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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體罰)’이란 상대방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기 위하여 신체의 일부나 물건으로 상대방의 신체에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무릎을 꿇게 하는 등의 기합을 주는 것을 통칭하여 일컫는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 문화에서 체벌을 아랫사람들을 훈육하는 방식의 하나로 인정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가정이나 교육 현장에서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의 매’란 명분으로 그것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현상이 벌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식이든 학생이든, 어떤 의미로든 체벌은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일 뿐이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전혀 없으며, 실제로 체벌을 가한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등의 역효과만 일으킬 뿐이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란 표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듣거나 물리적인 폭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을 정당한 행위라고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사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당성을 강변하곤 한다. 어쩌면 체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교사와 부모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자녀 혹은 학생들에게 행했던 행위가 불가피했고, 또한 조금도 감정이 섞이지 않았던 반응이었던가를.
‘체벌은 없다 ?청소년에 대한 모든 폭력을 거부한다.’ 2018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진행한 캠페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이 캠페인에 동참했던 이들의 ‘양심적 체벌 거부 선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식을 키우면서, 또 교단에 있으면서 자녀와 학생들에게 행했던 나의 과거를 반추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이미 성인이 된 아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도 인격적으로 상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나 자신은 과연 그러했는지 자신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내 자신의 과거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움의 감정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체벌문화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양심적 체벌 거부 선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체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의 체벌 거부 선언문’을 작성한 이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글에는 부모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체벌은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는 심각한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교사와 학생의 체벌 거부 선언문’을 실은 2부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참여한 교사와 학생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에’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청소년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체벌 거부 선언문’들이 실려 있다. 실상 ‘체벌문화’는 일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체벌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부모와 자식 혹은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와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53인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나아가 체벌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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