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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백반기행이 인기인 모양입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인천 모식당 설렁탕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골 국물을 쓰다 이제는 소 목뼈로 국물을 낸다 하고 뽀얗지 않고 맑은 국물이라는데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소머리를 쓰지 않고도 설렁탕 맛이 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 가보기로 했지요. 동인천은 천안 쪽보디 급행이 많아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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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쯤 되었는데 벌써 손님이 많습니다. 원래 그런 건지 방송의 힘인지?
동인천역에서 여기로 걸어오며 청과물점들이 몇 곳 있어 의아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청과물시장이 구월동에 1994년 농산물 시장이 들어설 때까지도 있었다 하는군요.
이 집은 시장에서 일하느라 허기진 인부들이 많이 찾던 곳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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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리니 펄펄 끓는 설렁탕이 나왔습니다.
고추를 쓰지 않은 무생채, 국물을 설렁탕에 넣기 좋게 잘 익은 깍두기, 상당히 매운 다데기.
막걸리는 없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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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졌지만 오래 전 남양주세무서 옆에 정육점을 겸한 설렁탕집에서
장국처럼 맑은 국물의 설렁탕을 팔았는데 냄새와 맛이 깊어 한동안 단골로 다녔습니다.
이 집 설렁탕은 대파가 많이 들어가도 설렁탕 특유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국물에 소머리 뼈를 쓰지 않아서 일까요? 이걸 깔끔하다면...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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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너무 얇게 썰어 맛과 식감이 떨어집니다. 갯수가 줄더라도 조금 더 두터우면 좋았을 텐데요.
다데기와 깍두기 국물을 넣으니 맛이 나아집니다.
하동관에 가면 깍두기 국물을 주전자에 넣고 테이블 사이를 다니면서 '깍꾹, 깍꾹' 외치던 분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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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채가 마음에 듭니다. 너무 달거나 시지도 않고 딱 알맞습니다.
하나 더 달래서 하얀 밥 대신 하얀 무를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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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하기는 약간 모자란 듯한, 설렁탕이라기보다는 쇠고기 국밥에 더 가깝지 않나 느껴졌습니다.
설렁탕이라면 기대치보다 떨어지고 국밥이라면 만족스럽습니다. 국밥으로 클리어!
초기 이 집의 주 메뉴는 해장국이었답니다. 배추잎을 넣어 끓인 해장국은 담백하고 맑았는데
이게 입소문을 타 하루 쌀 한 가마니(80 kg)을 소비했다니 대단하지요?
설렁탕에서 특유의 냄새가 없는 이유가 맑은 해장국에서 설렁탕으로 진화한 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설렁탕의 맑은 국물은 편집 과정에서 맑은 해장국과 엉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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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 차이나타운 쪽으로 가다 눈에 띄는 거함 같은 건물, 그 뒤로 교회 첨탑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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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니 거함 같은 건물은 인천교구청으로 몇 개의 건물이 연결된 것이고 첨탑은 답동성당이었습니다.
1890년대 지어진 성당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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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종루 쪽과는 달리 제단이 위치한 뒷쪽은 풍부한 볼륨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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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과 화강석으로 아름답게 조화된 벽체
서울역을 포함해서 일본인들이 지은 근대 건축물의 기둥과 창호에 화강석 같아 보이는 부분이
메탈 라스( metal lath )를 대고 몰탈로 처리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는 실망감과는 대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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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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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으로 갑니다. 민어횟집이 많이 늘어 민어거리가 되었습니다.
사시사철 민어 정식을 먹어 볼 수 있는 곳이지요. 보는 것마다 식욕이 동하니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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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에 정박중인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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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입니까? 저렇게 손이 많이 가니 중국집에서 군만두 보기가 힘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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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 8가지가 들어간 팔보월병과 꿀, 조청, 찹쌀가루가 들어간 아낙빵 하나 씩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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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으로 반주를 제대로 하질 못해 섭섭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 김에 짜장면이나 하나 먹고 가야겠다고 다시 차이나타운 쪽으로 가는데
벽에 커다랗게 평양 냉면이라 써 놓은 집을 발견했습니다. 잔소리 말고 돌격!
제가 평양 냉면이라면 사족을 못써서요. 설렁탕집과 마찬가지로 1946년에 개업을 한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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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붙여놓은 1940년 대 신포시장 사진들.
갈비탕은 점심 때 25그릇, 저녁에 10 그릇만 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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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온 냉면 비주얼이 좋습니다.
반주 못했어도 차마 백팩 속 먹다 남은 쏘주병을 꺼내질 못하겠네요. 패트병 하나 준비해서 담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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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욱 육수를 들이킵니다. 육수 맛은 굿, 면 맛은 그런대로, 식초 많이 들어간 냉면 김치가 격을 떨어뜨립니다.
다음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갈비탕을 맛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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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73 년이나 영업해온 음식점을 두 집이나 방문한 것은 영광이었습니다.
한우를 고집 않는다면 고기를 더 넣어도 원가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힘들다면 가격을 좀 올리던가, 그 점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또 오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라지만 조금씩 먹는다 해도 반나절에 두 가지 먹기 힘드네요.
4 명이 둘러 앉아 이것저것 시켜 먹는 먹방 존경스럽습니다.
그래도 먹기만 한 것 아니라 답동성당을 거쳐 6 km 걸었으니 뭐, 그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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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다리 블로그
http://blog.daum.net/foto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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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동안 인천에 소홀했습니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온 한 설렁탕집에 삘이 꽂혀
동인천 급행 전철을 타고 향합니다.
설렁탕의 맛은 편육과 국물에 있고 냄새가 그럴 듯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체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짐작컨데는 소머리로 국물 내고 -물론 모든 뼈 포함-
대파를 넣어줘야 상승작용이 일어나는 듯합니다.
반나절에 두 곳 방문 - 일타쌍피
다음에 또 가야할 텐데 또 1타쌍피 될 것 같습니다. ^^
멀리까지 알찬 나들이를 하셨군요
우리도 100년된 식당들이 곧 나올까요?
지공대사 내공쌓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