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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최초는?(문병채)
옛 광주시 자료를 분석하면서 흥미로운 몇 가지를 우선 정리해 봤다.
▶ 최초의 현대적 지도
지적측량(1912~1917년)이 끝난 1917년 ‘광주면궁정원도’ 발간이 시초다. 서양식 과학적 정밀측량에 의한 최초의 지도였다. 뒤이어, 1930년 ‘광주시가지측량전도’가 발간되어 일반 시민들까지 광주시 전역에 대한 상세한 지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 최초의 근대식 학교
1896년 11월에 세워진 ‘서석초등학교’이다.
현 광주향교(구동 32번지) 내에서 개교했고, 1906년 전일빌딩 터(금남로1가)로 이전했다가, 1927년 현 서석초등학교 터로 재이전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광주 최초의 의료기관
1905년 11월 20일에 양림동 현 위치에 설립된, 광주 제중원에서 시작된 ‘광주기독병원’이다.
수차의 증. 개축을 통해, 마침내 1968년 종합병원으로 발전했다.
▶ 광주천 최초의 다리
1907년 3월에 목교(나무다리)로 건설된 ‘광주교’이다.
광주교는 광주공원과 수기동을 잇는 다리다. 이전에는 ‘노지’이거나, 나무와 흙으로 만든 ‘흙다리’였다. 이것들은 영구적인 다리가 아니어서, 현대식 교량이라고 할 수 없다.
이후 1935년에 철근콘크리트로 새로 지어지고, 1976년에 확장이 이루어졌다.
지금의 광주교는 2006년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광주천은 직강화되면서 좁아졌지만, 당시는 100여 미터(최대 300m) 폭의 하천이었다.
당시 광주공원 앞(다리 끝)에는 ‘석서정(石犀亭)’이 있었는데, 현재의 정자는 2006년에 복원한 것으로, 위치는 다르다.
▶ 광주 최초의 은행
1920년 8월에 설립된 호남은행이다.
호남의 갑부인 현준호가 주축이 되어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이다.
오늘날 광주은행의 모태가 되었다.
은행 2호는 충장로2가18번지에 들어선 1906년 설립된 ‘농공은행’이다.
▶ 광주 최초의 기차역
1922년 7월에 대인동에 생긴 광주역(현재 광주동부소방서 터)이다.
1969년 현재의 중흥동 광주역으로 이전했다.
송정리역에 1913년 호남선 철도가 처음 통과하고, 광주역은 1922년 ‘송정리-광주’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문을 열었으며, 1930년 ‘광주-여수 ‘구간 개통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5.18 당시에 광주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 광주 최초의 교회
1904년 12월에 미국 선교사 유진벨(배유지)와 오웬(오기원)이 창립한 양림교회이다.
오늘날 양림교회의 전신은 다리 건너 남금동으로 이전됐지만 광주제일교회다.
▶ 광주 최초의 강당
순교한 미국인 선교사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에 지은 ‘오웬기념각’이다. 붉은 벽돌벽으로 단아하고 기풍있게 지어졌다. 현재 양림교회 안에 있다.
▶ 최초의 서양식 주택
윌슨(우일선) 선교사 사택이다.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올 뿐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붉은 벽돌벽으로 멋스럽고 고풍스럽게 지어졌다.
나무와 숲이 진한 초록으로 감싸고 있어 한층 아름답다.
지금 봐도 동화 속 집같이 예쁜데 당시는 어떠했을까!
우일선은 의사 선교사로 1908년 제2대 제중원(현 기독병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현대식 의료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기도 하다.
▶ 광주 최초의 극장
1907년 황금동(파레스호텔 터)에 건립된 ‘양명사’이다. 경기도 출신인 이응일이 세웠다.
이곳에서 김인수가 ‘창극’을 최초로 공연했다.
특히, 월북 명인 박동실의 창극 춘향전 공연은 장안의 최고 인기였다.
이름난 명창, 명기, 광대들이 춘향전・심청전・흥부전 등을 창극화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에 광주가 우리나라의 근대 국악을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5년 11월 현대식 극장 광주좌(光州座)가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영화・연극 공연이 이루어진다. 광주좌는 충장로 3가에 있었다.
다양한 집회와 연극, 영화 상영이 펼쳐졌던 이곳은 1931년 11월에 화재로 전소된다.
공연장을 겸하지 않은 극장다운 극장은 1927년 일본인 구로세가 개관한 ‘광남관(光南館)’이다.
광주좌 인근인 현재 무등극장 터에 지어졌다.
1930년에 제국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영업이 잘 되었으나, 역시 이마저도 1931년 화재로 소실됐다.
그러자, 이 틈에 1935년 10월에 최선진이 ‘광주극장’을 개관했다.
그리고 광주극장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최선진은 유은학원(광주 동성중고) 설립자다. 현재 창업주 증손자인 최용선이 운영하고 있다.
▶ 광주 최초의 요정
1908년 황금동에 문을 연 ‘기타무라로(北村樓)’였다.
일본 기생인 게이샤가 술을 따르고 춤을 추는 집이었다.
한국식 요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 신광원(新光園)이었다. 신광원은 광주의 고급사교장이었고, 광주에 온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 광주 최초의 일본인
선봉장은 ‘오쿠무라(奧村) 남매’였다.
