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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945
우리는 먼저 어떤 종교나 그 신앙이 필요하지만 우리 불교는 특히 바른 정신이 필요합니다. 바른 정신이 못 되면 그때는 바른 신앙에 못 듭니다. 바른 정신만이 자기를 구제하고 타인을 구하는 것입니다. 바른 정신이 무엇인가? 이것은 비록 우리 중생이 어두워서 못 본다 하더라도 천지 이대로가 부처님의 심심미묘한 생명이라 말입니다. 우리 경(經)에는 극락세계가 십만의 국토 저 밖에 있다 합니다. 물론 중생의 이런 오염된 세계를 본다고 하면 그때는 그야말로 극락세계는 형편도 없이 멀겠지요. 허나 이것도 역시 우리 중생과 성자의 견해 차이뿐입니다. 성자가 보면 그때는 물론 이와 같이 못생기고 못난 이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라 말입니다.
그러나 각 성수(星宿)의 질에 따라서 마치 토성이 있고 목성이 있듯이, 같은 별도 역시 호법선신이 주재하는 그런 좋은 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목성에 사는 존재 또는 지구와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존재 금성 같은 좋은 곳에 사는 존재가 있습니다마는 아무튼 참다운 실상 이것은 극락세계인데 극락세계는 천지 우주가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다만 중생의 오염된 눈으로 보면 그때는 이것이 사바세계이고, 오염된 그 마음, 그 마음 떠나면 그때는 바로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 말입니다. 한 생각 깨달으면 부처요, 오염되면 범부라 말입니다.
그런데 깨달은 그런 문제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바른 정신이 먼저 앞서야 합니다. 비록 내가 지금 탐(貪)ㆍ진(瞋)ㆍ치(痴) 삼독심(三毒心)으로 가리어서 조금도 맑은 세계가 안 보인다 하더라도 맑은 세계를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맑은 세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천지 우주가 깨달음 뒤에 청정한 것이 아니라 본래 청정이라, 본래 청정함을 인정해 놓고서 닦아야 만이 공부가 빠른 것이고 우리 마음에 갈등이 적다 말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까 말씀드린 『유교경(遺敎經)』,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설법하신 『유교경』속에 있는 법문입니다.
‘지족공덕(知足功德)이라.’ 자기가 만족하는 것을 안다 말입니다. 바른 신앙이 없으니까 우리는 자기만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헌데 이런 만족을 아는 공덕은 어떤 것인가 하니, 여등비구(汝等比丘), 이것은 우리 비구뿐 아니라 사부대중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비구들이 약욕탈제고뇌(若欲脫諸苦惱), 만약 고뇌를 인생고를 없앤다 하면 당관지족(當觀知足)이라, 마땅히 족함을 우리들은 관(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만족을 모르니까 그에 따라서 차근차근 여러 가지 망동을 취하고서 죄를 범한다 말입니다. 지족지법(知足之法)이라, 우리가 만족을 아는 법은 어떤 것인가 하니 이것은 ‘즉시부락안온지처(卽是富樂安穩之處)라.’ 우리가 만족을 알면 그때는 재산의 유무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만족을 아는 그 마음, 청정한 마음으로 해서 그냥 그것이 부락(富樂)이라 말입니다.
‘지족지인(知足之人), 수와지상(睡臥地上)이라.’ 비록 땅 위에 누웠다 하더라도 ‘유위안락(猶爲安樂)이라,’ 오히려 안락스럽고 말입니다. 마치 공자가 물먹고, 나물 먹고, 팔 베고 누웠어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하듯이 사실은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면 비록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다 하더라도 별로 고통은 없는 것입니다. 당장에 죽음이 온다 하더라도 별로 고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만족을 모르면 도처가 고통뿐입니다.
