨놓을 뿐이다.
명진은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내쉬며 이미 깨어진 조각 환상을
다시 꿈꾸어 본다. 그런 그를
조롱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막의 바람이 그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삶이란 꿈을 좇는 현실인가 아니면 현실을 좇는 꿈인가? 둘 다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좇는 현실이지만 명진에게는 삶이 현실을 좇는 꿈이었다.
꿈은 항상 달콤한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흉측한 현실로 깨어진다. 그리고 그 현실의 끝에는
항상 고독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막에 길이 열려 있다. 그 길을 따라 명진은 마약에 취한 듯이
몽롱한 눈빛으로 차를 몬다.
사막에 그어진 길은 마치 엉성한 미술가의 불규칙한 구도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마냥
춤을 추고 있었다.
대개의 정신병원들이 그렇듯이 명진이 다니는 병원도 흉물스럽게
흰색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명진에게 흰색은 정말로 흉물스러운 색깔이었다. 모든 것을 덮어
버리면서 자기만 교묘히
아름다운 체 내세우는,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런 가장무도회의
가면 같은 색깔이다. 명진은 그 색깔이 싫었고, 또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선택한 직업이기도 했다.
"닥터 한, 12호실의 환자입니다. 약간의 유포리아(Euphoria; 다행감.
무조건 유쾌한 정서를
가진 쾌락적 정서의 첫 단계. 뭐든지 낙천적이며 마음 편한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정신병이
진행되면서 의기양양감에 취하게 되는 2번째 단계를 지나 기고만장감에
이르게 된다.
어떤 때에는 심한 우울증을 수반한다.) 증세와 또 환시장애(Visual Disorder;
환각인 Hallucination보다는 약하지만 정신장애의 일종이다. 때로 단순하게
불빛이나 불꽃 등
빛을 보게 되는 현상이다.)가 있습니다."
간호사의 말을 들으면서 명진은 차트를 들고서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단순 일색인 벽들.
어딘지 모를 긴 관을 통해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명진은 12호실 앞에 섰다.
"빌어먹을!"
그는 이렇게 조용하지만 강하게 소리쳤다. 12호실. 완전하다는 의미.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명진은 그 12라는 숫자도 싫어했다. 그 숫자는 신의 뜻으로 알려진
완전한 부호. 그렇기에 인간의
모든 것은 12로써 완성되었다. 12달, 12시간, 12지신, 12제자, 그리고
그에 파생한 360이란 숫자도
끔찍한 음모처럼 느껴졌다. 완벽하지 못한 명진에게 완벽을 가장하며
다가오는 그 숫자들.
명진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여자가 파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만약에
붉은 옷이나 하얀 옷을
입고 있다면 명진은 정말로 미칠 것이다. 여자는 그저 창밖을 쳐다보고
서있었고,
명진은 차트를 펼치며 말했다.
"닥터 한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두 어깨에서 이상하게
나비가 날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명진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하자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다시 나비가 그의 눈앞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어댔고, 그가 그 나비를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나비는 그가 손을 내밀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일종의 환시였던가?
명진은 크게 숨을 내쉬면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우선 검진을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그대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나비예요. 빛 속에서 나비들이 헤엄을 치고 있어요."
여자가 이렇게 말하자 명진의 머릿속에 모든 생각이 지워져 버렸다.
그저 그의 눈은 환각에
취한 것처럼 나비를 좇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환자인 것처럼 흐느적대며
걸어가 자신도 모르게
여자의 옆에 섰다. 창밖에는 주차장에 몇 대의 차가 서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자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인지 수없이 많은 나비들이 보였다. 나비들은 꽃이
만발한 들판으로 날아다니고
아름다운 불꽃들이 나비들의 날개에서 마구 산란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아요?"
여자의 말에 명진은 숨을 죽였다. 어째서 나비들이 저렇게 많이
날아다니는 걸까?
