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17)
악양루(岳陽樓)에 올라
악양루 올라보니 吳와 楚는 간 곳 없고
물안개 저 넘어 엔 희미한 역사의 그림자
내 여기 그 때 그 님을 눈을 감고 그려볼 뿐...
동정호 바라보며 시를 읊던 시성(詩聖)이어
동정호, 악양루 여전히 예 있으니
오늘도 술잔 기울여 시 한 수 내려주소서
*악양루: 동정호 앞에 서 있는 누각. 삼국시대에 해군 훈련을
참관하던 망루인 데 후에 登岳陽樓라는 두보의 시로 유명함.
(홍오선의 제5시조집 『내 손안 푸른 지환』 중에서)
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17)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나서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이 해외여행이었다. 나보다도 아내가 좋아해서다. 첫 행선지로 중국을 택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서 가까워 여행비용이 싸고 명·청 등 이씨조선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대국이라는 점에서 대중화(大中華)를 더듬어 보는 역사적 고적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6.25전쟁시 통일을 방해한 적대국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처음 관광하는 지역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이다. 우리도 중국을 제일 많이 다녀왔다. 중국은 실크로드를 제일 먼저 다녀왔고 두 번째는 북경과 만리장성, 세 번째가 악양루와 동정호, 네 번째가 황산, 마지막으로 대만을 다녀왔다.
<사진 상:중국 후난성에 있는 동정호와 악양루. 사진 하:모택동주석이 쓴 등악양루를 1983년에 상감한 글씨>
둥팅호(洞庭湖·동정호)는 후난성에 있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면적:여름 홍수시 최대 40,000㎢)로 서울면적의 6배에 달한다. 단오절이 시작된 곳이며 위.촉.오가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에 동오(東吳) 손권 휘하의 명장 노숙이 수군의 훈련을 위해 3층으로 지은 누각이 악양루다. 악양루는 중국 3대 명루(호북무한의 황학루, 강서의 등왕각, 호남악양의 악양루) 중의 한 곳으로,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이 일어난 전장이 멀지 않고 관운장이 지키던 형주 땅이 바로 여기다. 중국의 시인묵객치고 동정호와 악양루에 와서 시 한 수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시심이 떠오르는 유명한 곳으로 특히 중국의 2대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이태백(701~762)과 두보(712~770)의 시, 그리고 백거이(772~846)가 쓴 악양루 등이 남아있다. 오언율시 등악양루(登岳陽樓)는 당나라의 두보가 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유배 중이던 57세 때 지은 시로 동정호를 불후의 명승지로 만들었다. 2층에는 범중엄(范仲淹)이 쓴 천하명문, 악양루기(岳陽樓記)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라는 마지막 구절이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해석하면 반드시 온 백성들이 근심하기 전에 먼저 근심하며, 온 백성들이 즐긴 후에야 즐거움을 누려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그 옛날 지도층인 사대부에게 나라와 백성의 안녕에 대한 통치철학을 써 논 것이다. 3층엔 두보의 ‘등악양루’를 그의 열혈 팬이었던 모택동이 친필로 새겨놓은 현판도 있다. 명필이다. 두보보다 11살 선배인 이백의 등악양루도 보인다. 글을 쓰거나 경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한 번은 가 봐야할 명승지다. 동정호 가운데에 있는 군산(君山) 섬은 중국의 명차로 알려진 은침차(銀針茶)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화자는 고등학생 때 읽었다는 삼국지를 생각하며 위의 시상을 가다듬은 듯싶다. ‘악양루 올라보니/오와 초는 간 곳 없고’... 악양루에서 바라보면 그 옛날 동쪽과 남쪽에 오나라와 초나라가 한 눈에 보였나 보다. ‘동정호 바라보며/시를 읊던 시성이어’...는 이 악양루에 올라 시를 짓던 두보와 이태백이 눈에 선했던 듯싶다. 누각에는 두보와 이태백이 쓴 시가 보인다. ‘오늘도 술잔 기울여/시 한 수 내려주소서’.... 시조를 쓰는 아내로서는 중국의 시성으로 존경받는 이태백의 시와 두보의 시를 보며 시조 한 수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두보가 쓴 등악양루 전문
昔聞洞庭水 (예부터 동정호를 들어왔건만) / 今上岳陽樓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네). / 吳楚東南坼 (오와 초는 동남으로 갈라져 있고) / 乾坤日夜浮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동정호에) 떠 있네). / 親朋無一字 (친척과 벗은 한 글자(편지 한 장) 없고) / 老病有孤舟 (늙어 병든(몸) 외로운 배만 있네). / 戎馬關山北 (고향 산 북녘은 난리 중이라) /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