어째서 그런 것인가. 극락이란 것은.... 원래 불성(佛性)은 무한의 가능성이 있어서 원래 불성은 무한대의 불성이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불성에 까지 못 가면 항시 불안스러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불을 못해 놓으면 충족감을 못 느낍니다. 이성으로나 또는 돈이나 어떤 것으로나 성불하기 이전에는 우리는 완전한 만족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먼저 만족이란 뜻을 잘 모르면 도처에 불만뿐입니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비록 땅위에 누웠다 하더라도 오히려 안락이 되는 것이고, 부지족자(不知足者)는 만족을 모르는 이런 사람은 수처천당(雖處天堂)이라, 천당 같은 우리 환경이나 물질은 풍족해서 모자라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역불칭의(亦不稱意)라, 제 마음에 맞지 않다 말입니다. 또한 동시에 ‘부지족자(不知足者) 수부이빈(雖富而貧)이라.’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비록 부자라 할지라도 가난한 것이고, 반대로 만족을 아는 자는 가난하더라도 부자인 것입니다. 부지족자(不知足者),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위오욕(常爲五欲), 항상 오욕에 얽매여서 ‘지족자지소연민(知足者之所憐愍) 시명지족(是名知足)이라.’ 따라서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은 항시 마음이 오욕의 노예가 되어서 참다운 만족을 아는 현자들에게 빈축을 받는 것이고, 가여운 마음으로 해서 연민밖에 못 받습니다.
이와 같이 비록 자기가 처해 있는 것이 구차하다 하더라도 역시 성자의 말은, 이것은 진어(眞語)라, 여어(如語)라, 성자의 말은 진어ㆍ여어입니다. 참 진[眞]자, 말씀 어[語]자, 성자의 말은 이것은 참다운 말입니다. 성자의 말은 여어如語라 여여한 말입니다.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내 참다운 생명이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망령된 망아(妄我)가 아니라 진아가 나일 바에는 진아(眞我)로 가는 길, 참다운 청정된 길은 모두가 다 부자인 동시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재산이나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참다운 자기를 모르는 길은 역시 가시밭길이고 구차한 것입니다. 학식이 많이 있고 또는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믿은 자기 신앙을 생명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소홀히 합니다. 불성은 나에게도 있겠지, 이와 같이 이치로만 따지고 자기 생명으로까지 공감을 하는 그런 신앙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신앙 대상을 간절한 앙모심(仰慕心), 간절한 그리움으로 구하는 그런 수행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부처님을 우러러보는, 자기가 불성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부처님을 우러러보고 그리워하고 흠모하는 그런 마음이 굉장히 우리 마음을 정화 시켜주는 것입니다. 허나 우리 현대인들은 배우는 것이 하도 바싹 마르고 또는 우선 물질에 오염되어서 말입니다, 우리 신앙 대상인 부처님을 생명으로 구하는 추구하는 앙모(仰慕)하는 힘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태도는 기독교인의 신앙으로부터 참고를 해야 합니다. 정말 그리움으로 해서 부처님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념신해(一念信解) 공덕이라, 한생각 우리가 믿고서 해석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말하는 법문입니다. 기유중생(其有衆生), 어느 중생이 문불수명장원여시(聞佛壽命長遠如是)라,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해서 그때는 한도 끝도 없는 것을 듣고서 안다 말입니다. 우리는 법신 부처님을 단순히 이치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생명인 것이니까, 내가 생명이듯이 내 본질이고 천지 우주의 본질인 부처님 바로 이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우주의 순수한 생명이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생명이 장원(長遠)이라, 특히 영생하고 또는 무량수인 것을 의미하고,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부처님의 생명이 무량수임을 듣고서, 능생일념신해(能生一念信解) 소득공덕(所得功德)이라, 능히 한생각 믿고서 해석하는 것을 얻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 하면 내가 부처지 하고서 그냥 자기를 초월하는 자기 본 생명 자리, 영원의 자리를 무시하면 그때는 공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내 생명의 본질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생명이 영원한 것을 듣고서 믿는 그 마음 그 공덕이 얼마나 크냐 하면, 그때는 무유한량(無有限量)이라 한량이 없다 말입니다. 약유선남자선여인(若有善男子善女人), 만약 불교를 믿는 그런 착한 사람들, 착한 여인들이 위무상도(爲無上道)이고, 해탈을 위한 무상의 진리를 위해서 보시를 하고 계행을 지키고 인욕을 하고 또는 정진을 하고 참선을 하고, 이와 같이 바라밀을 많이 닦는다 하더라도, 이런 공덕은 비전공덕만분천분(比前功德萬分千分) 불급기일(不及其一)이라, 앞서 말한 부처님의 생명을 무량하게 믿는 그런 공덕에 비교하면, 그냥 그것을 모르고서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보시도 하는 공덕은, 부처님 생명의 영원스러운 것을 믿는 공덕의 천분의 일도 못 되고 천만분의 일도 못 됩니다. 