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국에서 만난 루마니아 친구 올리비아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왔다고 했다. 처음엔 프랑스에서 일했는데, 드러나게 동유럽인을 차별하는 태도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파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파리지앵들이 살아가는 낭만적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내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심한 무례한 이들이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결국 올리비아는 영국으로 옮겨 왔는데 영국인들은 단지 교양 있게 차별하더라고 얘기해 주었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나라들의 고충을 감안하더라도, 두 나라의 성격적 특성을 일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혼마에와 다테마에, 즉 속마음과 드러나는 예의가 다른 일본인과, 솔직함을 장점으로 주장하는 한국인 사이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어떠한 태도가 더 좋은 것일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지나친 솔직함은 부작용이 따르기 쉽지만, 예의를 갖춘다고 해서 늘 더 신뢰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정도와 상황에 따라 다르고 성향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도 크다.
지성과 교양에 대한 추구가 강한 사회나 집단일수록 사람들은 금기되는 의식과 행동을 스스로 억압하고 숨기려 하지만, 안전한 장소에서는 본심을 드러낸다. 인터넷 공간이 현대의 고해소가 된 이유일 것이다.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은밀한 감정을 연구해 온 빅데이터 전문가 세스 다비도위츠는 사람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평생에 걸쳐 거짓말을 하며 산다고 증언한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 검색어에서는 가족에 대한 증오와 아이를 가진 것에 대한 후회도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도 대화 단절에 대한 고민보다 섹스리스에 대한 고민이 더 많고,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의 성적 상상과 취향도 다수라는 것이다. 교양사회일수록 페이스북처럼 대중에게 보여지는 SNS에서의 모습과 은밀하게 검색하는 구글에서의 모습이 겉마음과 속마음의 차이만큼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들을 그저 위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충동적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취약한 사회성의 증거이기도 하고 반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직함을 미덕이라고 말하면서도 대개는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숨기는 말과 태도를 보이는 것을 교양 있다고 평가하는 이중성을 나타낸다. 가장 좋은 것은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는 선한 모습이겠지만 인간은 늘 그리 단순하고 선하기만 한 존재는 못 된다. 겉과 속이 모두 악하지만 않아도 다행이고, 때로는 선악조차 혼란스럽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평소 모습과 다른 어둠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악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깊고 근원적인 욕망이 심연에 자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겉마음과 속마음의 차이가 큰 영국이나 일본의 추리소설이 전통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도 혹시 이러한 억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선거철 동안 드러난 후보자와 정치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우선시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갑론을박했다. 공직자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에는 행정능력과 흠 없는 도덕성에 대한 요구도 있었지만, 교양 있는 태도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부족함이나 실수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태도나 혹세무민하는 발언은 지성인이나 지도자가 할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어떤 이는 솔직하게 어떤 이는 무례하게 느끼며, 어떤 이는 가식적이라고 하고 다른 이는 교양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적당한 솔직함이라는 대단히 모호하고 주관적인 경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어떤 고등 수학능력보다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리더라 불릴 수 있는 위치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더를 뽑는 국민들의 자세 역시 돌아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불완전한 판단 속에서 늘 너무 선명하고 단순한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때로 판단을 유보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흑백논리보다는 사안에 따라 수용의 폭과 상·하한선을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동물성과 인간성의 사이 그 어디쯤에서 끝없이 흔들리며,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또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탁현민 사퇴? "맞지도 않은 옷 너무 오래 입었다"
탁현민(사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29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맞지도 않은 옷을 너무 오래 입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비서관 이하급 인사가 예정된 가운데 사의를 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고 제출 의사를 아직 누구에게도 밝힌 적 없다”고 말했다.
