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 목련
눈물 젖은 베옷 입혀
졸지에 널 보냈더니
아무도 없는 적막강산에
문득 다시 왔구나
눈 닿는
산지사방에
아득해라, 내 사랑.
14. 하늘 바라 서리라
눈 흘기고 돌아누워 수천 밤을 뒤척여도
絶命처럼 몸에 감긴 내 노래 떨칠 수 없네
三世에 아득한 인연 또 하나의 나의 분신
가진 것 대 내주고도 버릴 수 없는 이 고통은
비늘처럼 다시 살아 꿈틀대는 몸짓의 언어
아! 나는 파도를 안고 몸부림치는 절규의 시
글썽여 맞는 아침 마침내 날이 선다
水深마저 더해 가는 팽팽한 그리움에
내 홀로 천년 또 천년 하늘 바라 서리라.
-홍오선시인의 제3시조집 ‘하늘 바라 서리라’(2001.동방기획) 중에서-
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
* 특히 하느님께서는 의인을 먼저 데려가신다는, 예수쟁이들의 상투적인 위로는 딱 질색이었다. 내 아들은 물론 의인도 아니었지만, 만약 그런 소리를 조금이라도 믿어야 한다면 세상의 어느 에미가 자식에게 정의나 도덕을 가르칠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기야 그런 말 잘하는 사람일수록 돌아서선 저 여편네는 무슨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길래 외아들을 앞세웠을까 하고 에미의 죄를 묻기에 급급하리라.-박완서 저 『한 말씀만 하소서』 -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일기 중에서
*남궁훈, 아타시오, 우리 한 수만 물을 수 없을까? 8월21일에서 8월 22일 사이에 일어났던 그대와 나 사이의 이 한수를 물으고 우리 한번 다시 시작해 볼 수 없을까? 뭐 그리 야박한가? 한수만 물으세, 응? 아니면 환생을 해서 돌아오게. -남궁석 전장관이 하늘나라에 먼저간 아들에게 쓴 편지 중에서
*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 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 가."-세월호 분향소에 딸을 잃은 어는 어머니가 남긴 글 중에서-
(좌)죽은 병사아이를 안고 있는 콜비츠의 '피에타' (우)미켈란젤로가 20대에 만든 바티칸의 '피에타'
* 1914년 10월 25일 독일 여성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는 전보 하나를 받았다. "당신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닷새 뒤인 30일 그녀의 일기에는 그녀를 경악케한 이 문장 하나가 그대로 씌어져 있었다. 죽은 아들의 얼굴을 조각하고, 자식과 남편을 잃은 전쟁 희생자들의 모습들을 판화로 제작한다. 극한의 고통은 불멸의 피에타(이탈리어로 비탄을 뜻함). 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소리를 꾹꾹 누른 듯한, 몸짓 속의 깊고 아픈 침묵이 느껴지는 그녀의 작품들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심경 속으로 보는 이를 그대로 끌어들이는 듯하다. 죽은 아들을 품고 웅크린 채, 깊은 비탄에 빠진 어머니의 모습은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콜비츠 자신이기도 하고, 또한 불의와 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를 표현하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에 가득 꽃송이가 피어난 모습이 옥돌로 된 산을 바라보는 듯 하여 망여옥산(望如玉山)이라 할만큼 자태가 아름다운 꽃, 목련.>
*참척(慘慽)은 자식을 앞세운 슬픔을 말한다. 슬픔 중에서 자식을 먼저 앞세운 슬픔만큼 더 큰 슬픔은 이 세상에 없다. 1998년 2월 23일 출근 준비를 하던 나에게 “저 00학생댁 맞지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네, 연대 통계학과장입니다. 저~” “왜요, 설마 우리 애가 죽었다는 소식인가요?” “.....(침묵)” 그러잖아도 전날 막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혹 도서관에서 잠들은 게 아닐까 하고 궁금하던 차에 전화벨이 울릴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으로 손이,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택시로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제발 다쳐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다오”하고 나도 모르게 하느님을 찾았다. 영안실에 들린 나는 아들의 시신을 덮은 홋이불을 무서워서 걷어 올릴 수가 없었다. 만약에 정말 내 막내면 어쩌나 해서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홋이불을 들쳐 올리니 거기 아들이 잠자 듯 누어있었다. 나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장 친한 아들의 친구 부축을 받으며 그 자리에 소처럼 무너졌다.