저 나비들은 어디서 왔고, 또 무슨 의미를 갖고 있을까? 명진은
이렇게 생각하며 한참 동안
여자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에 노크소리가 나면서
그 환각은 퍽 하는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 명진은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닥터 한, 전화 왔습니다."
간호사가 진료실 밖에서 말하자 명진은 놀라서 약간은 큰소리로 말했다.
"메시지 받아 놓으세요."
명진의 눈에 더 이상 나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덩그마니 주차된
차 몇 대만이 보일 뿐이다.
여자가 진료의자에 앉는 행동이 수없이 많은 세월이 걸리는 느낌이다.
그녀의 동작은 하나하나씩
끊어져서 마치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명진은 의자에 앉아서
빤히 자신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그녀를 보고는 눈을 다시 감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나타난 그
깊숙한 의미. 그것을 감당해 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송은영이에요."
"예, 송은영씨."
명진은 은영의 말을 듣고서야 환각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떴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송은영씨."
명진은 다급히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은영의 말에 그의
입은 다물어졌다.
"선생님은 버터플라이 키스라고 들어보셨어요?"
그 단어가 맹렬히 달려들어 명진의 가슴을 잔인하게 물어뜯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인가?
버터플라이 키스. 명진의 눈에 나비와 키스를 하는 여자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토끼풀이 지천으로
깔려있던 풀밭. 그 풀밭에서 뛰놀던 여자는 버터플라이의 키스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던가?
"아름답지 않아요? 버터플라이 키스!"
은영의 말은 계속되었다. 마치 혼자서 하는 독백처럼.
"푸른 풀밭에 잠들듯이 누워있는 순백의 여인에게 마법처럼
다가와서는 키스를 남기고 사라지는 나비.
그것은 영원히 잠들라고 하는 주문과도 같아요."
명진은 은영을 진료할 수 없었다. 마치 은영의 말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이 명진의 이마에
키스를 남기고 사라진다.
"영원히 자면서 꿈을 꿔요.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고 그 불꽃들
하나하나가 나비로 변해서 날아와요.
그리고는 잠든 순백의 여인을 감싸고 하늘로 오르지요.
창공에는 온통 나비뿐이에요."
은영은 마치 온 방에 나비가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인지 두 손을
포개어 나비를 손바닥에 담는 시늉을 한다.
명진도 나비를 볼 수 있었다. 그 나비의 키스는 명진에게서
그녀를 완전히 앗아가 버렸지만 그래도
명진은 나비를 본다는 것은 그녀를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버터플라이 키스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송은영씨."
명진이 왜 이렇게 그녀에게 말했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유포리아에 빠져 있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말이 될 지도 모르는 말이다. 자신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서 만족감을 가진 환자의 환상을
깨는 치료는 치료가 아니라 독약이었다. 하지만 독약도 달콤할
수는 있었다.
"버터플라이 키스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겁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내와 똑같이 닮은 딸의
침대 맡에서 옛날이야기를 해주지요. 아버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딸의 머리에 꽂은 꽃에서 나비가
키스를 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딸은 커
나갑니다."
은영은 정신병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이상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고요히 명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16살 때, 딸은 아버지의 입이 아닌 뺨에 키스를 하지요. 이제
딸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모해 갔던 겁니다."
왠지 모르게 은영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 고였고, 명진은 그
눈물에서 찬란히 부서지는 불꽃을 본다.
마치 환시에 걸린 환자처럼. 아니 명진은 언제부터인지 환시
환자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병에 걸린 환자와도 같이.
"결혼식 때, 딸은 아버지보고 울지 말라 하며 자신도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아직도
침대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던 그 딸의 모습이 비치는데, 이제
딸은 영원히 떠나는 것입니다.
버터플라이처럼 날개를 펴고 아버지를 홀로 둔 채로 세상을
날아가는 거지요."
명진의 말을 듣던 은영의 뺨 위로 기어이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허공으로 떨어지는 그 눈물방울은
갑자기 나비의 모습으로 변하며 찬란한 불꽃을 그 날개에서
뿜어냈다. 명진은 그 불꽃의 찬란함에
취해 헉헉대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화장지를 건넸다.