탁 행정관은 4·27 남북 정상회담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모든 행사를 기획해왔다. 그는 과거 자신의 책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언급을 해 야권으로부터 지속적인 사퇴 요구를 받아왔
[김진국이 만난 사람] 친박 없애는 것보다 보수의 가치부터 정립해야 한다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리면
나머지 한쪽도 혁신 안 하게 돼
한국당 문제
당신이 뭘 바꾸겠는가? 냉소 강해
아직 멀어, 더 고생하고 더 무너져야
외부서 수혈
버리기 힘들고 자르기 힘들 때는
새로운 깃발을 세워서 녹여내야
문재인 정부
말로는 자율·지방분권 얘기하며
실제론 권력으로 사회 바꾸려 해
보수가 죽어간다. 6·13 지방선거는 보수의 사망을 선고했다. 보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조언들이 넘친다. 보수를 조롱했던 진보 인사들까지 처방을 내놓는다. 보수가 사라지는 건 진보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으면 일탈하기 쉽다. 한국 정치의 건강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한국의 보수를 대표하느냐도 논란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바뀌어야 산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밖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아직 멀었다”는 냉소가 더 많다.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김병준(64) 전 교육부총리. 26일 본사에서 그를 만나 보수의 위기에 대해 들어봤다.
시장과 국가 조화 이루며 자율권 살려야
Q :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A : “홍준표 전 대표는 마지막 막말로 나쁜 사람을 발표하고, 지금도 친박(親朴·친 박근혜)·비박(非朴) 다투는 양상인데… 친박이 다 빠지면 답이 될까요. 문제의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역사를 놓쳐버린 겁니다. 민주당은 실현 가능성이 있든 없든 가치를 말하지 않습니까. 인권·환경·평화, 이런 가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소위 보수라고 하는 집단, 자유한국당은 무슨 가치를 내세우고 있습니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안보라는 가치도 놓아버렸습니다. 안보는 평화를 위한 것인데, 평화도 현 정부가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철저한 논쟁이 있어야 하는 데, 없습니다.”
Q : 보수의 가치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A : “보수·진보 모두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보수는 아직도 ‘박정희 성공신화’를 굉장히 중시합니다. 사회 모든 부분을 정부가 주도하고, 시장에 개입하고, 인권을 좀 억누르더라도 성장을 가져오는 국가주도주의 모델 아닙니까. 그런데 보수라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자유시장 경제를 보수라고 그러거든요. 도대체 국민 입장에서는 헷갈린단 말이에요. 진보는 대체로 국가계획주의 모델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시민사회를 중시하는 공동체 중심의 진보적 성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 둘이 부딪히는데….”
Q : ‘사람 정리’보다 ‘이념의 정리’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죠?
A : “사람 정리도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당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기치가 분명히 섰을 때 ‘나는 그 기치와 가치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당을 떠나야죠. ‘어느 것이 우선이냐?’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친박이니까 떠나라’고 말하는 게 맞는가? 아니면 새로운 깃발과 가치에 따라 ‘당신은 우리 당에 맞지 않으니 떠나라’고 하는 게 맞느냐 하는 겁니다.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Q : 지금 보수, 야당은 어떤 깃발을 들어야 합니까?
A : “보수와 진보를 떠나 시장과 국가의 조화로운 관계에서 자율권이 살아나면서도 상생의 문화나 구조를 놓치지 않는 그런 방향으로 정리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대의 흐름을 놓고 양당이 경쟁해서 국가가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서는 것이지, 지금처럼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리면 나머지 한쪽도 혁신을 안 하게 되거든요.”
한국당 내부 권한 내려놓을수록 신뢰 높아져
Q : 아직도 계파 갈등인데, 이걸 넘어설 방법이 있습니까?
A : “버릴 수 없고, 자를 수 없을 때는 세워야 합니다. 사람이 잘라서 쉽게 없어집니까. 사람의 생각이 잘 안 버려지거든요. 버리기 힘들고 자르기 힘들 때는 새로운 것을 세워서 덮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세우면 그 안에 모든 게 녹아듭니다.”
Q : 깃발을 새로 세우려면 외부에서 수혈해야 하지 않을까요?
