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몇 주 동안 나는 내게 질문을 던지며 달려드는 물건, 물건들에 질려버렸다. 저를 정말 버릴 건가요? 물건들이 화를 내며 나자빠졌다. 엄청난 물건들이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움직였다. 나중에는 뭐가 남아 있고 뭐가 떠나갔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소인국에 간 걸리버처럼 그 작은 물건들에 붙들려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균적인 가정에는 수만 개가 넘는 물품들이 있다고 한다. 정주민의 삶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려면 그 모든 물품에 일일이 가치를 매겨야 한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당당히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일종의 비자를 받고 나의 집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나라는 인간의 과거에 깊숙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추억과 사연을 가진 물건들이었고 그 돈으로 살 수 있었던 무언가를 희생하고 들인 것들이었다.
내 삶에 들러붙어 있던 이 모든 것들, 그러니까 물건, 약정, 계약, 자동이체, 그리고 이런저런 의무사항들을 털어내면서 나는 이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을 정말이지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읽지 않는 책들, 보지 않는 DVD들, 듣지 않는 CD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습관적으로 사들인 책들이 왜 자기를 읽어주지 않느냐고 일제히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비난이 두려워 우리는 후회의 습관을 미래로 이월해 버린다. 나중에는 보겠지. 언젠가는 들을 날이 있을거야. 그러나 그런 날은 여간해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물건들이 계속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 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