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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사>라는 제목의 이 책은 ‘조선의 직업(job)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와 함께, 정사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조선의 잡다한 역사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한다. 주지하듯이 조선시대는 대부분의 지배계층이 '선비'라는 '업(業)'에 종사하면서, 정치인이 아니라면 몸으로 영위하던 다른 직업을 천시하던 경향이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흔히 '사농공상'이라는 직업 체계가 깊이 뿌리내린 시대에, '선비'가 아닌 색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에서 천시하던 것이라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대부들의 기록은 주로 글을 읽고 학문을 하는 것을 자랑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특정 직업을 논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각종 기록에 다양한 직역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있고, 이를 통해 당시의 ‘직업’들에 대한 면모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그동안 다양한 기록들을 통해 조선시대 직업의 종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직업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저자들 역시 기초 조사를 거치면서 160개에 달하는 직업 목록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 책에 소개된 직업의 종류는 모두 67개이며, 그것을 모두 7개의 항목으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 소개된 직업을 고른 기준을 다음의 세 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가 조선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직업이며, 둘째는 현대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직업, 그리고 셋째가 하는 일이 흥미로운 직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부나 관리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직업은 배제했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의원이나 기녀 등의 직업도 제외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맨 앞에 있는 1부의 '일하는 여성들'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 여성들이 담당했던 직업들을 다루고 있다. 사회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주로 집안 살림만을 담당했지만, 반드시 여성들의 역할이 필요한 영역은 있기 마련이다. 비록 그 종류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여성들의 생존 수단이었던 삯바느질과 결혼식의 신부 도우미로서 주례 역할까지 했던 수모 등 여성들이 담당했던 직업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극한 직업'으로 분류된 2부에서는 흔히 망나니라고도 불리는 사형을 집행하던 회자수를 비롯하여 뱀을 잡던 땅꾼과 약초꾼, 그리고 호랑이를 잡던 착호갑사와 시신을 매장하던 역할을 하던 매골승 등 힘들고 천시되던 직업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예술의 세계'라는 제목의 3부에서 다루어지는 직업은 비록 당시에는 천시되었으나, 나름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던 직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프로 바둑 기사에 해당하는 기객은 양반들을 상대로 바둑을 두는 직업이었으며, 조선 후기 시정의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객들과 오늘날의 써커스와 비슷한 사당패들의 존재도 있었다. 4부의 '기술자들'에서는 흔히 '장인' 혹은 '공인'이라 부르던 전문 기술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의 플로리스트에 해당하는 '화장'과 여성들의 머리 위에 올리는 일종의 가발인 가체를 만드는 가체장, 선비들의 필수품인 붓을 만드는 필공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직업과 역할을 서술하고 있다.
'불법과 합법 사이'라는 제목의 5부에 소개된 내용들은 딱히 정식 직업으로 볼 수는 없지만, 엄연히 당대에 존재했던 존재들을 다루고 있다. 소매치기를 지칭하는 '표낭도'라든지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해 매를 맞는 '매품팔이', 그리고 짝퉁 제조자인 안화상 등을 딱히 직업이라고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든지 불법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이득을 취하려는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의 전문직'에 해당하는 직업들은 6부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7부에서는 '사농공상'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상인들의 종류와 역할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현대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분명히 직업에 귀천이 있었다. 특히 몸을 사용하여 먹고사는 일을 천시했던 까닭에 대부분의 직업은 평민 혹은 천민들의 몫이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이러한 조선시대의 관념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탓도 있다 하겠다. 그나마 21세기 들어서는 이러한 생각에 변화가 감지되고, 기술을 가진 전문직이 선호되는 것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 하겠다. 이 책에 다루어지는 다양한 직업들에 종류와 역할에 대해,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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