A : “아마 그렇게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내부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상처를 입었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해도 나는 못 믿겠다. 당신이 뭘 바꾸겠는가?’ 냉소가 너무 강합니다. ‘저 사람 정도면 뭘 좀 바꿔놓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죠. 안에 있는 분들이 스스로 가진 권한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국민적 신뢰는 높아집니다.”
Q : 한국당 쪽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습니까?
A : “많은 사람이 이야기는 합니다. 전화도 하고, 만나자고도 하고…. 그런데 제가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공식적인 채널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저도 국가를 위해, 우리 사회의 균형을 위해 역할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만한 조건과 상황이 되느냐도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선거 직후 많은 사람이 ‘자유한국당이 비대위원장을 제안하면 무조건 당신이 맡아서 바꿔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최근 한 이틀 동안은 10명이 전화하면 9명은 ‘그 근처에도 가지 마라’고 해요. ‘아직도 더 고생하고, 더 무너져야 한다. 아직 멀었다’는 겁니다. 민심이 이래서 무섭다고 하는 걸 느낍니다.”
Q :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어서 잘 헤쳐 나갈 수 있겠습니까?
A : “여의도 정치에서 제가 피해자죠. 끝없이 공격을 당하면서 많은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원망해 본 적도 없고요. 저는 맞아야 할 위치에 있기에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큰 흐름은 결국 ‘국민의 마음’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데, 그 흐름을 만들면 의원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199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 때 소장을 맡은 지방분권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아 임기 내내 같이했다. 2006년 7월 교육부총리에 지명됐으나 당시 한나라당이 논문표절 의혹과 딸 편입을 문제 삼아 보름 만에 낙마했다. 그런데 2016년 11월 최순실 사태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를 ‘중립내각’ 총리 후보로 지명해 정치적 상처만 입었다.
Q : 본인의 정체성이 뭡니까?
A : “저는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을 중시합니다. 시장은 되도록 좀 자유로워야 하고, 또 고치는 것도 자율적으로 고칠 수 있는 그런 메커니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거기서 못하는 것들, 시장의 자율이 커지면 그만큼 불평등도 심화할 것 아닙니까? 이것은 국가가 보충적으로 바로 잡아 줘야 한다. 사회정책을 통해서 상생의 구조를 만들고, 복지를 통해 균형을 맞추고,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이것이 국가의 역할인 것이죠.”
Q : 한국당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제의했을 때, 처음에는 검토하다가 “너무 늦었다”면서 거절했는데.
A : “저한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권력’도 아니고 ‘자리’도 아닙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마이크’입니다. 그런데 임박해서야 저보고 나가라고 하니까, 마이크를 들 시간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건 아니라고 본 겁니다.”
Q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대중영합주의’를 경고했죠?
A : “제 생각이 거의 맞았다고 봅니다. 말로는 자율,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을 쥐고, 감독기구나 검찰 기구를 강화해서 우리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국가주의적 경향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 에너지를 대중의 지지에서 가져오려 하죠. 그 과정에서 대중영합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손을 안 댑니다. 산업구조 개혁 같은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은 안 나오잖아요? 노조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구조 개혁, 노조가 걸려 있어 손 안 대
Q : 실업률, 최저임금도 포퓰리즘과 관계있다고 보는 건가요?
A : “연관이 된다고 봅니다. ‘소득주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걸 ‘모른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당연히 알죠. 그것을 왜 모릅니까? 고용이 줄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내수경기 살리면 경제가 산다’는 발상이 수출 주도형 경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알면서도 손을 못 대는 것은 이해관계가 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적 지지를 이 정도 확보한 정부라면 건드려야죠. 지금처럼 좋은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점을 걱정합니다.”
Q : 노무현 정부하고는 차이가 있는 겁니까?