그 순간 은영이 갑자기 명진의 뺨에
키스를 했다. 헉! 명진은 아무런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그저 숨을 멈춘 채로 굳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온통 나비의 날개에서 뿜어낸 빛만이
가득 찼다.
명진은 프론트 데스크에서 간호사에게 차트를 넘기면서 은영을
쳐다본다. 은영은 대기실에 앉아서
타임스를 뒤적이는 남자에게로 다가가다가 갑자기 뒤돌아섰다.
그때 남자가 타임스를 놓고는
뒤돌아서는 은영을 못 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은영은
그대로 소녀처럼 데스크로 깡충깡충 달려왔다.
"저 선생님, 나비 보러 같이 갈래요?"
너무나 예상치 않았던 그녀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포만감에 찬 소녀 특유의 미소가 흐르고 있다. 남자가 당황해서는
허겁지겁 그녀에게 다가와서는
은영의 손을 잡고 조용하지만 불만어린 말투로 말했다.
"여보, 이제 갑시다."
하지만 은영은 명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다시 물었다.
"선생님, 나비 보려 함께 가요?"
그러자 남자는 허둥지둥 은영의 손을 잡아끌었고, 명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은영은
남자에게 끌려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병원 밖으로 사라졌다.
"닥터 한은 환자들에게 너무 잘해주니까 곤란한 상황이 많은 거야."
옆에 있던 닥터 조가 명진에게 이렇게 말했고 명진은 그것에
대답할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닥터 한, 요즘도 야생화를 보러 앤텔롭 밸리 사막에 가나?"
명진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다른 차트를 보는 시늉을 했다.
"나비? 그것에 너무 취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닥터 한."
닥터 조는 명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휴식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닥터 조가 명진의 사무실로 들어온다.
"닥터 한, 커피 한잔 할까?"
"좋습니다, 조 박사님."
닥터 조는 인스턴트커피를 스푼으로 떠서는 커피 잔에 넣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붓는다.
"아까 그 환자 말이야."
닥터 조는 커피를 가져와서는 책상에 놓으며 말했다. 명진은
파란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를 띤 송은영을 생각했다.
"좀 특이한 케이스야. 다른 닥터들은 단순한 유포리아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심각한
우울증(Depression; 슬픔이 감정의 주가 되어 오래 동안 방치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슬픔의 최고조
단계로 심하면 자살할 수도 있음)이 유포리아에 감추어진 케이스 같아."
명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보시지요?"
"그 환자의 아버지가 극심한 고독에 못 이겨 자살했어.
그런데 그 아버지는 그 환자 하나만 키우면서
여태까지 살아왔거든. 딸이 결혼하고 나가자 혼자 남은
아버지는 슬픔과 고독에 빠져 살다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거야. 그런 아버지의 자살을 알게 된 그 환자는
죄책감과 아버지를 그리는 그리움,
그리고 그 잔인한 슬픔을 자신의 감정에 새겨 놓은 거지.
그러면서 그 환자는 끊임없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거야. 자신에게 조그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아버지로 보는 거지.
닥터 한도 알다시피 우울증과 자살은 유전일 가능성이 많아."
명진은 왜 송은영이 자신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나
이제는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우울증과 자살, 그리고 그 운명적 유전관계는 정말로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제게 말씀하시는지?"
명진은 닥터 조의 의도가 궁금했다.
"잘 알지 않나, 닥터 한? 플로리다에서 있었던 일."
명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나비가 몰려온다.
그리고 나비와 키스하는 유빈의 모습이 떠올랐다.
"닥터에게 환자는 환자일 뿐이야, 닥터 한. 그 이상의
감정도 그 이하의 감정도 표현해서는 안 돼."
명진은 눈을 감았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왜 유빈이
그렇게 가야만 했는가를. 어떤 이들은
자살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명진의 잘못이라고 했다.
