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부산에서 용인으로 이사하는 준비를 하면서 썼던 글입니다
저희 친정은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공부하신 말하자면 신 문화를 받아들인 분이면서도
전통 예절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엄격하셔서
저의 결혼 때 신랑에게 사성을 쓴 사주단자를 가져 오라고 당부하셨어요
남편은 처음 들어 본 거라서 전문가를 찾아가서 썼다고 하더군요
친정의 5대조 할아버지께서 서원의 원장(지금의 대학총장)을 하셨던 분이셔서 영남 지방에서 덕망이 높으셨대요
그 영향으로 후손들은 예절과 품위에 대한 가정 교육을 무척 강조하셨어요
사주단자를 가져 오라고 했던 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 뜻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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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이불장과 옷장이 붙박이로 제작되어서
이사를 갈 때는 내용물을 다 꺼내어 박스에 담아야 한다
꺼내 놓고 보니, 옥양목 이불 홑청도 있다
예전에는 옥양목이라 불렸던 면을 이불 홑청으로 썼기에
지퍼가 달린 커버로 바꾼 이후에 예전에 사용했던 그 호청이 남아 있다
옥양목 다음에는 다림질을 안해도 되는 천으로 바꾸었고,
그다음에는 바느질을 안 해도 되는 지퍼가 달린 이불 홑청으로... 편해졌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측으로 부터 받았던 사주단자를
맨 밑에서 발견하고,
46 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풀어 봤다.
친정아버지께서 간소하게 예식을 치르더라도
모든 격식은 다 갖추고 싶다고 해서
신랑쪽에서는
사성을 쓸 줄 아는 전문가에게 찾아 가서 썼다고 했다
풀어보니 큰 봉투는 혼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편지이고,
작은 봉투에 남편의 생년월일이 적혀 있다.
찾아보니 사성을 쓰는 형식에
종이의 가로 세로 규격과 몇 번 접어야 하는 지 다 정해져 있단다
우리 할머니께서
사주단자는 잘 간직하고 있다가
죽을 때 가슴에 품고 관 속에 들어가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웃님들~
결혼 때 받은 사주단자를 장농 속에 가지고 계신가요?
블로그에 있던 댓글과 답글을 그대로 복사가 안 되어
아래 댓글난에 붙였습니다
첫댓글 키미2020.12.15 12:39 신고
우와~~~!! 완전 국보급 보물이네요.
우리만 해도 늦은 결혼이라 둘이서 결혼하겠다고 하고 인사하고 상견례만 했죠.
양쪽 집안에서 결혼하는 것만도 대단하다...이러셨습니다. ㅎㅎ
그레이스2020.12.15 13:44
우리 아들은 둘 다
사성을 적은 혼서지를 한복집에서 마련해줘서
한복과 예물 등등을 넣은 함을 친구들이 아니라 아들이 직접 들고 갔어요.
장모님은 함사세요~ 고함 지르면서 떠들썩하게 받고싶다고 하셨지만
요즘은 동네 시끄럽게 하면 학생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항의 들어오니까요.
오래된 물건중에
30년 전에 선물 받은 인도산 실크도 있어요.
받았던 그 당시에도
인도산 실크보다 국산 품질이 더 좋아서 옷을 만들 생각을 안했어요.
그런식으로 쓸모없는 실크 가운도 있고,
여름 셔츠도 있고...
이번에는 버려야 겠지요?
키미2020.12.15 13:57 신고
인도산 실크가 질이 별로인가요?
그쪽에 섬유가 발달해서 괜찮은 거 같은데..
수공비가 더 나오겠는데요. ㅎㅎ
그래도 좀 아깝네요.
그레이스2020.12.15 14:03
국산 실크가 색감과 무늬가 훨씬 좋습니다.
선물 받은 실크는 단색이어서 이불감
데이지2020.12.15 13:21 신고
정말 대단해요!
격식 있게! 참 좋네요. 저희는 간소하게는 했지만 격식 있게는 그만 놓치고 말았네요.
그레이스2020.12.15 13:54
친정에서는 첫 결혼이어서
결혼예절의 순서를 다 지키고 싶어 하셨어요.
꺼내서 읽어보니 옛생각도 나고...새롭네요
요즘은 사주단자 대신
아버지가 직접 편지를 써서 사돈께 보내는 집도 봤어요.
그 편지를 받고 감동 받아서 상대 아버지도 답글을 보냈더라구요.
여름하늘2020.12.15 21:52 신고
세상에 46년이 된 사주단자를 우리가 보게 되다니요
그런데 어쩜 저리도 색깔 변색도 없고
새것 같이 잘 보관하셨네요.
감동이셨겠어요
그날일들이 주마등처럼 떠 오르셨겠지요?