A : “노무현 정부가 시장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크다고 봐야죠. 종합부동산세도 언론에서는 ‘참여정부 때 하던 것’이라고 하는데 참여정부는 돈의 흐름을 더 걱정했습니다.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가지 못하게 종부세라는 막을 치면서 산업 쪽으로 돈이 흐르게 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썼단 말이에요. 같은 것 같지만 속은 굉장히 다릅니다.”
[출처] [김진국이 만난 사람] 친박 없애는 것보다 보수의 가치부터 정립해야 한다|작성자 솔로
이념보다 현실의 힘 믿는 트럼프, 김정은 손 기꺼이 잡다
남·북, 북·미 회담 스펙터클한 사건
과장된 면 있지만 불가피한 소명
오랫동안 기업가로 지낸 트럼프
냉전주의 이념의 틀 깨는 행보
남·북 체제 서로 다르면서도 협력
통일로 나아가는 길 열릴 수도
스펙터클도 나름대로의 진실 가져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짓은 의도하는 것이기도 하고 체제에서 저절로 생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름의 진실을 내포할 수 있다. 위에 말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일종의, 스펙터클에 속하는 정치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전적으로 진정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인간 현실 자체가 많은 점에서 스펙터클로 구성되어 있고, 또 허상처럼 보이는 스펙터클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그 나름대로의 진실을 갖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청각 매체의 시대에 있어서, 정치 연출은 현실적 공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남북 그리고 북·미의 정치 지도자들의 회동은 화해와 평화의 가능성을 여러 지역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인데, 그것은, 위에 말한 바, 여러 차원의 의의를 갖는다.
연출은 공연자 자신의 마음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사적인 또는 공적인 협약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는 것은 왜 중요한가? 대면은 불가피하게 인간성의 개입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에 수반하여, 회동은 상대와 관계하여 호의나 악의 또는 선과 악 어느 쪽의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다음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략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략은 회동 이전부터 준비된 것일 수밖에 없다. 만남이 있기 전에 상대방이 소통 가능한 인간이라는 예비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인격적 판단을 허용할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북과 남의 지도자의 경우, 여러 사정으로 보아 오늘의 시점에서 민족적 화해라는 지상 목표는, 쉽게 논의되지는 아니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소명(召命)의 정치 과제이다.
그러나 남북, 북·미를 포함하여 평화의 움직임에 기초가 되는 판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도 평화를 향한 의지가 작용하겠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보다 현실적인 고려이다. 우선하는 것은 힘의 관계에 대한 고려이다. 그러하여 무력 대결의 가능성과 평화 협약은 전략의 양면을 이룬다. 북의 핵무기 완성과 더불어 협상이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도 이것을 나타낸다.
정치 지도자는 권력 조직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권력은 스스로 자기 팽창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오늘의 시대에 있어서 그 권력은 무한한 팽창을 지향하는 정복자의 권력일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것은 다른 권력과 타협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국가 관계의 균형을 나타내는 말로 잘 알려진 것이 ‘힘의 균형’이다. 이것은 국가 간의 현실을 말하기도 하고, 군사력으로 대결하는 국가가 이룰 수 있는 평화의 현실 조건을 말하기도 한다. 평화와 관계하여 이것은 서구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이념이지만, 그것이 참으로 평화의 기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회의와 비판도 없지 않다. 정치 이념으로서의 ‘힘의 균형’을 트럼프 대통령이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 또는 개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것이 힘이라는 것은 그의 정치 신조의 중심을 이룬다는 인상을 준다.
무력대결 가능성과 평화협약은 전략의 양면
여기에서 힘은 물론 이해관계의 대결과 교환을 포함한다. 많은 인간관계는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지만, 이것은 상업의 거래에서 특히 기본적인 인간관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힘의 협상을 중요시한다면, 그것은 기업가로서의 그의 오랜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내세운 정치 구호 ‘미국 제일주의’는 국제 관계에서 원만한 관계보다는 국가적 이익을 앞세우겠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의 정책들의 호소력은 계층이나 인종의 차이에 기초한 원한을 북돋는 데서 왔다고 이야기된다. 분노는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중요한 사회적인 힘이다. 그는 사회를 나누고 있는 분열의 요소가 되는 분노를 강조하고 다시 그것을 경쟁적 국제 대결을 통하여 하나로 묶어 낸다.