명진 자신도 그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 환자는 여러 의사가 이미 포기한 사람이야. 그래서
로렌스 원장이 닥터 한에게 그 환자를 진료하라는 거야."
명진은 병원에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명진도 정신병의 증후가 보였다.
플로리다에서 그 사건이 난 이후로는 그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 것도 같았다. 항상 달려드는 나비의 영상.
그것 때문에 그는 플로리다에서 이곳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원장은 송은영 환자를
명진에게 맡겼을까? 아마 그 환자가 나비에 대한 강한
집착과 환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명진은 퇴근을 하려는 순간에 자신을 부르는 간호사를
뒤돌아보았다.
"닥터 한, 전화 왔는데요."
메시지를 받으라고 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예, 닥터 한입니다."
"선생님."
명진은 전화기에서 나오는 말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비는 꿀만 먹고 살지는 않아요. 나비는 꽃가루도 먹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명진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옆에서 간호사들이 표정이 바뀌는 명진을 보면서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명진은 재빨리 안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저 지금 퇴근하는 시간입니다. 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시겠어요?"
명진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서 전화를 끊었다.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보았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는다.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시동 걸리는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푸르륵 거렸다.
그것은 고독에 배고픈 환자가 들을 수 있는
굶주림에 소리였다. 그는 차를 몰고 주차장에서
나오며 생각에 잠긴다.
얼룩말 독 나비. 영어로는 지브라 롱 윙 나비
(Zebra long wing Butterfly), 즉 얼룩말
긴 날개 나비란 말이다. 학명은 헬리코니어스
사라(Heliconius sara). 꽃의 꿀과 꽃가루를 먹고
사는 이 나비는, 다른 나비들이 대개 한달 가량을
사는 것과는 달리 수명이 6개월가량이나 된다.
이것은 이 나비가 꽃의 꿀 외에도 꽃가루를 먹기
때문에 수명이 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비는
시계초(Passion flower)라는 식물에 아주 작은
노란색 알을 낳는데 이 식물은 여러 가지 독성을
지니고 있고, 알에서 깨어난 노란색 유충은 시계초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얼룩말나비는 자연스럽게
독성을 지니게 된다. 미국 남부에 분포하며 특히
미국 플로리다 주에 흔한 나비이다.
이 나비가 그 비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정신병이
약간 있던 환자 유빈은 명진을 보자마자 따랐다.
환자와 의사와의 결혼. 그것은 이미 지독한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진이 병원에서의
일에 미쳐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혼자 남아서 명진을 기다리던 유빈은 극도의
환각상태에서 나비가 되었다. 핼루씨네이션
(Hallucination; 환각)은 그녀가 마치 나비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고, 그 착각은 시계초의
꽃가루까지 먹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저 꽃과 꽃가루만을 먹고 나비처럼
살았다.
그리고는 그 꽃과 꽃가루가 그녀를 죽였던 것이다.
그녀의 사인은 독극물에 의한 사망이지만,
그 근본 원인은 명진에게 있었다. 명진은 그녀를
서서히 고독으로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명진에게는 일만이 다였다. 집에서 명진을 기다리는
유빈은 할 일이 없었다. 그저 명진을
기다리는 것이 그녀의 일과였다. 명진은 유빈이
죽고 난 후에야 그녀가
임신중독증(Toxemia of Pregnancy)으로 자간전증
(Preeclampsia)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그녀를 완전한 환각으로 몰았는지 모른다.
명진은 그녀가 죽던 날을 거울을 보듯이 또렷하게
기억했다. 시계초에 날아오던 나비가 방향을 바꾸어
유빈에게 키스하던 순간을. 그것은 자살이었지만
실제로는 명진 자신이 그렇게 몰고 간 타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명진은 유빈을 묻으며 나비의 키스를
꿈꾸며 태어날 아기도 함께 가슴에 묻었다. 꽃가루를
먹으며 명진의 얼굴을 쳐다보던 유빈.
