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산책 요한복음 1장 1-9절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안에서 생명이 생겨나고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고 그 빛이 세상에 오셨고 그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요한공동체의 고백입니다. 예수님 즉 말씀(토라)이 삶이 되고 빛이 되고 사랑이 되셨다는 성육신 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 말씀, 정신이라는 게 그냥 진리, 말씀, 정신으로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생활이 되고 삶이 되고 몸이 되었을 때는 삶을 구원하는 신비요, 능력이요. 힘입니다.
2주 전에 오광식 집사님 아드님이 기획한 공연에 갔었습니다. 메트라이프라는 기업이 차차웅이라는 예술단체에 후원하여 탄생한 콘서트로 퓨전국악콘서트였습니다. 콘서트 중간에 사회자가 나와서 설명을 하는데 민요라는 게 특별한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탄식, 신음소리와 같은 일상의 언어를 음악화시킨 장르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아이고 힘들다”, “죽겠네 죽겠네” 이런 지극히 현실적이고 고단한 일상의 한숨이 노래의 씨앗이라는 발상입니다.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지금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 그 안에 탄식, 기쁨, 감탄, 사랑, 감동, 아픔, 고통의 신음소리가 우리의 노래요 우리가 듣고 공감하고 소통해야할 일상의 소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달타령, 연애타령 노래들을 부르는데 춤과 현대적 음악적 기교를 섞어서 너무 감동적인 연출을 만들어낸 신명난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을 자신들이 가진 음악이라는 재능으로 사랑하고 소통하고 승화시켜나가는 사람들이구나.” 지난주에 <파리,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80년대를 배경으로 이혼한 가정이 파리에서 정착해서 사는 소소한 일상을 따뜻하게 담은 삶의 이야기인데 그 집에서 살게 된 한 떠돌이 여자아이가 이런 대사를 칩니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일상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평범한 일상조차도 제정신으로 살아내기 힘들어 약간의 감정을 들뜨게 하는 마약이나 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소소히 제정신으로 맞으며 작은 친절과 다정함, 선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평범한 일상에 지극히 평범한 작은 친절, 다정함, 기쁨, 따뜻함, 측은지심, 애틋함을 가지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춤과 노래로 연출해내는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라는 존재를 만드셨는 데 내가 내 일상을 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서 잔잔한 평화의 일상을 일구어가는 것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단 하나의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삶이 되고 사랑이 되고 실천이 되고 심지어 예술과 노래가 될 때 그것이야말로 신비요 일상에서 경험하는 영원성인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 해 동안 동녘이 걸어온 삶을 마무리하는 당회가 열리는 날인데 우리 가운데 우리 모두의 삶을 통해 일구어진 다양한 이러한 빛의 산책들, 말씀과 빛이 성육신되어 우리 안에 생명을 이룬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물론 똑같은 일과 사건도 사람마다 보고 해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해석하는 관점과 여러분들이 해석하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얘기를 들으시면서 “나는 생각이 다른데” 하지 마시고 아 목사님은 이런 일들을 하면서 저런 걸 느끼셨구나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저희 교회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은 동녘동행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추진했던 트레킹이었습니다. 특별히 봄에 이루어진 트레킹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갈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마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어른들만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과 손잡고 나들이 할 수 있는 시선이 담긴 기획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빛의 산책이었습니다. 저는 동동부 트레킹 뿐만아니라 평상시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놀 때 어느 누구도 어른의 방식으로 함부로 제지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너무 제지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교회라는 곳이 뭔가의 틀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어떤 상황속에서도 먼저 교육하려는 게 아니라 이유를 물어봐주고 소통하려 들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먼저 알려하는 그런 자유롭고 따뜻한 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승현이가 교회가는 게 좋데요. 집은 좁고, 비오면 밖에 나가서 축구 못하는데 교회는 좁지도 않고 비가와도 축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요즘같은 사회에서 자율적인 동기로 교회가고 싶어하는 어린이를 만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이 하나조차를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하나님을 영접하는 시선으로 보라는 이러한 말씀이 살아있는 이 교회가 좋습니다.. 동동부 트레킹을 잘 진행해주신 장현일 집사님과 교회학교 전도사님, 청년, 그리고 일일교사로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박수하도록 합니다.