답글
그레이스2020.12.15 23:02
안감은 붉은색 겉은 연두색의 비단보자기에 싸서 받은 그대로
자개장 깊숙히 넣어놨다가 부산으로 오면서 오래된 자개장은 버리고
안방 이불장 설합에 넣어뒀으니 비단보자기 색깔이 햇볕을 안봐서 그대로 이네요.
아버지가 주신 그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풀어봤어요
편지 내용은 한자라서 대충 해석하니,
시백부님이 친정아버지께
조카를 댁의 따님과 혼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
조카를 댁의 따님과 혼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원래 정해진 문구가 있어서 그대로 빼껴 썼겠지요.ㅎㅎ
시어머니께 드리는 예단이불은 집안 아지매들이 바느질했는데,
신랑신부 이불은 내가 직접 바느질했어요.
친척중에서 화목하게 잘 사는 부인이 첫 바느질을 하는 거라고 해서
집안 아지매가 몇 바늘 시작을 해주고 나머지는 내가 했던 기억이 새록하네요.
46년된 사주단자.. 참 귀한건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절과 품위에 대한 가정 교육을 잘 받으신
그레이스님과 같은 아내와 결혼하신
부군께서는 정말 행운이 십니다
그레이스님이 그런가정에서 자라서
아들들을 잘 키우셨군요
옛날에는 솜을 새로틀고
옥양목에 풀을 먹여 다듬이질 잘한
호청으로 새로 갈으면 너무 기분이 좋았지요
시어머니가 미국오실때
비단이불에 솜을 두고 옥양목 호청을 한 이부자리를 몇개 가져오셨어요
미국에서는 쓰지도 못했고
이제는 이 이불들을 버려야 할텐데...
너무 아깝네요
가장 좋은 솜으로 속통을 만들었더라도 몇 년 지나면 이불장 속에서 솜이 눌러지니까
솜틀집에 가져가서 목화솜으로 새로 만들 듯이 이불 크기에 맞춰 새로 만들어야 가볍고 폭신한 이불이 됩니다
보통 10년이 지나도 그런 수고를 안 하니까 너무 무거운 이불이 되어 안 쓰게 되더군요
저는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 온 이불은 영국 다녀 온 이후에 다 버리고
새로 이불 가게에서 겨울용 봄 가을용으로 맞춰서 썼어요
부산에서는 서울에서 아들 가족이 오면 이불이 많이 필요해서 여분으로 쌓아 놓고 살았으나
여기에서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일이 없어서
며느리들 결혼 때 시부모 이불로 받은 것들도 아깝지만 다 버렸어요
이제는 호텔 객실에서 사용하는 그런 종류로 바꿨어요
청이님 댁에 있는 솜 이불들 전부 버려야 될 겁니다
@그레이스 시어머님께서 한국에서 가져오신 이불들을 버려야 하는데... 너무 아깝네요
우리는 또 큰아들이 2007년에 결혼할 때
한국에 계신 큰며느리 친정에서
큰 침대이불 셋트를
보내주셨어요. 이불, 베개, 침대커버 등등
침대커버 (호청?)는 실크를 누빈것 같은데...
어찌나 무거운지 한번도 쓰지 못했어요
어느날 큰맘먹고 손님방 침대에 그 이불세트를 해 놨는데
미국애인 작은며느리가 침대에서 자지않고
바닥에서 쪼그리고 자길래 물어봤더니
침대이불세트가 이상하다고... 거기서는 못 잔다고...
그래서 다시 호텔침대커버, 쉬트, 이불 비슷한 걸로 다시 깔아 주었지요
한국에서는 비싼것 같은데.. 버려야 할텐데.. 너무 아깝네요
@청이 한국에서도 이불 버리는 건 쓰레기 규격 봉투에 넣지 말고 따로 버려야 됩니다
요즘은 버리는 비용도 많이 들어요
아무리 비싼 값으로 샀던 물건이라도 현재 쓸 수 없으면 버려야 되잖아요
88년 올림픽 즈음에 누에 실로 만든 실크 솜이 부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적이 있었어요
계절 바뀔 때는 드라이 크리닝 해야 하고
그렇게 비싼 이불도 10년 이상은 쓸 수 없으니 버려야 되더군요
인도사람들은 화려한 실크옷을 입고
금으로 치장하는걸 좋아하는데..
실크질이 한국것만 못하군요
인도 회사의 높은 분에게 선물 받은 실크인데
한국에서 입는 옷에는 어울리지 않는 실크였어요
인도 상류층 부인들이 입는 옷은 실크에 여러가지 문양을 금박으로 찍어서 만드니까
단색에 무늬없는 실크가 더 좋겠지요
인도 귀족 부인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실크를 직조하는 과정에 금실을 넣어서 천을 짜 낸 게
첫눈에 대단한 옷이구나 싶었어요
사주단자, 정말 오랫만에 들어본 단어네요.
71세인 저희 막내 고모 시집갈때 사주단자를 보냈는데, 제 아버지가 직접 쓰셨어요.
46년이 지났는데도 새것 같아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