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와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신용결제가 보편화되어, 갈수록 돈을 직접 소지하는 경우가 드물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갑에 비상금으로 돈을 지니고 있지만, 결제를 할 경우 대부분 신용결제를 이용하고 있다.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을 타고난 다음에도 교통카드로 지불을 하고,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카드나 스마트결제를 이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단지 통장 속의 숫자로만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은행 대출금이 있을 때도 정해진 일자에 자신의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때로는 마이너스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그저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수단이지만, 화폐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잇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보증으로 한국은행에서 발행하여, 화폐에 기록된 숫자만큼의 ‘가치’를 비로소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돈의 양이 많을수록 부유하다고 평가하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벌거벗은 돈(naked Money)’이라고 번역을 해야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번역본의 제목을 <돈의 정석>이라고 붙였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의 수단인 화폐에 대해서, 그 본질에서부터 경제 정책에 이르기까지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2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1부는 ‘돈이 만드는 세상’이란 제목으로 모두 7장에 걸쳐 화폐의 역사와 그것을 둘러싼 면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돈의 탄생’이라는 1장에서 화폐개혁으로 기존에 ‘있던 돈을 휴지로 만드는’ 경우와 몇 번의 클릭으로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사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돈의 가치가 그처럼 허약한 토대 위에 구축되었음을 이해시키고 있다. 결국 ‘돈은 신뢰를 기초로 해 만들어진 것’이며, 어떻게 ‘본질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종잇돈’이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구매력을 지닌 통화’로 기능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법정화폐로 통용되는 ‘명목화폐’와 금과 은처럼 실제 가치가 있는 물건 혹은 그에 연계된 ‘실물화폐’의 차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돈의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2장에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대해서 소개하고, 아울러 그것이 한 국가의 정치와 사람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3장에서 논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 물가라는 개념을 안내하고, 물가변화로 인해 사람들이 경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피고 있다. 4장에서는 ‘신용대출과 금융 위기’라는 제목으로, 현대사회에서 신용대출로 인해 언제든지 금융위기가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즉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과정에서 ‘은행은 신용을 창출하고, 신용은 새로운 돈’으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도한 신용대출로 인해 은행의 지급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파산하는 일이 발생하여, 끝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경제적 흐름을 진단하고 통화정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5장의 ‘중앙은행의 업무와 역할’에서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이며,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가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무역이 보편화되면서 서로 다른 화폐 사이의 교환 비율을 정하는 환율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세계 금융 시스템이 가동된다는 것을 6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1부의 마지막 장인 7장에서는 화폐의 가치를 금과 연계시켰던 금본위제의 특징과 그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본위제가 적합하다고 인정되었지만, 현대 경제에서는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오히려 저자는 ‘금의 유혹에 빠지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한다.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경제 상황을 설명하면서, 예컨대 ‘미국 화폐의 역사’(8장)와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닥쳤던 ‘1929년과 2008년’(9장)의 유사점과 다른 면모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그리고 20년 이상을 지속했던 ‘일본의 장기침체’(10장)의 원인과 그것이 왜 ‘잃어버린 수 십 년’이라고 칭해지는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단일통화권으로 묶여 단일화폐로 사용되는 ‘유로의 위기’(11장)가 언제든지 닥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12장에서는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통화 전쟁’의 면모를 설명하면서, 그들이 끝내 화해하지 못할 경우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있다. 최근의 양상을 보더라도 중국과 미국의 정치인들이 서로 큰소리를 치지만, 어느 일방의 잘못된 선택이 커다란 재앙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알고 있으며, 그 결과가 최근의 미역분쟁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인해 그것이 화폐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데, ‘화폐의 미래’라는 제목의 13장에서 그것의 특징을 지적하면서 ‘미래의 화폐를 논의할 때 기억해야 할 쟁점들’을 제시하였다. 마지막 14장에서는 ‘중앙은행과 통화 정책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왜 중앙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지금도 다양한 언론을 통해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추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경제 상황들에 대해 어느 정도 구체화시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경제학이나 경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경제학이 그리 어려운 학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던 것도 하나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인생의 격을 높이는 최소한의 교양’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유도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경제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전과는 달리 이해의 정도가 조금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