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박노자)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내 아들은 지금 고3이다. 내년 초에는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비록 노르웨이의 교육제도에서 한국과 같은 입시는 없지만, 고교 시절의 평점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대입이 가능하기에 국내 학부모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쓰인다. 아이의 학습 현황이 걱정되기에 현재 한국에 초빙 연구자로 체재하면서도 아이와 그 문제로 계속 원격 소통을 한다. 아이와 대화할 때 가끔 학교 공부의 유용성에 대해 논쟁을 하게 되지만, 아이에게 고등 수학이나 고대사가 실생활에서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를 납득시키느라 애를 먹곤 한다. 그러나 예컨대 노르웨이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노동권 교육의 필요성을, 아이는 의심한 적이 없었다. 본인도 아르바이트를 잠깐 한 일이 있기에, 그 상황에서는 시급이나 잔업, 근로계약 등에 대한 지식이 유용했다는 것은 그도 인정한다.
북유럽 아이들은 ‘노동’에 대해서 일찌감치 배운다. 노르웨이에서도 중2 때 ‘실습’이라고 하여 현장에서 일하면서 법정 노동·휴식 시간 등과 같은 개념들의 의미를 체험을 통해 깨닫지만,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중2~3 때에 2주간 현장실습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2주 동안 ‘일’의 맛을 직접 보면서 노동보호법률 조항을 하나하나 배우게 된다. 스웨덴 중2 사회 교과서에서는 예컨대 실업급여 같은 주요 복지 시스템이나 노동보호 법률에 대한 심화학습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장에서 쓰일 만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 배경까지도 아이들이 배워야 한다. 나는 아이의 고교 역사 학습을 도와주면서 역사 교재를 접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는 19세기 노르웨이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초기 노동운동의 출현, 1887년의 노동당 창당, 노동 투쟁의 이정표, 그리고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복지시스템 구축의 역사 등이 상세히 다루어져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북유럽 학교를 졸업하는 고졸 학생들은 이미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잔업수당 계산 방식 등에 대해 ‘상식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노동권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윤 창출과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독’(毒)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독이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약물 생산 등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쟁 시스템도 일정한 법적 제약 속에서 적용되는 경우 기술 혁신 등 순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 제약이 풀리기만 하면 민간 자본·시장·경쟁은 곧바로 약물이 아닌 독물로 돌변하는 것이다. 국가가 환경보호 법률의 준수를 강제하지 않으면 공장 굴뚝들은 유해 물질들을 마구 허공으로 뿜어낼 것이고, 노조가 없고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노동현장은 전태일 열사가 1960년대 말에 체험한 평화시장 격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을 자본가들의 재량에 전적으로 맡기기만 하면 이 사회는 곧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정글’로 변한다.
노르웨이에서도 청소년 노동권 교육이 절실한 이유는, 드물긴 하지만 청소년 노동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가끔씩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학생 중에서도 여름에 웨이터로 일하면서 잔업, 특근 수당을 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결국 노조의 법률 지원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 돈을 받아냈지만, 여간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나마 노르웨이에서 알바생들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노조에 가입하여 비상시에 노조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젊은이들이 노동 시장에서 초과 착취나 사기, 임금 도둑질을 당할 확률은 비교적 적은 편이긴 하지만, 거기에서도 일정한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노동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하루하루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그 희생자는 노동자,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 청소년 노동자들이다. 잔업수당은 고사하고 임금 전액이 체불되는 것도 한국에선 다반사다. 전국적으로 체불임금 총액이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이 신생 ‘선진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마성의 기쁨>과 같은 유명 드라마를 만든 제작진이나, 3년 전에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평창올림픽의 시설을 만든 건설노동자, 셔틀버스를 운전한 기사, 행사 진행에 진력한 도우미 등도 임금 체불의 고통을 겪었다. 약 3분의 1이 임금 체불을 겪고 있는 한국 내 고려인들을 지원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임금체불 건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준 한 성직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임금 체불은 국내 업자들의 ‘생리’에 가깝다.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인건비’를 ‘인력’들에 주지 않고 ‘급한 데에’ 쓰는 것이 업계의 ‘관례’다.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차적으로 희생당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018년 10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학생 8654명을 대상으로 ‘서울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중 15.9%가 아르바이트 유경험자였으며, 그중에 47.8%가 임금 내지 수당 체불을 비롯한 각종 노동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소매업, 배달업, 식당업 등에서 젊은이들의 저임금 노동이 이 사회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싸움터 같은 일터로 나가야 할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지식을 학교는 미리 제공해주지 않는다. 사회나 도덕 교과서에 ‘노동’에 대한 단편적 언급들은 있지만, 한국의 각급 학교들은 아직도 근로기준법 같은 노동 관련 법률, 노동권 침해의 유형, 노동권 침해에 대한 대응 방식, 그리고 노조 가입의 중요성에 대해서 체계적인 학습의 기회를 학습자들에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습자들은 나중에 노동의 현장에서 업자로부터 사기를 당할 뿐만 아니라 안전 장비 미제공에 대한 항의를 할 줄 몰라 산업재해에 노출될 확률 또한 더 높다. 즉, 많은 젊은 노동자들에게 노동권 교육은 생활 이상의 생명의 문제다.
영화 <카트>에서 진상 고객에게 마트 비정규직 직원이 무릎 꿇고 빌어야 했던 그 유명한 장면을 본 내 노르웨이 학생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게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고 나에게 자주 물어왔다. 만약 직장에서 각종 갑질에 늘 노출되고 있는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일찍 노동권 교육을 받게 된다면 그들은 더 쉽고 효율적으로 이런 모욕을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현 정권의 공약대로 우리가 ‘노동 존중 사회’로 나아가려 한다면, 학교에서 노동권 교육을 제도화하여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그 권리를 미리 가르치는 것이 바로 첫 조치가 돼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첫댓글 전태일이 노동자로 살았던 1960년 대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법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오늘날 중고등학생들은 그 정도는 아니겠으나, 노동권 교육은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교육과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