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교회와 브랜드 교회의 병리 현상
(이진오 목사의 글을 함께 나눕니다)
1.
전통적 대형 교회들과 개혁적 브랜드 교회가 "지교회"라는 "프랜차이즈화"로 자신들만의 교회 생태계를 형성해가는 동안 한국 교회에는 다음 같은 병리 현상들이 가시화되었다.
2.
첫째, 동네 작은 교회들이 몰락했다.
대형 교회는 버스 운행이나 대규모 초청행사 같은 물량 공세와 각종 종교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내세워 동네 작은 교회 신자를 수평 이동시키는 파렴치한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스타 목사나 개혁적 이미지로 성장한 교회들의 브랜드화 역시 지역 동네 작은 교회들에게는 동일한 위협이 되고 있다.
3.
둘째, 교회의 공교회성이 위협받고 있다.
대형 교회의 출현은 특정 교회와 목회자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대시켜 노회(지방회) - 총회 등으로 구성된 교회의 공교회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노회(지방회) - 총회를 장악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영향력은 암묵적 카르텔을 형성해 대형 교회와 그 목회자의 교리적·윤리적 타락을 징계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왔다.
대형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치리권 부재는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로 하여금 대형 교회와 목회자와 분파를 형성하도록 하고, 이런 분파를 통해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도 치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부패의 고리는 더 견고하고 넓어졌다.
4.
셋째, 신자 중심의 교회됨을 상실하고 있다.
1517년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정신은 “오직 성경”, “전 신자 제사장”,“개별 교회 우선성” 등이었다. 이런 정신은 중세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사제주의를 배격하고, 세속적 계급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회 운영을 터부시했다. 그래서 목사만이 성직자가 아니라 모든 신자가 성직자이며, 각각의 직분은 은사적 직제로 보았으며, 그에 따라 복음적 분업을 존중했다.
그런데 대형 교회와 브랜드 교회는 목회자 중심성을 강화해서 신자 중심의 교회됨을 약화시키고 있다.
5.
넷째, 가나안 성도가 더욱 빠르게 양산되고 있다.
예수를 믿지만 교회 안 나가는 신자를 가리켜 “가나안 성도”라고 부른다. 교회를 안 나가는데 어떻게 신자인가 하고 의아할 수 있다. 처음부터 교회에 안 나간 것이 아니라, 목회자나 교회에 실망하거나 신앙적으로 방황하면서 교회 출석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교회 대형화는 신학적·목회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를 방치해 이에 상처 받고 실망한 신자들을 가나안 성도로 내몰고 있다.
6.
다섯째,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늘고 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출석하지만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거나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주변을 맴도는 자들이다. 공동체에 속해서 관계 맺는 일이 불편하고 귀찮을 수도 있고, 성격상 어울리며 교제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교회는 공동체이고 가족이다. 익명 상태로 방치되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적절치 않다.
그런데 교회 대형화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고 방치하는 여건을 제공하고, 익명의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심지어 습관이 되도록 유도한다.
7.
여섯째, 신자들의 일상의 제자도가 방해 받고 있다.
신자는 교회에서 어떤 신자인지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교제와 교육은 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들이 일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제자로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교회 대형화는 신자들의 모든 달란트와 은사를, 시간과 물질을 교회 성장에만 동원하도록 부추긴다. 교회 중심의 삶은 신자 개인의 일상의 관계와 삶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8.
일곱째, 교회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
성공회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은 “교회는 받은 회비를 자기 회원들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라고 했다. 교회가 단지 자기 교인들과 자기 교회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우리 시대의 고난 받는 이웃들과 함께 손을 잡고 정치사회적 불의와 맞서 사랑과 평화를 행하고,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대형 교회는 큰 건물을 유지하고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는 참여하지만, 정작가난을 근본적으로 막는 제도 개선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며 공적으로 감당해야 할 공공사역을 외면한다.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대안 공동체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맘몬과 불의를 강화하는 역기능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재편](이진오, 비아토르, 2017. p9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