올해 마음살림부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산책을 진행했습니다. 마음살림부의 특징은 부원들이 모두 참여하며 저마다의 결을 냈던 한해였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살림부는 문화산책을 획일화하지 않았습니다. 송원석 부장님이 독식하지 않았습니다. 이필우님, 고정숙님, 명정숙 님, 송원석님 자기 색깔에 맞는 소중한 것들을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에 녹여주셨습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이나 달란트를 가지고 몸과 마음, 관계를 연결시키고 소통시키고 더 풍요로운 관계로 발전하도록 애써주시고 노력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자기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끼리 만나면 상호 충돌합니다. 갈등도 심화됩니다. 부부도 둘 다 그러면 결국은 오래못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둘 중의 하나가 내려놓습니다. 아무리 강해도 상대가 스펀지처럼 수용하면 관계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마음 살림부의 일들을 보면 하나의 방식이 지배하지 않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질들을 잘 살려주는 다양성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양성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명의 말씀, 빛된 가치를 귀하게 산책해주신 마음 살림부원들을 위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한 해 동안 공동체의 텃밭농사를 위해 애써주신 초록 살림부의 신비로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봄부터 가을까지 밭을 갈고 감자를 심고 대를 세우고 파종을 하고 모종을 심고 양파와 마늘을 캐서 나누고 고구마 심고 가을걷이를 하고 물론 제가 일을 많이 했지만 저 혼자는 결코 못하는 일들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게 아침마다 오는 동무가 있었습니다. 텃밭농사의 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이 모든 과정에 다 참여하지 않으셨어요. 밭을 갈 때는 초록살림부원 남성 3-4분이 양파와 마늘을 캘 때는 그 양에 맞는 인원들이, 나중에 울금을 수확할 때, 포장할 때 적절한 인원이 적절하게 분배되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알맞고 적절한 방식으로 모든 농사일정이 마쳐졌습니다. 절묘한 배치입니다. 의도했던 것도 아닙니다. 울금환을 포장하는데 병을 씻을 때 담을 때 스티커를 붙일 때 그날 오광식 집사님 아드님 기획공연을 가야해서 4시 전에는 마쳐야하는데 저 혼자 했으면 못 마쳤을 것 아닙니까? 근데 정확하게 3시쯤에 다 마쳤어요. 1시간 쉬고 공연에 갈 수 있었어요. 이게 의도적으로 계산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는 저마다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공동체 안에 주어진 다양한 과제들을 절묘하게 견인해 나갈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연결성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순간도 외롭지 않게 적절하고도 절묘한 책임감이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의 삶을 견인해 갑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에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띠로 온전하게 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말씀이 실재하는 흔적들입니다. 초록 살림부원들 일하면서 부모님도 모시면서 아이들 돌보면서 사회적 책임도 다하시면서 텃밭 일을 견인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텐데 우리 안에 이런 신비를 엮어가신 초록살림부원들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올해의 마을 살림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한해였습니다. 싸움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환경운동인데 아직까지 <산황산 범대위>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신비요 기적입니다. 10년이 넘고 심지어 소송까지 진행되고, 싸움이 다 끝난 듯 싶다가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결국은 승인되고 긴 병에 효자없다고 오랜 싸움에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단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결합을 못하고 있는데 동녘마을살림부에서 뚝심이 대단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상이 아무리 좋고 선하고 뜻이 있어도 그것을 일구어가는 과정은 지난한 과정들입니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인간적 한계와 유한성, 나약함 이런 것들을 날것으로 다 마주하면서 그 일을 해 나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사람이 주는 상처와 실망을 마주하면서도 그 자리에 서있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닙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하여금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는 야고보서 기자의 고백을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지켜야할 자리를 지켜가면서 말씀을 살아가는 용감한 사람들, 마을 살림부 부원들입니다. 서로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평화연대부입니다. 평화연대부는 평화센터봄의 일들을 일구어왔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서울역 쪽방촌>, <농업>,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제를 다루는 <지금바로여기> 고양시 공동체 영화상영과 다양한 인문학을 진행하셨습니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지역민들이 보다 많이 참여하는 인문학적인 성과를 거둔 한해였습니다. 물론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노력해온 결과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평화센터봄을 통해서 다양한 행사를 하는 이유는 공동체 내부와 함께 외부 모두를 더불어함께 풍요롭게 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반드시 외부용만도 아니요 반드시 내부용만도 아닙니다. 저희가 지난 행신동 시절 교회 내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도 이게 우리 것도 되지만 우리 것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만들어가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던 것이고 조금씩 조금씩 더 고양시에 있는 다양한 시민들과의 연결고리가 확장되어가는 한해가 된 것 같습니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평화의 일꾼으로 보내노라”는 말씀에 힘입어 힘 있게 엮어온 평화살림부를 위해서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청년부와 남녀선교회를 통해서 이룬 <마이데이>, <새신자환영회>등과 같은 공동체의 다양한 축제와 잔치와 기쁨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많이 웃었고 여러분들 때문에 삶이 축제 같았고 여러분들 때문에 삶에 의미와 보람을 많이 가꾼 한해였습니다. 한 해 동안 이러한 “말씀이 삶이 되었던, 정신이 사랑이 되었던, 빛의 산책들”을 우리가운데 이루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 귀한 길들을 열어 가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두를 위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