‘힘의 균형’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사상의 흐름은 대체로 인간 가치를 높이 내세우는 보편주의이다. 그것은 국가 질서 안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보편적 인간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그것을 위한 계획은 여러 나라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국제 질서에서, 적어도 아메리카와 서구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일 수도 있는- 이념이다. 자유, 인권, 행복의 추구, 사회 복지 그리고 경제발전 등을 사회적 이상으로 하는 나라들이 밀접한 연계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다른 이념으로 연결된 세력에 대항하는 방편이기도 하였다.
6월 초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분명하게 이들 서방 국가와의 연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그것은 이들 국가와의 상호 무역 관계에서 관세 폭탄을 던지겠다는 결정으로 나타났다. 또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를 제거한 것에 대하여 그는 불만을 표현하였다. (러시아가 제거된 것은 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점한 일로 인한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한 터키 대통령 등 독재적이거나 반(半)독재에 연결시켜서 보고자하는 견해도 있다.
다시 말하여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군사적, 경제적 힘이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많은 요소를 하나가 되게 하고 다르게 하는 이념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의 정치관이 반드시 사실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G7회담이 끝나면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 무장해제, 인권, 양성평등 등을 언급하면서, ‘열린 경제, 열린 정부’를 지지한다. (공동성명에는 위에 언급한 것 외에 여러 조목의 입장 천명이 있지만, 북한의 제재강화와 비핵화에도 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상회의 주최국가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발표가 있기 전에 싱가포르로 떠났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겠다고 하고, 트위터에서 트뤼도 총리를 “부정직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캐나다가 미국의 농민과 노동자와 기업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에 이것은 공동성명에 언급된 ‘열린 경제, 열린 국가’의 이념에 맞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성명서 자체가 현실을 떠나 있는 허위라고 본 것일 것이다.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한 대산문화재단의 국제문학포럼(2005년)에서, ‘평화선언’을 공동으로 내기로 한 일이 있는데 독일의 가인(歌人) 볼프 비어만은 서명을 거부하였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경험이 있는 그는 모든 거창한 구호는 허위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휴머니즘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군사력 이외 이념은 거짓으로 보일 것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경제와 군사력에 관계되지 않은 이념은 거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가 다른 서방지도자와는 다르게 러시아, 헝가리, 터키의 지배자에 대한 우호적인 관계도 그의 이러한 현실주의롤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기꺼이 김정은 위원장과 회동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같은 현실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현실주의적 사고가 오늘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의 틀-한편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와 독재정치라는 냉전시대의 이념적 그분의 틀을 넘어 서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현실주의적 거래가 정치 행위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치하에서 소수자들은 근래에 드물게 차별을 감수하여야 한다. 필자는 한국 교민들로부터도 그전과는 다른 차별과 혐오의 표현에 맞부딪치게 된다는 사정을 들은 바 있다. 어찌 되었든 한편으로 인간은 정치를 힘의 현실로 파악한다. 그러면서 보다 인간적인 이상의 실현은 정치를 추진하는 동력이 되어 마땅하다. 이 현실 인식과 이상의 확인은 쉼 없는 변증법 속에 움직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주의는 우리의 남북관계에서도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미 시사한 바와 같이, 그의 현실주의를 배경으로 하여, 한반도의 남과 북의 관계는 냉전시대의 극단적 대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선택의 가능성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서로 다르면서도 협의하고 협동할 수 있는 정치 단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없을 수는 없지만,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로 나아가는 일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과 이념 또는 이상의 새로운 변증법의 시작에 정상회동의 스펙터클이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