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김분홍
넝쿨에 달린 T자처럼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다녔지
가끔 솎아내기와 행갈이가 필요한 일상
자벌레처럼 하루 0.9보씩 행보를 늘려나가면 되지
어느 시점에서 폭소가 터질지 모르므로
쉬지 않고 시간을 뱉어내는 흔적들
줄기의 목적지는
일조량의 원천을 찾는 것
그것은 담벼락을 모질게 두드리던 장맛비의 흔적이었으며 전봇대를 집요하게 휘감던 천둥의 빛나는 흔적이기도 했어
한 개의 밑줄에 천 개의 표정을 매달고 익어가는 생각들
시든 생각을 잘라버렸어
폭소가 터지기 전에
폭소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칼집을 넣어봤어
살해당한 흔적들, 광복절 태극기, 젖은 화약 냄새…. 휴일이 필요한 사건들을 생각하다가 원두막에서 잠이 들곤 했지
밤의 플러그를 뽑았지
흔적이 흔적을 감췄어
⸺계간 시 전문지 《포지션》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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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홍 / 1963년 충남 천안 출생.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첫댓글 한 개의 밑줄에 천개의 표정을 매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