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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르네상스를 연 두 군주의 빛과 그림자'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영조와 정조는 당쟁이 난무하던 18세기의 혼란스러운 정치상을 헤쳐나간 인물들로 평가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되어, 자신의 그릇된 판단이라는 약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탕평책을 기반으로 강력한 왕권을 세워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도세자의 죽음은 때로는 영조에 대한 평가를 공과 과가 나란히 언급되도록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정조의 경우 강력한 개혁을 이끈 인물이며, 당시의 권력을 주도했던 노론과의 맞서 왕권을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 당시의 기록들을 통해 보건대 정조에게 내려진 '개혁군주'라는 평가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에게 어느 정도 상식적인 견해라 하겠다. 다만 정조의 죽음 이후 19세기에 벌어진 노론 핵심가문들의 세도권력으로 인한 폐해가 이어지면서, 정조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심정적인 측면이 그러한 명칭을 붙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이 두 사람의 왕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이들의 리더로서의 행동과 의미를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정조에 대한 역사 기록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적인 면과 함께 측근정치를 통한 어둠도 존재한다는 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
모두 5장에 걸쳐, 각 장에서는 두 사람의 행동과 정책에 대한 의미를 각각 10개 항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조선 르네상스 군주의 초상 : 영조와 정조'라는 제목으로, 왕위에 오르기까지 노심초사했던 두 사람의 상황과 당시의 정치 상황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들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경종의 죽음과 영조의 등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상황은 소론과 노론이라는 두 당파의 치열한 권력다툼과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그동안 장희빈과 민비와의 알력 정도로만 해석되던 것은 어쩌면 역사를 흥밋거리로 만들었던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 두 사람은 당대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소론이 지지하던 경종의 죽음은 이에 맞서던 노론에게는 권력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였을 수 있겟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배경을 잃은 소론들에게는 엄청난 위기로 다가왔다. 실제 당시 노론과 소론 사이의 권력 투쟁은 이 시기를 전후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과연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었던가를 차치하고서라도, 영조가 즉위한 이후 탕평을 내세우면서 당쟁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했던 것은 더 이상 당쟁에 자신을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위 기간 내내 교묘하게 당쟁을 활용하여 그들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반면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고, 그로 인해 권력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들과 맞서면서 지내야만 했다. 규장각을 세워 학자들을 양성하고, 장용영이라는 호위부대를 만들었던 것도 따지고보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을 것이라 해석된다.
'개혁을 향한 의지 : 저항, 극복 그리고 미완'이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그들의 개혁에 대해 걸림돌이 되었던 당시의 정치상황과 그를 헤쳐나가는 방법 그리고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개혁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기록들에 나타난 영조와 정조의 개혁 정치들이 이론상으로는 타당한 이유를 가졋을 지 모르지만, 당대의 현실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고 시행되어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그들이 행한 정책들을 '제도적 실험들 : 시대에 대한 이해 혹은 오해'라는 제목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이들이 시행했던 정책들이 지니는 밝음과 어둠의 양 측면을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4장에서는 그들의 개혁 정책이 지니는 의미를 '공감과 참여의 리더십 : 진심 그리고 한계'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마지막 5장의 '변혁의 시대 리더의 권위 : 묘수 혹은 악수'에서는 왜 그들의 정책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가를 소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18세기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다면, 그저 두 사람의 정책이나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의미를 부여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배경은 물론, 다양한 기록들을 토대로 보다 객관적으로 두 사람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각각의 소항목들의 말미에 '영조 그리고 리더' 혹은 '정조 그리고 리더' 등의 키워드로 관련 내용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이 덧붙이고 있다. 저자 스스로 그들의 정책이나 행동들에 대해 어떤 결론을 정해놓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기록과 정치 상황을 보다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과거의 역사를 이해할 때 감정의 측면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정확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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