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투표를 하는 진풍경들
옛날 대선, 총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으로 생각하지만 불과 40년
전에 우리나라의 일반사회나 군대에서의 선거 풍경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그것도 역사의 한페이지였기에 내가 경험한 것을 위주로 가볍게 써보았는데
옛날 같으면 경찰, 보안부대에 끌려가서 모진 고생을 했겠지만 지금은 시절이
좋아져서 이런말을 해도 될 것으로 생각합나다, 그리고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퍼왔습니다,,,,
1970년대 초반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겨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 국민이 새마을 운동과 수출만이 살 길이다 라는 구호와
함께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3선 개헌과 유신헌법으로 민주화의
염원이 그 어느때보다 강력했기에 이를 막는 정부의 단속도 가장 엄했기에 할
말을 못하고 자기 일만 했던 시절이였다,
당시1972년 1월에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데 담당 중대장과
훈육관님이 자켜보는 책상에서 박정희, 윤보선 후보용지에 기표를 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박정희 후보를 찍지 않으면 퇴교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아야 하기에
100% 공화당 박정희 후보를 기표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보안부대
위력은 하늘에 날던 새도 잡는 시대였기에 투표장에는 보안 하사관과 사병들이
옆에서 감사 감독을 하기에 야당을 찍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이후로 내가 임관하고 소대장, 중대장이 되였을때도 투표장의 풍경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하였는데 다만 역활이 바뀌여서 내가 책상에 앉아서 기표용지를
펼쳐놓고 무조건 1번을 찍으라고 강요를 안해도 1번을 찍을수뿐이 없었다,
당시에 투표장에는 보안부대 요원들과 대대참모, 정훈장교, 대대장님이 감시를
하였기에 사병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해도 너무한 선거였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어쩔수 없는 진풍경들 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일반 선거에도 말이 많았는데 고무신, 막걸리 선거와 투, 개표구에서 각종
비리가 나타나서 야당과 신문에 금권과 관권선거라고 외첬지만 선거가 끝나면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갔으며 다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때도 똑같은 악순환이
반복이 된 것으로 알고있다, 제가 볼때에 노태우 대통령 까지는 같은 맥락이고
우리나라의 진정한 선거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였을때가
진정한 민주주의의로 선거혁명이 이루워져서 민의에의한 국민의 대표가 선출이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선거 (다음 카페 인용)
선거에 대하여 자료를 검색해보니 1952년 심야 날치기 통과된 직선제 개헌안에 의해
최초의 국민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74.6%의 득표율로
재선 되었습니다 선거 표어는 민주당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와 이에 맞받아친 자유당의
‘갈아봐야 별 수 없다’는 선거구호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표심을 좌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공무원과 선생님들이 개표요원으로 동원되여 수 개표를 하였으나
2002년 부터 자동으로 투표지를 분류하고 후보자별 득표수를 집계하는 전자개표기를
이용 하였으며, 전자개표기는 원래 금융기관에서 수표나 지로용지를 분류하는 데
사용하던 것을 선거용으로 응용하여 도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개표현황조사 역시
현대화되어 통신망을 통해 중앙선거관리 위원회와 방송국에 전송되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과거에는 각 언론사 사옥에 게시판을 설치하여 직접 옮겨 적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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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과거 역대 국회의원 선거 속 진풍경
9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뤄진 1973년 2월 27일 청운동 신교궁정
투표소에서 한표를 넣고 있는 박대통령내외. (가운데는 근혜양)
1971년 제 8 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고성지역 선거에 출마한 국민당 최석림 후보의
개인 연설회는 어린이들만 모여있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선거날 조선일보본사 게시판앞에 개표상황을 지켜보는 시민들.
선거벽보와 아이들(1971, 서울송파)
1960년 제 5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두고 개표 상황을 알리기 위한 상황판
제작에 바쁜 선관위 관계자들.
1958년 제 4 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 중구 을지구에서 입후보한 정일형
이원순 등 후보자를 알리는 게시판이 골목길 기둥에 진열되어 있다.
1958년 제 4 대 민의원 선거 민주당의 합동강연이 열리고 있는 장충단 공원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어린이들.
1960년 전국 여성단체 회원들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축첩자들에게는 투표를
하지않겠는다는 현수막을 들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1973년 제 9 대 국회의원 선거 종로중구 합동 연설회가 열리고 있는 종로
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여성 유권자들.
1985년 12대 총선 때 서울 동작구 합동 유세중 민정당 허청일 후보가
대학생들로부터 암모니아 투척 세례를 받았다.
1988년 광주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이영일 후보가 반대세력으로부터
날아오는 돌을 막기위해 의자를 연결해 방어하며 선거연설을 하고 있다.
'머슴이 되겠습니다'경기 고양을에 출마한 한 야당후보가 1996년
개인연설회에서 머슴의 상징으로 지게를 들고 나와 연설하고 있다.
1969년 유세장은 다수의 듣는사람과 소수의 마시는 사람의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유세장 뒤켠에 늘어놓은 이 막걸리장은 중년의 아낙네에게도 적지않게 관심이
있는 모양으로 들어올때 받은 선전용 정당 기관지를 모자로 쓰고 있다.
1960년 제 5 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장인 부산시 중구 대창동 사무소 앞에서
선거관리위원들이 투표함을 실어나르고 있다.
1960년 국회의원 종로 갑구 보궐선거 투표소에서 부녀자들이 아이들을 동반해 투표하고 있다.
1971년 제 8 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되자 거리에 나붙은 민주공화당
전국구 후보자 명단이 실린 벽보를 유권자들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15대 총선전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1996년 3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지역에
선거벽보가 붙자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경력과 공약내용 등 벽보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1969년 국회의원 선거 전남 벌교 지역 재선거의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지켜보는 유권자들.
1973년 9대 국회의원 선거. 민의의 향방을 가름하는 개표작업이 환히 밝힌
불및아래 밤새워 진행됐다. 방청석에는 쌍안경으로 개표광경을 주시하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서대문 제2개표소에서)
12대 국회의원 총선 종로지구 합동유세장인 구서울고교 교정에 모인 인파.
후보자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는 모습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
요즈음은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예전에는 선거철마다 막걸리가 등장했다. 입후보자는
시골 동네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회관 앞에 멍석을 깐다. 그런 후 부인네, 남정네, 어린애
할 것 없이 모아놓고 막걸리판을 벌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후보자의 정견 발표는 둘 째치고 너 나 할 것 없이 큰 막걸리 한 사발을 들고,
한 손에는 김치에 싼 돼지고기를 집어 들고 후르륵--- 후르륵--- 마셔댄다. 어린이들도
침을 삼키며 부모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두부에 김치를 싼 것을 얻어먹는다.
어떤 이는 어린이한테 막걸리도 한 사발 먹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거 아녀!”
배고팠던 한 시절의 일이다. 어느 후보가 낸 막걸리를 거푸거푸 마신 탓에 하늘이 노래져
너도 나도 해롱해롱한다. 그러다가 양지뜸 박 서방과 개울건너 탱자나무집 차돌이 애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삿대질을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며 격론을 벌인다.
“아니, 이 사람이 되야 혀유? 이 사람은 농민의 아들이니께유 우리네 심정을 잘 알아
밥은 굶기지 않을 것 아닌가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