‘오쿠무라 엔싱’은 승려였고 여동생 ‘오쿠무라 이오코’는 야쿠자를 등에 업은 사업가였다.
때마침, 엔싱은 광주 서문 밖(지금의 불로동 1번지 일대)의 땅을 구매하려는 참이었다.
친일 앞잡이였던 ‘윤응혈 관찰사’가 적극도왔다.
엔싱은 광주에 땅이 마련되자, 여동생 이오코(百子)를 광주로 부르고, 얼마 뒤, 둘째 딸(光子)과 사위까지 부른다.
이렇게 해서 처음 광주에 정착한 일본인은 8명이었으나,
1897년 일본식 잠업을 가르칠 실업학교를 세우는 공사가 본격화 되면서
1898년경에는 일본인 목수와 인부들로 순식간에 100명을 넘어선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 어용 상인과 민간인들도 속속 정착한다.
불로동 일대에 일본식 거주지 ‘극락촌’이 만들어지고, 황금동 일원에는 일본인을 상대로 한 저작거리 ‘보작촌’이 늘어났다. 인력거가 등장하고, 일본여관・요정・양조장・은행・병원 등이 잇따라 문을 열고,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도 개교한다.
▶ 광주 최초의 큰 공장
1935년 8월 ‘가네보(鐘紡)’가 방적회사를 설립했다.
직영농장은 두 곳에 있어,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쳤다.
하나는 화순 도곡면 신덕리 지석천 변에 있었고, 지금도 종방 마을이 있다.
또 하나는 곡성 입면 송전리 섬진강 천변이었다. 이곳 역시 지금도 종방마을이 남아 있다.
설립 배경은 인근 화순 탄광에서 연료 조달이 용이했고, 전남지역에 면화재배지가 넓었으며, 인구가 많아 노동력이 풍부했던 때문이었다.
당초, 16만 평 부지 중 7만 평만 공장부지로 활용하고, 나머지 9만 평은 시민을 위한 공원과 위락시설을 조성해 기증하기로 약속했었다.
무등경기장 자리도 시민공원을 조성하려던 터였다.
가네보는 광주에 섬유를 원료로 하는 장갑・양말・메리야스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무등양말이 대표적이다.
가네보의 여공들은 당시 대표적인 신여성들로 광주 총각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네보 여공들이 쏟아져 나올 때면, 충장로가 달라졌다.
▶ 광주 최초의 전기불
1917년 8월 처음으로 전기가 켜졌다. 충장로 일대의 1천여 세대였다.
그때 전등은 10촉짜리였다(지금은 30촉).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등 수준이었다.
그러나 호롱불만 켜다가 난리가 났던 것이다.
당시 수기동 발전소의 발전량은 3500개의 전등을 켤 수 있는 정도였다.
30년대 중반에는 1만여 가구에 공급할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수기동 발전소가 점점 낡아가, 일제 말기에는 영산포에서 끌어왔다.
그런데 송전선로 시원찮아 정전이 밥 먹듯이 일어났다.
지금도 수기동에는 전기, 기계 관련 상점들이 집중 분포하고 있다.
▶ 광주 최초의 석유와 석탄
광주에 최초로 ‘석유’가 보급된 것은 1936년 7월 ‘인등상점’(누문동102번지)이 생기면서다.
인등상점은 광주 최초의 주유소인 셈이다,
광주에 최초로 ‘연탄’이 보급된 시점은 1936년 11월 ‘남광연탄상회’(금동 153번지)가 문을 열면서였다.
그전에는 무등산 일원에서 나무를 베다가 난방을 했다.
계림시장 근처에는 가장 큰 나무 시장이 있었다.
그런 연유인지, 지금은 문짝 제작판매상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 광주 최초의 상하수도
상수도는 1920년 5월 충장로 일대에 최초로 공급된다.
증심사 계곡에 1920년 ‘제1수원지’를 준공하면서부터다.
이후, 1939년 제2수원지, 1957년 제3수원지, 1967년 제4수원지, 1985년 동복수원지 등 차례로 넓혀왔다.
하수도는 1929년에 충장로(1~3가)와 예술의 거리(동부경찰서~중앙초교옆) 일대에 설치된다.
192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29년 준공되었다.
▶ 최초의 행정기관 설치
광주시청(당시는 광주면사무소)은 1910년에 개청되었다(충장로1가29번지의 광산관 내, 1925년 광산동63번지로 신축이전).
경찰서(전라남도경무서)는 1895년 개청되었다(충장로2가, 삼양백화점과 충장서림의 터).
우체국(광주우체사)는 1897년 개청되었다(금동177번지).
▶ 광주 최초의 언론기관
신문사는 1909년 광주일보(당시 주간신문)가 창간되었고,
방송국은 1939년 조선방송협회출장소(충장로3가21번지)가 송출을 시작했다.
▶ 광주 최초의 공원
광주 최초의 공원은 1913년에 지정된 광주공원이다. 이곳은 원래 나라의 안전과 풍년을 기원하며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사직단’이 있었던 곳인데, 갑오경장(1894년) 때, 제사가 폐지된 후 방치되다가, 1913년 광주 최초의 공원으로 지정(9,600평)되었고, 1935년에는 일본 신사 형태로 개조되어 신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1991년에는 사직당을 복원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첫댓글 아하~~무등양말..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