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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모든 것
김연경 지음
2005/02/15
도전적인 자의식과 질주하는 형식 실험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비평적 관심을 모아온
작가 김연경의 네번째 작품집!
삶, 그 권태로움에 대하여
변태와 탈피를 꿈꾸는 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1996년 등단할 당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신분이었던 작가 김연경은 올해로 등단 10년째를 맞아 어느덧 자기 이름을 내건 작품집 네 권을 묶어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동세대 작가들과는 소재와 형식면에서 차별화’된다는 보편적 반응과 함께 ‘새로움(낯섦)과 설익음’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아온 김연경은 이번 소설집 『내 아내의 모든 것』(2005)에 지난 6년간의 기억들을 풀어놓고 있다.
물론 2003년에 그의 작품 중 가장 실험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경장편 『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역시 그가 러시아에 체류할 당시 발표했지만, 2001년 2월에 비행기에 올라 2004년 2월에 마감한 만 3년간의 러시아 유학 생활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제대로 된 이야기 꼴을 갖춘 소설집으로는 『미성년』(2000) 이후 처음이다. 백야와 흰 눈의 이국적인 북국의 풍경과 그 속에서의 동경, 그리고 타지의 낯섦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도 제법 따라와 소설 여기저기에 붙박아놓았다.
이 책에서 김연경은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특유의 사소설과 메타소설을 매설해놓고 있다. 그리고 표면에 드러난 진부함과 범속함을 빌려 우리 삶의 지리멸렬함과 통속성을 마음껏 파헤친다.
몸뚱어리의 마모가 소멸의 과정인지, 영원한 반복을 통한 불멸의 통과 제의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저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 모든 괴로움을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 실로 순수한 절망이었다. ―본문(「피진의 가을」)에서
김연경 소설에 내내 무의식의 형태로 잠복해 있던 클리셰들이 텍스트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텍스트에서 클리셰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사라진다. 그러나 텍스트 밖에서는, 그 불안과 공포가 여전히, 더욱 생생하게 살아남는데, 다름 아닌 독자들이 이제 그것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불안과 공포는 이제 독자들에게 전이되기 시작한다. 누가 감히 김연경의 소설을 읽고 클리셰의 그 지독한 지리멸렬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감히 김연경의 소설을 읽고 권태의 진면목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형중, 해설 「실연(實演)되는 통속과 권태, 혹은 행위예술이 된 소설」에서
목차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내 아내의 모든 것
드레스덴에서 온 엽서
결코 주체가 드러나지 않으려는 시편
젊은 그들, 봄날은 간다
나의 가자미 색시
눈꽃 놀이
북국의 백야를 꿈꾸다
내 몸 속의 곰팡이
두 횡사
허를 죽이다
절망
피진의 가을
피진(皮疹)의 가을 - 변태와 탈피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설|실연(實演)되는 통속과 권태, 혹은 행위예술이 된 소설_김형중
[작품 줄거리]
1.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인간관계의 온기와 습기를 품은 소설 세 편.
「내 아내의 모든 것」(『파라21』 2003년 봄호)
하루아침에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고통과 의식의 추이, 마침내, 아내 자신의 소멸을 환상 문법에 기대어 묘사하고 있다. 외적으로 3인칭 시점을 택하고 있으며, 지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소박한 아내의 내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드레스덴에서 온 엽서」(『문학·판』 2004년 가을호)
국비장학금을 받고 인생에서 두번째로 모스크바로 날아 온 중년의 베트남 여인 ‘준’이, 우연히 그녀의 손에 들어온 ‘드레스덴에서 온 엽서’를 매개로,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면서 겪은 슬픈 사건을 추억하게 된다. 소설은 ‘준’이 애인 겸 친구였던 ‘튜히’를 잃은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결코 주체가 드러나지 않으려는 시편」
젊은 남녀의 사랑, 대학생들의 우정 등에 관한 작품. 결코 ‘나’를 말하지 않는 화자가 체험하는 하루의 시간을 추적해가고 숨겨진 ‘나’의 과거와 현재를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젊은 그들, 봄날은 간다
「나의 가자미 색시」
이혼을 한 연상의 여자와 대학생의 4년간에 걸친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 대학생의 시점에서 서사가 진행되며, 연상의 여인에 대한 그의 연정 및 그리움과 어린 시절 옆집 노부부에 대한 기억이 교차되고 있다.
「눈꽃 놀이」
결혼을 앞둔 서른쯤 되는 남자가 고교 시절의 첫사랑을 추억한다. 첫사랑 영서가 자신을 버리고 캐나다로 떠나버린 후 겪은 아픔, 그 후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이루어진 재회에서 느끼는 작중 화자의 느낌을 고백하고 있다.
3. 북국의 백야를 꿈꾸다: 전체적으로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작가 김연경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소설적으로 형상화했다.
「내 몸 속의 곰팡이」(『이상한 오렌지』[이룸, 2001]에 수록)
페테르부르크에 유학 중인 한 남자가 뜻밖에 ‘질염’이라는, 남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병에 걸리게 된다. 본 작품은 이후 이 병의 치료 과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두 횡사」
(상트)페테르부르크 모 음대에 재학 중인 한 유학생과 그녀의 애인이 ‘형상기억합금브래지어’라는 다소 이질적인 매개물을 두고서, 연이어 겪게 되는 돌연한 죽음을 그리고 있다. 꽤나 무거운 주제인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작가의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경쾌한 단편.
「허를 죽이다」
모스크바의 어느 허름한 공동 숙소에 사는 한 독신자가 파리, 고양이, 곰과 더불어 겪은 이야기를 일종의 수기 형식을 빌려 적고 있다.
「절망」
오래전 자신의 은사였던 선생의 임종을 맞는 한 남자의 이야기. 스승에 대한 화자의 애틋함과는 별도로 예전에 미처 고백하지 못하고 또 듣지 못했던 일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와, 그 기대했던 것이 전혀 다른 식으로 체현됨으로써 맞는 ‘절망감’을, 즉 어그러진 의사소통을 희극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4. 피진(皮疹)의 가을
「피진(皮疹)의 가을」-변태와 탈피를 꿈꾸는 이들에게」(『문학과사회』 2002년 가을호)
지독한 가난과 인간의 속물성에 구토를 느끼면서 ‘변태와 탈피’를 꿈꾸는 한 인간이 겪게 되는 그로테스크한 변신(파멸)이 작품의 지주가 되고 있다. 인간 본연의 숨겨진 욕망을 다룸에 있어 각각의 에피소드가 나름의 완결성을 갖춘 반면 작품 전체가 하나로 추상적으로 묶이는 얼개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