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소주’, 주류 시장 새바람 넘어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나
‘원소주 스피릿’ 흥행 가도에 기존 주류 업체도 움직여
전통주 관련 주류법 개정으로 또 다른 변동 예고
오랫동안 ‘서민의 친구’로서 소비자들의 입맛에 따라 모습을 바꿔 온 소주가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현재 주류 업계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프리미엄 소주다. 연예인 박재범이 운영하며 화제가 된 ‘원스피리츠’는 GS25와 손을 잡고 지난 7월 ‘원소주 스피릿’을 출시했다. 기존의 주류 시장을 잡고 있던 ‘참이슬’ ‘처음처럼’과 달리 증류식 소주를 내세운 이 제품은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병을 넘어섰다. GS25는 단일 주종으로 단기간 내에 이 정도 판매량을 올린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GS25의 경쟁사인 CU, 세븐일레븐 등은 각자 자체적인 프리미엄 소주를 출시했다. CU의 경우 1945년부터 경남 창녕의 전통주 제조사인 ‘우포의 아침’과 손을 잡고 지난 8월 ‘빛소주’를 발매했다. 세븐일레븐은 가수 임창정과 함께 충북 청주의 전통주 제조사를 거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준비 중이다.
이 프리미엄 소주 열풍은 편의점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주류 시장의 터줏대감인 ‘참이슬’의 하이트진로는 지난 8월 ‘진로1924 헤리티지’를 내놓았다. ‘원소주 스피릿’이나 ‘빛소주’와 다르게 10만 원이 넘는 고가지만 초기 물량 1만 5천 병이 한 달 만에 매진됐다. 반면 ‘처음처럼’의 롯데칠성음료는 제로 식품과 증류식 소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증류식 소주에 무설탕을 더한 ‘새로’를 지난 9월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주류영업본부 직원 A씨는 “2020년 주류면허관리법 제정으로 전보다 주류 제조 및 판매가 자유로워져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며 “현재 프리미엄 소주가 인기를 끄는 것은 결국 선택지가 다양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천천히 즐기는 음주 문화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며 “과일소주 같은 반짝 인기와는 달리 꽤 오랫동안 이어지리라는 분석으로 자사에서도 또 다른 증류식 소주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주가 변화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소주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1960년대에 도입된 양곡관리법이다. 당시 정부는 식량 부족을 이유로 증류식 소주 생산을 금지했다. 증류식 소주는 밑술을 담그고 그 밑술을 증류시켜 만드는데, 밑술에는 쌀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녹말을 발효시키고 연속 증류해 얻어낸 95% 에탄올에 물과 감미료를 첨가해 만든다. 현재 주류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주가 이 희석식 소주에 속한다.
이렇게 희석식으로 자리 잡은 소주가 1995년 규제 완화로 숨통이 트이게 된다. 먼저 소주 원료가 다양화되고 알콜 도수에 대한 제한이 철폐됐다. 이전까지는 소주 원료 중 단맛을 내는 첨가물을 사탕·포도당·물엿·꿀로 제한했으나, 올리고당 등이 추가됐다. 증류식 소주의 경우 30도 이상, 희석식 소주는 35도 이하였던 알콜 도수 제한도 사라지며 보다 다양한 소주가 나오게 됐다. 오늘날 프리미엄 소주 열풍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통주 기준을 완화하기 위한 주세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주류부문의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의 보유자가 면허를 받아 제조한 술 ▲주류부문의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만 전통주로 취급한다. 따라서 증류식 소주 ‘화요’는 국내산 쌀을 이용해 전통 기법으로 빚기 때문에 전통주가 될 수도 있지만 제조사가 농업법인이 아니기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프리미엄 소주로 한바탕 뒤집어진 주류 업계가 법 개정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