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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내가 생각한 대로 꾸민다는 것은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모습이리라. 그러나 직장 생활과 가족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것이 현실화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라 하겠다. 만약 이러한 말을 아내에게 건넨다면, 그 예산으로 가족들을 위해 뭔가 하나라도 해보라는 지청구를 듣기 쉬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만 마음속의 꿈으로 간직하고, 때론 지인들과 술 한잔 기울이면서 얘기로 나누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르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직접 실천했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함께 존경의 마음까지 품게 된다. 한편으로 저자의 가족들은 그러한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문화심리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낯선 바닷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다양한 상념들을 풀어내어 엮은 것이다. 한동안 대중매체에 활발하게 보이던 저자의 모습이 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사이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다녀오고, 또 연고도 없는 항구 도시에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처럼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뒤늦게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결행했으며, 자신의 화실을 마련하기 위해 낯선 고장인 전라남도 여수에 정착한 저자의 결단력은 남들로 하여금 부러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한 저자의 과감한 결단력의 배경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던 것 같다. 아마 저자는 자신이 마음 먹은 것을 직접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중년의 남성들이 은퇴 후에 귀촌(歸村)을 해서 살아갈 것을 꿈꾸지만, 대부분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이를 포기한다고 한다. 농촌살이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은 것도 이유의 하나이겠으나,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내를 설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자들의 그러한 생각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낯선 환경에 놓여 남편 뒷바라지나 하면서 재미없게 살기를 누가 바라겠는가. 자식들도 다 출가시키고 노후에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내들의 입장에서는, 귀촌을 하게 되면 자질구레한 살림을 고스란히 떠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남편의 결정에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감행한 저자의 ‘여수행’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한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이러한 생활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를 ‘슈필라움(Spielraum)’이라는 독일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 단어는 ‘놀이(Spiel)’와 ‘공간(Raum)’이라는 의미가 합쳐진 단어로,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이라 번역할 수 있다고 한다. 실상 사람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이 바로 ‘슈필라움’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지내는 생활을 상상만 해도 행복감이 절로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더욱 부럽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더라도 쉽게 실천에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겨 독자들에게 당당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떠한 연구도 없이 충동적으로 내려와 살게 된 여수의 자연’을 사계절에 맞추어 소개하면서, 틈틈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살아가는 저자의 행복한 모습이 책의 곳곳에 잘 나타나 있었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방문과 함께 했던 일들을 소개하며, 바닷가의 화실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과정에서 느꼈을 저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섬의 바닷가에 위치한 ‘미역창고’를 구입해서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태풍에 크게 부서진 모습에 낙담하기도 하지만, 이전의 계획을 수정하면서 다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는 저자의 여유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이 말은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쓴 저서 <공간의 생산>에 나오는 핵심 내용이라고 한다. 아마도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면 ‘심리적 공간’이 완성될 수 있다고 하겠는데, 이것은 비단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지니고 있는 욕구일 것이다. 실제 내 아내도 금년 봄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평일에 비어있는 아들의 방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비록 ‘반쪽짜리 공간’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 때문인지, 지금은 아내의 모습이 예전보다 더 활기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실제 미역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던 공간의 이름을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 사고를 한다’라는 한자어를 붙여 그대로 ‘미역창고(美力創考)’로 명명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간의 한쪽을 서가로 만들어, 그곳에 자신의 책을 꽂아보았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해 나머지 벽면에도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 앞으로도 계속 책을 늘려나가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한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저자는 그것을 직접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의 크기가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시작했지만, 저자의 그러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그곳에서 저자가 누리는 삶이 ‘아름다운 힘’으로 채워지고, 마침내 ‘창조적인 사고’로 결실을 맺어 새로운 글들로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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