꽃밭에서 그녀는 매일 춤을 추고 있었고, 나비는
그녀에게 영원한 키스를 했다. 그리고 유빈이
갖고 있던 고독이라는 병은 유전처럼 명진이 물려
받았다. 명진의 눈에 깜빡 이슬이 맺힌다.
휴대전화가 울고 있다. 그것은 눈물 없는 절규처럼
명진의 가슴을 짓 뜯어놓는다. 명진은 한숨을
크게 내쉰 다음에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나비가 날아와요. 나비가 제게 키스를
하려고 날아와요."
왜 그 생각이 떠오를까? 유빈이 꽃가루를 먹고 나비가
키스를 하고, 그리고 유빈은 하얗게 쓰러진다.
"안 돼!"
명진은 넋이 나가서 소리쳤다.
"선생님, 나비는 날아갈 수가 없어요. 날개를 펴는
순간에 이 세상 모든 것은 불꽃으로 변할 거예요."
그 말에서 명진은 급박함을 느낀다.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절망감! 그것으로 인해 유빈은
서서히 죽어갔던 것이었다.
"어디에요, 송은영씨? 거기가 어디에요?"
은영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더 이상
날 수 없는 나비의 절망적인 몸부림일 것이다.
"제발 어딘지 알려줘요. 제발!"
명진의 눈에 불꽃이 아롱댄다. 그 불꽃은 점점
커다랗게 뭉쳐지면서 나비로 변했다.
은영의 소리가 그 불꽃에서 형상처럼 나타났다.
"순백의 여인은 버터플라이의 키스에 붉은 선혈을
토하며 죽게 되지요. 나비, 순백,
선혈. 얼마나 멋진 색깔들이에요."
명진은 헉헉대며 생각한다.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행동을 해야만 했다.
"송은영씨, 나비가 보고 싶다고 했지요? 나와 함께
나비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지요?"
"예, 선생님. 나비를 보고 싶어요. 선생님과 함께
나비를 보고 싶어요."
은영이 관심을 보이는 말투였다. 명진은 약간 숨을
돌리면서 물었다.
"어디서요? 송은영씨, 어디서 보고 싶지요?"
"데스칸소 가든에 가면 나비들이 많아요."
"그래요, 송은영씨. 데스칸소 가든에서 만나요.
지금이요."
명진은 딸깍하고 끊어지는 전화 음을 듣는다.
그것은 혈맥이 뚝 하고 끊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명진은 차를 와락 돌렸다.
1418 데스칸소 길(Descanso Drive). 라 캬나다 시의
고풍어린 느낌이 명진의 마음에 전혀
닿지 않았다. 드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몇
대의 차만이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명진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무조건 차에서 내려
허겁지겁 데스칸소 가든의 정문으로 달렸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비들이 마구 날아온다.
그것은 죽음의 키스를 위해 준비한 나비들의 마지막
윤무처럼 보였다.
정문에 한 여자가 순백의 옷을 입고 서있다. 그
모습은 이미 다가와 버린 죽음을 맞이하려는
예복을 입은 사람처럼 눈이 부셨다. 명진은 헉헉대면서
달려가서는 그녀의 앞에 섰다.
은영의 표정은 예전의 유빈의 표정과 똑같았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붉은 립스틱이
마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명진은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의 감정이 그대로 명진의 가슴으로 달려들어
그의 감상을 깨문다. 은영이 말했다.
"선생님, 가든이 벌써 끝났어요. 4시 반에 문을
닫는데요."
그녀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명진은 후다닥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날카로운
칼날. 명진은 부들부들 떨면서 은영에게 말했다.
"송은영씨, 다음에 오면 돼요. 다음에 나와 함께
정말로 멋진 나비를 보러 가요."
그녀를 막아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를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만이 명진의 머리에 가득
찼다. 명진은 그녀의 손에 들려진 칼을 그녀를
다독이며 빼앗았다. 그런데도 은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지요, 선생님. 정말 나와 함께 나비를 보러
가는 거지요?"
"그래요. 이런 갇혀진 정원이 아닌 저 넓은 사막에
훨훨 나는 나비를 보러 가요. 내가 약속할게요."
