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20)
사랑니, 뽑다
사랑은 아픈 거라며
아름아름 앓는 거라며
감싸고 다독여 온
마흔 해, 사랑니 뽑다
아득한
삶의 분화구
길이 하나 놓인다.
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20)
'사랑니 뽑다'는 시조시단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단시조다. 나 역시 이 시조를 좋아한다. 나는 아내가 사랑니를 뽑은 이유를 이 시를 보며 생각을 해 본다. 아내가 사랑니를 뽑은 게 65살 때쯤으로 기억한다. 사랑니는 뽑아도 되고 뽑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친구한테 들은 바 있다. 어느 날 사랑니가 아프다고 하기에 이화여대 목동병원 치과를 가 보았다. 의사가 사랑니를 잘 못 뽑으면 큰일 난다며 자칫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겁을 준다. 사랑니는 이빨 양편에 두 개가 있다. 정상적인 사랑니는 뽑지 않고 놔두다가 어금니가 속 썩일 때 어금니를 뽑고 대신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를 친구한테 들은 바 있다. 그래도 치통이 심하니 뽑기로 결정을 했지만 위험성이 많다고 해서 동네 치과를 찾지 않고 대학병원을 찾은 것이다. 이틀 동안을 다니며 무사히 사랑니를 뽑았다. 대학병원이라 병원비를 꽤 많이 지불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사랑니를 뽑은 게 나이 65세였으니 나와 결혼 한지 40년이 되던 해다. 그리고 고등학생부터 키워 온 꿈을 이룩하기 위하여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게 1985년이다. 결혼 생활 40년을 지내다 보면 아무리 사랑하고 사이좋은 생활을 보내도 가슴 한 구석으로부터 밀려나오는 인생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 없다. 결혼 후 삼남매를 키우고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뮌가 변화와 충격을 주지 않으면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인 "우물쭈물 하다 내 일럴 줄 알았다"는 말처럼 후회와 회한이 몰려올 것이다. 40년간 다독여온 사랑이라는 걸림돌을 뽑아냈으니 그 자리에 새롭게 걸어갈 길 하나를 내자. 내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쓰자. '사랑'이라는 걸림돌을 뽑은 결과일까, 사랑니를 뽑은 지 2년 후 2007년에 시조시인들이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이영도 문학상'을 탔다. "아득한 삶의 분화구 길이 하나 놓인다."라는 종장을 쓰기 까지 등단 후 22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2021.6.10.)시조시인 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