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외 5
이정환
한밤중 한 시간에 한두 번쯤은 족히
찢어질 듯 가구가 운다, 나무가 문득 운다
그 골짝
찬바람 소리
그리운 것이다
곧게 뿌리내려 물 길어 올리던 날의
무성한 잎들과 쉼 없이 우짖던 새떼
밤마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일순 뼈를 쪼갤 듯 고요를 찢으며
명치 끝 밝혀 긴 신음 토하는 나무
그 골짝
잊혀진 물소리
듣고 있는 것이다
애월 바다
사랑을 아는 바다에 노을이 지고 있다
애월, 하고 부르면 명치끝이 저린 저녁
노을은 하고 싶은 말들 다 풀어놓고 있다
누군가에게 문득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과 먼 파도와 수평선이 이끌고 온
그 말을 다 받아 담은 편지를 전하고 싶다
애월은 달빛 가장자리, 사랑을 하는 바다
무장 서럽도록 뼈저린 이가 찾아와서
물결을 매만지는 일만 그듭하게 하고 있다
새와 수면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속에 숨어 있던 수천의 새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주상절리
내 안에 나는 없고 꽃들로 가득했다
못물로 출렁였다 노을로 타올랐다
맨발로 달려오고 있는 그림자가 붉었다
내 목에 어느 날 별빛타래 걸렸다
자주구름 걸렸다 새가 사뭇 우짖었다
무한정 문이 열렸다 바람 들이닥쳤다
시스루
곧장 내비칠 듯 내비치지 않는 것이
묘한 느낌으로 벼랑 끝을 달리나니,
그 깊은 골짜기는 아직 너의 것이 아니다
내비칠 듯 내비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찾아들길 바이없는 숲으로 우거져서
미칠 듯 미치게 하는 실루엣과 같은 것
말의 묘미를 좇아 일생을 달려온 이여
숨 막히는 길 앞에 곧장 기막힐지라도
끝까지 파고 들지니, 꽃문 열어젖히기까지
혀 밑에 도끼
혀 아래 도끼 들었단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남을 자꾸 헐뜯는 사람들의 혓바닥 아래
도끼가 숨겨져 있대요, 서슬 푸른 쇠도끼.
- 이정환 시조전집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 2024. 만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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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외 5 / 이정환
김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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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8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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