연대 상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아들이 28살의 아까운 나이로 1998년 2월 23일 새벽 불의의 사고로 애비 에미 보고 작별의 인사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졸지에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눈물 젖은 베옷 입혀/졸지에 널 보냈더니.....눈 닿는/산지사방에/아득해라, 내 사랑. 아내는 발인 날 마지막 관 뚜껑을 덮기 전 막내의 얼굴을 만지며 자지러지듯 말했다. “아빠, 00가 왜 여기 누어있어?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 아내도 막내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나 보다. 베옷을 입은 아들을 보는 아내의 눈은 슬픔을 넘은 절망 그 자체였다. 나는 벽제 화장장에 차마 아내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딸보고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그냥 가라고 했다. 화장된 유분은 선산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들고 계신 예산 신례원의산소 주변에 친구들에 의하여 뿌려졌다. 헌데 목련처럼 화사하고 탈렌트처럼 잘 생긴 그 얼굴을 보고 싶어도 꿈에라도 한 번 보았으면 했지만 꿈속에 마저 나타나지 않는다. 덜 슬퍼해서 아들이 안 오는건가? 고작 28년(만 27년)의 짧은 시간을 내 핏줄로 머물다가 영겁의 세계로 홀로 먼저 떠나 갔다. 부모 보다 먼저 떠난 사랑하는 막내를 누가 저 세상으로 인도하나? 맞아 줄 부모형제도 없는 그 머나 먼 길을 혼자 외로워서 어떻게 찾아갔나?
부모 보다 먼저 떠난 사랑하는 막내를 누가 저 세상으로 인도하나? 맞아 줄 부모형제도 없는 그 머나 먼 길을 혼자 외로워서 어떻게 찾아갔나? 이렇게 아들을 앞세우고도 미치지 않고 사는 아내가 대견하기보다 그래서 더 불쌍하다. 안으로 눈물을 삼키는 아내가 그래서 더 가엾다. 그래도 식탁에 쭈구리고 앉아 꾸역꾸역 밥숟갈을 입에 퍼 넣는 나는 아버지도 아닌 모양이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웃음 안에 울음을 안고 사는 웃픈(?) 허례허식도, 이중인격도 용서한다. 그렇지 않고 365일 슬픔을 안고 산다면 사람이 미치지 않고 어떻게 생명을 부지할 수 있겠는가? 신이 그나마 기억이라는 하드웨어에 망각이라는 휴식처를 주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가진 것 대 내주고도/버릴 수 없는 이 고통은, 水深마저 더해 가는/팽팽한 그리움에, 내 홀로 천년 또 천년/하늘 바라 서리라. 차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자식 잃은 에미의 애끊는 절규다. 사람은 전생-현세-내세로 가는 三世의 길을 피할 수 없다. 그날 막내는 한 줌 재로 변하는 연옥을 거쳐 천당으로 갔다. 살았으면 쉰 한(51)살이다. 결혼 했으면 며느리와 자식 둘을 합하면 네(4)식구가 됐을 것이다. 그러면 열네(14)식구가 내 가족이 됐을 텐 데.... 지금도 가끔 막내가 미국 연수중에 피아노로 즐겨 쳤다던 ‘에리자를 위하여’라는 베토벤의 소품곡이 환청으로 들린다. 아들의 23주년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내일 12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 구정이다. 하늘나라에서 떡국 한 그릇이라도 주려나? 코로나가 추운 겨울울 더 추운 혹한으로 괴롭히지만 화사한 목련도 곧 필 것이다. 막내가 오늘따라 미치도록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프다. 그냥 눈물이 난다. (2021.2.11.)시조시인 지산
☂ 지치고 힘들 때 들으세요.3 / 진정한 위로를 주는 / 클래식 명곡 11/ When you are tired/Classical music that give consolation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무겁고 아픈 마음이 있다면 모두 이곳에 내려 놓으세요. 숲에는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란 진지하고 엄숙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소중하며, 그들의 삶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존중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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