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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부활절 아침의 기쁨은 하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언제나 조용하던 교회 마당은 제비처럼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로 넘쳐났다. 그 소리는 교회당 안으로 빨려들어 즐거운 찬송 소리로 변했다. 예배 후에 아이들은 무지개 색깔로 칠한 달걀과 빵을 두 손에 받아들고 썰물처럼 교회당을 빠져나갔다. 백 목사는 아이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으며 축복했다. 잠시 후에 어른 예배가 시작되었다. 백형기 목사는 「의미 있는 인생」(마태복음 28장 1절-10절)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고 사흘이 지나서 묘소를 둘러보고,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늙고 병들거나, 병들고 늙어갑니다. 조상들이 하던 어제의 일들을 오늘 부모님들이 그대로 이어받고, 부모님들의 일을 자식들이 따라 하면서 인생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강물!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낭만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흘러가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강물은 댐을 만나 전기를 일으키고, 식수와 농·공용수가 되어 가정으로, 공장으로 공급될 때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보러 갔다가 뜻밖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한식과 식목일이 겹치는 주말이어서 조상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과 주말을 즐기려는 차량의 물결로 도로는 북새통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무덤을 열심히 찾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덤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인간의 생사화복이 달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무덤 속에서 예수님을 찾으려는 여인들에게 천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일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조상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11:25) 말씀했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살아있는 자에게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 내일이 있다는 소망, 이 믿음이 의미 있는 역사를 이어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린도전서15:2) 주님은 성경 말씀대로 죽으시고 그 약속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믿는 자의 사명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두 여인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는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갈릴리는 복음 전파의 출발점입니다. 오늘의 갈릴리는 우리들의 교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말씀 따라 사명을 감당함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십시다.
예배 후에 백 목사는 20여명의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서로 나누는 성도들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특별히 성도들은 설자를 둘러싸고 많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김성식 집사 부부와 이경순 집사는 밖으로 나가고, 박진태 선생을 비롯한 교회학교 교사들이 포마이카 식탁을 펼쳤다. 예배당 밖으로 나갔던 조정숙 집사와 이경순 집사는 김 집사 차로 음식을 실어 왔다. 이것은 어제저녁 때 조 집사와 이 집사가 오늘 부활절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 백 목사와 설자는 성도들의 점심 식사를 걱정하고 있었으나 모든 것을 직분자들이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성도들도 오늘까지 믿음을 지키며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백 목사를 보내주신 것을 감사드렸다.
다행히 팀장과 구역원들은 30~40대의 젊은 분들이었다. 그동안 그들이 지켜온 믿음과 열정은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교회에나 마찬가지 현상이지만 오늘 남자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백 목사는 구역별로 아내들이 때를 따라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해준 남편들도 멀지 않아 교회에 합류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활절과 함께 교회는 다시 살아났다. 백 목사와 설자도 새 힘을 얻었다. 저녁예배에도 1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고, 이튿날 새벽기도회에도 5~6명이 모였다. 교회학교도 어른 예배도 지난날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해가고 있었다.
이튿날 신문은 서울의 부활절 연합예배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었다.
「1973년 4월 22일 부활주일 새벽 5시, 서울 남산야외음악당에서 6만여 명의 신도가 모인 가운데 부활절 예배가 거행되었다.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보수세력 연합체인 대한기독교연합회(DCC)가 자리를 함께한 것은 부활절 연합예배를 개최한 지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 뜰 무렵 예배를 마친 신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남산을 내려갔다. 그때 회현동 쪽으로 내려가던 군중 속에서는 몇몇 청년들이 유신반대 글귀가 인쇄된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군중들은 대부분 돌아갔으나 청년들은 전단지 수백 장씩을 배포한 뒤 각자 귀가했다. 유신반대 운동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백 목사는 6월에 접어들면서 잃은 양을 되찾고 지역 복음화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대구에서 개최되는 목회자세미나에 참석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디모데후서2:2)
백 목사는 세미나에서 들었던 말씀이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유 목사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한 제자훈련이 교회의 그루터기로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김 집사와 함께 결혼식이 있는 가정이나 초상집을 빠짐없이 찾아가서 축하하고 위로했다. 설자는 조정숙, 이경순 집사와 함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가정이나 경로당을 찾아 그들의 일을 돕고 건강을 보살피는 일을 계속했다. 교인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명을 깨달음으로 큰 기쁨을 느끼고 서로의 믿음이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교회는 조금씩 성장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창원지역에 신도시가 건설된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