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8
8. 낙동강(조명희) 줄거리
박성운은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한(恨)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성운'을 도립 간이 농업학교에 보낸다. 학교를 졸업한 '성운'은 군청 농업 조수로 일하게 된다. 그는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직장을 그만두고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투옥된다. 감옥에서 나와 보니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집도 없이 누이동생에게 얹혀 살고 있다. 중국 땅 서간도로 간 '성운'의 가족은 그곳에서도 힘든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는 사회주의 이념에 깊이 공감하게 되고, 귀향하여 소작 조합 운동을 전개한다. 농민들의 삶에 뛰어들어 고락(苦樂)을 함께 하며 지주의 횡포에 대항해 소작 쟁의를 일으키는 '성운'의 활동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점차 운동의 역량을 키워 간다. '성운'이 살던 마을은 낙동강변인데, 그곳에는 주인 없이 방치된 하천 부지가 있어, 동네 사람들의 공동 경작지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일제가 들어와 토지 정리 사업을 하며 마을의 공동 소유지라고 생각되던 그 강변 부지 땅을 빼앗아 일본인의 손에 불하(拂下)하는 일이 일어나자, '성운'을 앞세운 마을 사람들의 격렬한 항의가 시작된다. 일제는 이 봉기를 힘으로 제압하고 '성운'은 주모자로 붙들려 들어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병이 생겨 보석(保釋)으로 풀려 나게 된다. 한편, '성운'의 농민 운동에 감화된 '로사'는 안락한 삶의 길을 버리고 '성운'과 의기 투합하여 농민 운동에 뛰어든다. 두 사람은 혁명 동지이자 연인으로서 같은 길을 걷자고 굳게 다짐한다. '성운'은 '로사'에게, 그녀 자신부터 봉건적 여성관을 떨쳐 버리고 혁명 여성으로서의 길을 갈 것을 고취한다. '성운'의 병이 악화되어 끝내 사망하자, '로사'는 그의 유지(遺志)를 계승할 것을 결심하며 대륙으로 떠난다.
핵심정리
배경 : 1920년대 조선, 낙동강변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 : 이념을 여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출함.
의의 : 1920년대의 <신경향파> 문학에서 본격적인 목적성을 추구하는 <프 로> 문학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던 시기에 민족 해방 투쟁의 전망 을 보여준 이정표적 작품으로 평가됨.
주제 : 식민지하의 피폐한 농촌 현실과 이를 개혁하고자 했던 혁명가의 비극 적 삶.
등장인물
박성운 : 낙동강 어부의 자손. 사회주의 운동가. 일경(日警)에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사망
로사 : 정의 딸.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 안일한 삶을 거부하고 성운을 도와 농촌 사업에 헌신한다. 이 이름은 풀란드 출신 사회주의 혁명가인 로 사 룩셈부르크에서 연유.
이해와 감상
<낙동강>은 프로 문학의 한 모습을 보여 줌.이 작품은 경향파의 단계를 넘어 프로 문학의 단계에까지 근접한 작품으로 투쟁성이 강조되는 주제 의식이 보이는 작품임. 주인공 박성운은 공부를 한 덕에 안정된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에 눈 떠 그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그러다 옥살이를 하게 되고, 급기야 사회주의자라는 보다 철저한 단계의 의식으로 무장하고 투쟁의 전선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그는 오랜 감옥 생활 끝에 병든 몸이 되고,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한다. 그가 이토록 사회 운동에 정열을 바치는 이유는, 삶의 터전이 와해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주어져 있지 않는 민중들의 삶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사랑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식민지 수탈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예전에 중농(中農)이던 사람은 소농으로 떨어지고 소농이었던 사람은 소작농으로 떨어지고 예전에 소작농이던 사람은 거의 다 풍비박산하여 나가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정들던 동무들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가 감옥에 갔다가 돌아와서 본 고향의 모습이다. 식민지 수탈은 '동척'의 높다란 건물로 표상되는데, 그것에 의해 농촌은 황폐화되고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유민의 길로 나서게 된 참상을 그는 목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모순된 사회의 질서를 되돌려 놓기 위한 그의 투쟁은 시작된다. 그것은 야학 개설과 강론, 소작 조합의 결성과 같은 사회 운동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개인의 반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의한 조직적 사회 운동을 펼치는 것에서 조명희 소설의 프로 문학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근거하는 것으로, 피상적 사회 인식에 머물렀던 이전의 참여적 소설이 가졌던 결함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앞서의 소설들은 수탈과 억압에 대한 대항이 개인의 분노 차원에서 그려진 것이 많았다. 그러나 조명희는 비교적 조직적인 힘으로 사회 운동을 전개하는 인물을 설정하고 있어 사회의식의 높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식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낙동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그 점은 뚜렷이 부각되는데, 역사의 흐름과 같은 운명을 겪어 온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에서 질곡의 역사를 읽어 내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에서 계급 사회로, 또다시 그 모순을 제거하려는 움직이이었던 동학 혁명으로, 사회주의 운동으로, 또다시 전개되고 있는 불길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면서 오천 년을 이어온 역사적 흐름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의식의 진전은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를 형상화하는 수법에 있어서는 대단히 서툰 면모를 보여 준다. 플롯도 탄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가와 사전 상황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작가의 말이 작품 속에 노출되는 결함을 보인다. 이 작품의 구상은 박성운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시작해 박성운의 장례 행렬의 묘사, 혼자 남은 로사의 거취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에 박성운의 과거 행적이 그려진다. 이 소설의 핵심은 박성운의 과거 행적인데, 이 부분에서는 극적으로 형상화하지 않고 작가가 요약적으로 추려 전달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점은 커다란 결함임. 현재와 과거가 중첩되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소설에서 차용하고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가 단절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아야 플롯의 자연스로운 흐름을 보일 수 있고, 인과적 서술에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