"나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빠, 난 더 이상
아빠를 홀로 두지 않을 거예요."
은영은 자신의 아빠를 쳐다보는 것일까? 그녀의
힘없는 독백이 명진의 가슴에 사무쳤다. 명진은
그런 은영을 껴안았다. 껴안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당신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은영의 눈에 나타나는 공포심과 적개심.
명진은 은영에게서 떨어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강타하며 눈앞에
불꽃이 번쩍 일었다.
"이 사람, 아주 나쁜 사람이네!"
그 남자. 병원에서 타임스를 보던 남자. 은영의 남편.
명진은 그에게 강하게 얻어맞고 땅바닥에
처박힌 채로 남자를 올려다보며 헉헉댔다.
"오해입니다. 송은영씨가 지금 위험한 지경입니다."
"이 새끼야, 아픈 환자를 이렇게 우롱해도 되는 거야!"
남자의 발이 그대로 명진의 배를 걷어찼고, 은영은
울부짖었다.
"안 돼! 그러지마! 안된다고!"
남자는 은영의 손을 와락 거머잡았다.
"또 그 지랄 같은 나비 때문에 이곳에 온 거야?
그만 해! 이젠 지겨워 죽겠다고!"
남자는 은영을 질질 끌고 가면서 소리쳤다.
명진은 가까스로 일어나서 남자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는 앞을 막아섰다. 은영을 이대로는
보낼 수 없었다.
"송은영씨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 년이
죽건 말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명진은 남자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보내면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예전에 유빈이 했던 그런 일이.
갑자기 무엇을 보았는지 남자의 표정이 확 바뀐다.
"당신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뭐야?"
명진은 그제야 자기가 아직도 은영의 칼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건?"
남자는 약간은 겁먹은 표정으로 명진의
눈치를 보다가 은영을 데리고 바삐 사라졌다.
명진은 텅 빈 주차장에서 그대로 서서
자신의 손에 들려진 칼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로렌스 원장은 명진에게 소리쳤다.
"환자들을 밖에서 만나는 게 말이 됩니까! 환자의
남편이 병원 측을 상대로 고소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흉기를 들고 있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명진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은영이
위험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미스터 로렌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잘못하면 자살로 이어질 수……."
"시끄럽소, 닥터 한! 환자들이 밖에서 자살하는 것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없어요.
다음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으로 끝이오!"
명진은 눈을 감는다. 핏기 없는 은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순백의 드레스. 붉은 입술.
불꽃이 허공에 일렁일렁 일어나고 그것은 바로
나비로 변할 것이다.
"나가 보시오!"
명진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원장실을 나왔다.
환자들을 진료하지만 생각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분명히 은영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점심시간을 막 지나는데
명진의 휴대전화가 울음을 터뜨렸다.
명진은 후다닥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나비가 왔어요. 정말로 예쁜 나비에요.
이젠 제게 키스를 하려고 해요. 여태까지
본 중에서 가장 예쁜 나비에요. 나는 이제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명진의 가슴이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은영의 말투에서
명진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결정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송은영씨, 지금 어디 있어요?"
"다 준비가 되었어요. 이제 꽃밭으로 가서 황홀한
불꽃들을 구경해야겠어요. 선생님도 함께
보았으면 좋겠지만 그리 시간이 많지 않네요."
"송은영씨! 내가 가겠어요. 기다려요! 나와 함께
나비를 봐요. 또 데스칸소 가든에 있지요?"
명진의 추측이 맞았다. 은영은 데스칸소 가든에
있다고 순순히 답했다. 은영은 나비를 보기 위해
매일 데스칸소 가든으로 가는 것이다.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서.
"기다려요! 나와 함께 나비를 봐야 해요."
명진은 후다닥 가운을 벗었다. 그리고는 병원 밖으로
뛰어 나가는데 닥터 조가 그런
그를 보고는 소리쳤다.
"닥터 한, 어디 가는 거요?"
