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팡 콩쿠르로 모두를 놀라게 한,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근자에 자신을 털어놓았다.
20대에 명성을 얻지 못하면 피아노를 때려치고
다른 일을 하여야 겠다고 망설였다고.
정비석선생도 사는동안 3번을 펜을 놓았다했다. 졸곡제랑 성황당으로 입신을 했고 춘원으로부터 " 자네는 글을 써서 먹고 살만하겠 군"하는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1939년에 쓴 산정무한 이
우리에게 멋진 금강산을 보여줌으로서 더욱
내금강에대한 동경과 함께 유려한 문체가
마치 지금 우리 즉 현대인이 막 쓰고 내논 듯
느껴진다.
이처럼 음악과 문장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도
혼돈과 헤매기를 수없이 하였으니 우리같은
보통사람은 어떠하겠는가.
두보는 어린애가 바늘을 구부려 두드리면서
낚시바늘을 만든다했고, 세계적 올갠이스트인
슈바이처도 30까진 자신을 위해살고 30이후론
남을위해 산다했다.
결국 쉽게말해 마음먹기에 달려보이지만
계속되는 반복과 건반을 두드리고 만년필을
수없이 갈고 잉크병을 몇개의 박스채로 쓰고
또 씀으로서 일별이 아닌, 정려한 문장,참신성이
배어나온다.
매일 쓰지도않고 잘 쓰기를 바람은 연목구어 요
감나무아래서 감 내놔라는 허탄한 망상이다.
자꾸 쓰면서, 매일매일 스님이 염불하면서
정신과 마음을 한곳에 매어 단련하듯 해야한다.
성당에서 왜 매일 미사때, 전례를 통하여
" 마음을 드 높이, 주를 향하여"하며 성찬예식을
밤낮 똑같이 하는가.
아예 몸에 배게하려는 의식의 발현이다
그렇다면 글을 써보고 또 문단에 가입하였으면
정기적으로 글을 올려야한다
두보, 왕유 전집의 시를보면 쓰는 족족 유명하고 아주잘 쓴 글이라 여기는가 우리 눈에띄는것즉 명편은 얼마않되고 초 일류의 시인도 무덤덤한 시를 많이 썻다.
황순원은 잡문안쓰기로 유명하지만 결국 그는
겨우 5권의 전집만 남겼다.카인의 후예.나무들비탈에서다. 독짓는 늙은이 등등에 소나기라는
애들같은 단편 쪼가리을 남겼다.
평범한 일본주부가 60년에 빙점으로 주부생활에서 고료 100만원으로 미우라아야꼬는
커다란방향전환을 맞았다. 동네 작은 슈퍼를
꾸리면서 너무 잘되니까 다른가게도 같이살아야 된다는 마음으로 일부러 물건진열에
Short를 했다.
대망이라는 일본대하소설에 자극받아 박경리도
토지를 남겼어도 첫 1권 한권을 제외하곤
졸작이다. 그녀도 그렇게 쓰고 또 쓰고 매달렸지만 그래도 우리도 대하소설을 갖는다는
자부심하나는 건졌다.
말로만 노인 한명이 죽으면 백과사전 1질이
소멸되고, 말만 떠들며 나의 일생을 글로 쓰면
어마어미하댄다. 왜 못 써 직접쓰지.
삶의 방향전환으로 직업을 3ㅡ4개 바꾸고
마누라 남편 마구 바꿔 이혼을 밥먹듯하는
막가는 세상이되었지만 동거생활 해보고
결혼하겠다는 웃기는 젊은이들의 잔꾀에
마치 죽음을 알고나서 즉 죽은후에 생을 살겠다는 윤리학이 마비된 세상이다.
못된길로 방향전환말고 좋은 길로 방향을 틀자
60년대에 Clistin killer 절세의 미녀는 영국
국방상 프로퓨모와 정략적으로 잠자리를 같이했다. 의회에서 떠들어 대려할 때 그는 물러나서 런던빈민촌에서 끝까지 봉사하고 죽었다.
배우 조민기도 여자를 건드렸다니까. 연민,부끄럼 속에 자살하였다
일정시대 잘나가던 판사가 사형선고를 내려
죽였는데 죽은이가 범인이 아님이 밝혀지자
중이 되었다. 조케사에서 효봉스님 진신사리를
60년대에 나는 알현하였는데 대웅전에서
빛나는 그 빛갈을 못잊는다.나는
계속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의 길을 가련다"
도 있고, 한길 우물만 판다.
회심과 대오각성 끝에 또 다른 길을 가면서
인류에게 빛을 발하기도한다.
공자가 " 내가 생조차 모르거늘 죽음을 어찌
알겠는 가" 솔직한 대답이다.
시끌벅적하고 가치와 정의 그리고 정직이 말라
버린 세월을 그런대로 " 정직한 행위에대한
정당한 대가"를 마음에 담고 살아온 72 늙은이가 아무리 코로나 어쩌구해도 보아강변을 걸으면서 어제 슈퍼스토아에서 캐서가 깜박하고
캐쉬대의 물 한박스를 안찍었을 때 그냥 땡뜰까하다 물을 지적하니 그여자는 스캔하며.웃었고
나도 웃었지. 맞다. 웃으며 살자. 이왕 사는건데
첫댓글 참 재미있습니다.
박학한 내용에 빠져들기도 하고요.
읽을 꺼리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