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의 탄생
윤희의 도시에서 네 탄생 소식을 듣는다
드넓은 인도의 아침 태양빛도 새롭고
때마침 유채꽃 평원 활짝 웃어 축복한다.
전생에 어디쯤선가 깊은 인연 있었기에
내 핏줄 이어받아 다시 혈연 맺는구나
소중한 만남의 순간을 보리수도 지켜본다.
두 개의 盞을 띄우며
갠지스 강가-8-
인연이 요것뿐이었나 정녕 우리 그러한가
타는 억장 가늠하여 왕생극락 발원하는 盞
命 타듯 심지가 타네 곧 스러질 내 가슴에
가는 인연 오는 인연 물결 따라 출렁이며
피붙인 줄 알아봤나 촛불 잠시 깜박이고
보내고 맞는 교차점에서 잔과 잔이 부딪친다.
-홍오선의 제3시집 ‘행복찾기’(2001) 중에서-
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
<사진> : 간지스강에서는 한편에서는 빨래를 하고 한 편에서는 시체를 화장한다
사람에게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새로운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는 ‘탄생의 기쁨’이요, 또 하나는 ‘죽음이라는 슬픔’입니다.
큰 아들이 결혼을 해서 부모에게 보낸 준 가장 큰 기쁨은 손주, 그것도 대를 이어갈 손자를 품에 안겨준 한 생명의 탄생입니다. 태명(胎名)을 ‘뽀’라고 불렀는데 며늘애의 산월이 가까울 때 아내는 친구와 함께 인도를 여행 중이었습니다. ‘뽀’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여행 중에 들은 아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에 “윤회의 도시에서/네 탄생의 소식을 듣는다”며 할머니가 된다는 늙음에 대한 원망보다도 대를 이어갈 핏줄의 탄생에 환호했습니다. 불교의 모국인 인도에서 한 생명의 탄생은 “전생에 어디쯤선가 깊은 인연 있었기에/내 핏줄 이어받아 다시 혈연 맺는구나”라는 필연적 인연을 강조합니다. 범망경에서 숫자로 본 인연의 겁(劫)은 부모와 자식이 될 확률을 8천겁이라 했습니다. 1겁의 시간이 4억3200만년이라고 했으니 8천겁이란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우주적 개념입니다. 부모자식 간으로 만날 확률이 8천겁이라고 하니 할머니와 손주로 만날 확률은 그 얼마이겠습니까? 그런 인연 속에 ‘뽀‘는 2000년 1월 25일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했나요? ‘뽀“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98년 2월 23일에 Y대상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막내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꽃 같은 28살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는 손자의 탄생과 막내의 죽음을 떠올리며 간지스강에 두 개의 잔을 띄웁니다. ”타는 억장 가늠하며/왕생극락 발원하는 盞“을 띄워놓고 ”보내고 또 맞는 엇갈림/축원하는 두 개의 잔“에 오는 기쁨의 희(喜)와 보내는 슬픔인 애(哀)의 전혀 다른 두가지 개념의 촛불을 밝혀 듭니다. 두 개의 잔은 기쁨과 슬픔의 촛불을 각각 밝혀들고 삼촌과 조카의 인연으로 기약없이 흘러갑니다. "피붙인 줄 알아봤나 촛불 잠시 깜박이고/보내고 맞는 교차점에서 잔과 잔이 부딪쳤다". 같은 피를 물려받은 두 인연이 생과 사를 가르는 교차점에서 지상과 극락으로 제 길을 찾아 헤어지겠지! 나는 아내가 간지스강에 다달을 즈음 며늘애가 산후조리하는 친정집으로 가 첫 손자를 만나보았습니다. 핼쓱해진 며늘애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자마자 어색한 두 팔로 손자를 조심스레 감싸 안고 첫 눈맞춤으로 혈육의 정을 나눴습니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나봅니다. (2021년 1월 14일) 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