하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명진은 그저 넋이
나간 것처럼 달려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는 부웅 하고 떠났다.
순백의 드레스, 붉은 입술. 은영은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데스칸소 가든 앞에 서있다.
명진이 그녀의 앞에 끼익하고 차를 세웠다. 차가
서자 은영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잠간
생명을 찾는다. 명진은 그대로 차에서 뛰어 내려
은영에게 달려갔다.
"송은영씨?"
은영의 팔목에 무언가가 뚝 하고 떨어진다.
"이런 바보! 송은영씨!"
순백의 드레스의 왼쪽 팔소매에 붉은 핏자국이
배어 나왔다.
"송은영씨!"
명진은 그녀를 껴안고는 부랴부랴 차에 태웠다.
"넓은 사막에 훨훨 나는 나비들을 보고 싶어요.
선생님, 부탁이에요."
명진은 어떻게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병원으로
갈지 또는 그녀의 말대로 사막으로 갈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은영의 손이 스르르
명진의 손을 잡았다.
"부탁이에요, 선생님. 사막으로 데려가 주세요.
제게 약속했잖아요."
명진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 저쪽에서 뛰어
오는 남자를 본다. 은영이 소리쳤다.
"도망쳐요, 선생님. 저 사람에게 잡히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비워진 느낌이었다.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도와줘! 납치야! 저 새끼 잡아!"
그 순간 명진은 자신도 모르게 차를 앞으로 왕 하고
운전했다. 남자가 소리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은영은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명진은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피는 다행히
동맥을 긋지는 않았는지 이제 멈춰있었고, 순백의
드레스에 배어진 붉은 선혈이 마치 꽃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내고 있었다.
사막의 상처는 인간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막은 인간에
의해 흉측한 상처를 깊숙이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넓은 벌판에 상처는 시뻘건 살을
드러내면서 앞으로 뚫려있다.
"음악을 듣고 싶어요."
은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진은 그녀가 무슨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다.
밥 칼라일(Bob Carlisle)의 'Butterfly kisses.' 명진은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CD를 찾아서 CD플레이어에 넣고는 버튼을 눌렀다.
"There's two things I know for sure: She was sent
here from heaven and she's daddy's little girl.
As I drop to my knees by her bed at night. She
talks to Jesus and I close my eyes and I thank
god for all the joy in my life. Oh, but most of all
For butterfly kisses after bedtime prayer;
sticking little white flowers all up in her hair;
"Walk beside the pony, Daddy, it's my first
ride." "I know the cake looks funny, Daddy, but
I sure tried." In all that I've done wrong
I know I must have done something right to
deserve a hug every morning
and butterfly kisses at night……."
은영이 노래를 들으면서 정신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노래는 그대로 흉기가 되어 가슴을 찌르고
동공을 눌러서 눈물을 강요했다. 그때 명진은 도로
위에 사인을 본다.
'Kidnap alert(납치 경보)! 차번호, 차 색깔,
도주 경로; 앤텔롭 밸리.'
명진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경찰이 금방이라도 추격해
올 것이다. 그전에 은영에게 사막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비들이 사막의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그런 광경을.
사막의 바람은 고독했다. 그것은 온몸을 쪼개낼 듯이 불어댔고,
벌판에는 야생화의 신들린 몸짓이
명진과 은영을 맞이했다. 미친 것은 명진이 아니었다.
미친 것은 은영이 아니었다.
사회가, 이 세상이 미친 것이다. 명진은 은영의 손을 잡았다.
사막의 빛은 고독의 색채를
머금고 은은한 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송은영씨, 저기를 봐요."
명진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은영의 시선이 머문다. 나비
한 마리가 고독과 싸우면서 야생화로
날아들었다. 자유라기보다는 힘겨운 세상과의 싸움처럼
보였다. 은영은 그 모습이 안타까운지
그저 명진의 품에 안겼다. 그 체온에서 명진은 은영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mpathy! 완전한 감정이입이란 말이다. 명진은 정신과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이 단어를 보고는
가슴에 꽉 막힌 듯싶은 사슬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단어는
사슬이 아니라 자유였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정신병자가 아닌 사람들이 모두
정신병자였다. 사회는 정신병자를
격리하려 하지만 정말로 격리된 것은 사회였다. 다른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사회답게
정신병자를 보지만 정신병자의 감정은 언제가 사회를
정신병자답게 보고 있었다.