이와 같이 큰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우리가 지금 안 보인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공덕은 역시 무량하다. 즉 영원적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런데서 불상숭배나 방편적인 신앙이 나온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오직 따지고 보면 이런 오바라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 이런 오바라밀이 기초가 되어야겠지요. 그러나 부처님을 이와 같이 공경스럽게 아! 그리운 부처님이시여! 하는 간절한 갈앙심, 이런 갈앙심이 순간순간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경에서 일념왕생(一念往生)이라, 한 생각 청정하면 그 일념으로 해서 우리가 극락에 간다 말입니다. 다만 중생은 일념 그것이 순수하게는 못 되는 것입니다. 일념이 순수하면 그 즉시 신통도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바위가 불성뿐이다, 바위나 또는 공간이나, 나무나, 무엇이나 다 순수한 불성뿐이다, 불성은 물질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또는 내 몸도 불성뿐이다. 내 몸도 각 원소가 합해서 이와 같이 현상적인 사람 몸이 되었다 하더라도 사실은 지금 불성을 감추고 있는 살아있는 불성뿐인 것입니다. 헌데 이와 같이 모두가 다 불성뿐이라고 정말로 믿으면 우리가 공간을 날아갈 수도 있고 신통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오염된 습기 때문에 그와 같이 백 퍼센트 못 믿습니다.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 믿을 신[信]자, 가득할 만[滿]자, 성불이라 말입니다. 사실은 믿음만 백 퍼센트 믿게 되면 그때는 그것으로 성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은 그렇게 못 믿는다 말입니다. 따지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 또는 습기 때문에 가리어서 백 퍼센트 못 믿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못 믿기 때문에 병도 안 낫고 공덕을 입지도 않습니다. 일체가 가능한 것이 불성이기 때문에, 따라서 단순 소박한 염불이라, 일념도 흐림이 없는 순수한 공부를 유도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방편을 세우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명이 무량무수(無量無數)함을 딱 느끼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 하니 비록 금생 내내 보시하고 인욕을 하고 또는 정진을 하고 계행을 지키고 참선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이런 공덕은 부처님을 참답게 믿는 공덕의 몇 분의 일보다 못합니다. 이와 같이 갈앙하는 갈앙심의 공덕은 큰 것입니다.
특히 우리 재가불자님들은 부처님을 갈앙하는 갈앙심, 즉 우리 고향은 바로 극락세계이고 우리 참다운 자리는 부처님입니다. ‘자성미타(自性彌陀) 유심정토(唯心淨土)라.’ 참다운 자기생명은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그리움 그것이 없으면 거기에 못 갑니다. 갈앙심이 순수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서 비약적으로 성불하고 맙니다. 그래서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되었으니까 이제 훌쩍 뛰어넘어서 끝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부처님께서 맨 나중에 말씀하신 『유교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경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여기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새기고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불언(佛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박문애도(博聞愛道)는 도필난회(道必難會)요, 널리 듣고서 도를 탐하는 사람들은 그 도를 반드시 만나기 어렵고, 학문의 바다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팔만장경을 다 공부한 뒤에 우리가 성불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성불을 못 하고 맙니다. 이와 같이 많이 듣고서 닦는 그런 행법은 도(道)를 만나기 어렵고 말입니다. 수지봉도(守志奉道)는 그러나 비록 학문은 별로 없다 하더라도 순수한 뜻을 지키고서 수지봉도라, 그런 진리를 받들고서 갈앙하면 이것은 그런 때는 도(道) 이것은 기도심대(其道甚大)라, 깊고 크다, 그런데서 우리 참선하는 사람들은 문자를 배우지 말고서 마음을 딱 집어서 마음 깨달아라! 이런 말씀을 합니다.
마땅히 복잡다기한 그런 것에만 불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가운데서 마음을 닦는 가운데서 깨우침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經)을 미처 못 배우고 그런 잡다한 공부를 못한 분도 역시 이런 박문애도(博聞愛道)를 능히 듣고서 도(道)를 사랑하는 그런 것은 도필난회(道必難會)요, 그런 도는 반듯이 얻기가 어렵고 말입니다. 뜻을 받들어서 도를 희망하는 그런 순수한 길은 도가 깊다, 그런 것을 명심하셔서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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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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