갑자기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명진은 버터플라이 키스를
조용히 노래한다.
은영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그것은 아픈 상처가 되어 나비가
되어 날았다.
명진의 눈에 천천히 나비가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비는 은영의 마지막을
알려주듯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안 돼!"
명진은 은영의 손을 와락 움켜잡았다. 은영이 배시시 웃는다.
그녀의 손에 든 칼이 이미
그녀의 손목을 긋고 있다. 그녀의 축축한 눈에서 명진은
환상을 볼 수 있었다.
"아빠, 난 다시는 아빠를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로 다시는
아빠를 떠나지 않을 거야."
명진은 칼을 빼앗으며 부르짖었다.
"이 바보야, 유빈아! 이 바보야!"
이제 은영은 은영이 아닌 유빈이 되어서 명진을 쳐다보고
있다. 명진에게 은영은
유빈이었고, 은영에게 명진은 아빠였다.
"난 이제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그의 귀에 환청이 이글거렸다.
"그래, 떠나지 마! 나를 혼자 두지 마!"
명진은 은영을 부둥켜안았다. 은영이 힘없이 미소를 보인다.
"아빠, 외로웠지? 이제 난 아빠와 함께 영원히 있을 거야."
나비가 날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나비가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아빠, 보이지. 나비야, 불꽃 사이에서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명진도 그것을 본다. 그것은 환각이 아니다. 환시가 아니었다.
정말로 나비가 날아들고 있다.
그 순간 불꽃들이 아지작 사라지면서 환청이 들렸다.
그것은 정말로 지독한 환청이었다.
"닥터 한! 칼을 버려!"
명진은 어느새 주위에 빙 둘러선 경찰들을 본다.
그것은 환각이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정말로 명진은 자신이 미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미치지 않았으면 명진이 미친 것이리라.
"칼을 버려!"
경찰들은 모두 명진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그런데 총구가 전부 나비로 보였다.
저 총구에 불꽃이 튀는 순간에 나비는 온통
명진을 향해 날아오리라. 은영이 나비의 마지막
키스에 취했는지 축 늘어진다. 그것을 보고는
명진이 와락 은영의 몸을 껴안는데 어떤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나비의 울음소리일 것이다.
어디선가 빨간 선혈이 은영의 순백의 드레스 위로
뚝뚝 떨어졌다. 명진은 웃는다. 순백의 드레스에 떨어진
선혈자국이 나비로 변해서 명진의
입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비는 그에게 진한 입맞춤을 했다.
명진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피를 입으로 토해냈다. 다시 총소리가 들렸고
명진은 은영의 위로 쓰러졌다.
"그래, 유빈아. 널 혼자 두지 않을게."
그때 명진은 아주 약한 나비의 숨소리를 들었다.
"아빠, 사랑해!"
나비는 그에게 아주 지독한 키스를 했고,
명진은 그 키스에 취해서 눈을 감았다.
날아다니는 나비 사이로 수많은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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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고, 운영자님! 왜 카페의 왼쪽 메뉴바가 너무 오른쪽으로 나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올리다가 보니 내 글의 오른쪽이 다 잘려져 나가서 다시 올리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가능하면 왼쪽 메뉴바를 최대한 왼쪽으로 옮겨 주시는 것이 어떨까요???
글마루 카페는 늘리고 줄이는 두 가지 기능이 다 있어서 가능합니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가로 폭을 늘리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좀 그렇죠
왕성하게 글을 쓰시는 선생님이 굉장히 부럽습니다.
레인(정조앤) 선생님, 수고를 끼쳐 드려서 무척 죄송!!! 그리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