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괴롭히지 마라. 하나님은 아내의 눈물방울을 세고 계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는 ‘결혼이란 권리를 반으로 나누고 의무를 두 배로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먼저 의무는 반으로 하고 권리를 두 배로 주장한다면 그 결혼생활이 행복할까? 반대로 권리를 반으로 하고 의무를 두 배로 한다면 어찌될까? 답은 분명하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권리는 반으로 줄이고 의무는 두 배로 확대한다면 그 결혼생활은 반드시 행복할 것이다.
부부란 무엇인가? 성년이 된 남녀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 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부부가 하나 됨을 설명할 적에 연리지와 비익조라는 비유를 자주 인용한다. 연리지는 가까이 서 있는 두 나무의 가지나 줄기가 연결되어 하나처럼 보이는 나무를 말하며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를 말한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박종화의 『다정불심』에 "하늘에 올라가서 비익조가 되고 떨어져선 연리지가 되어 세세생생에 부부가 되어지라고…."라는 구절이 있다. ‘연리지'와 ’비익조‘는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군에서 막 제대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8살, 아내는 대학 졸업반인 23살이었다. 그리고 2년여의 열애를 거쳐 내가 30살, 아내가 25살이 되던 가을에 결혼하였다. 금년이 결혼 55주년이다. 그동안 둘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말싸움은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념 같은 것이다. 배가 바다를 항해할 때 약간의 흔들림은 승객들에게 주의하라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꼭 잡으라는 사전 훈련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신혼 초 약간의 오해받을 약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자에게는 한 치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일탈(?)을 아내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보듬어 주었기에 위기극복이 가능했다. 물론 나도 아내를 머리에서 통째로 잊은 채 정신 줄을 놓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양보와 이해,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보내준 아내의 사랑이 변명과 방어로 일관해 온 나보다는 적어도 「사랑 놀음」에는 한수 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는 어느 시조에서 ‘안타깝던 우리 사랑/ 오늘에야 꽃 피우니/ 비익조(比翼鳥) 이승을 날아와/내 품에 깃들거라.’ 라고 썼다. 아내와 나는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지, 비익조가 되어 55년, 20000일(日) 이상을 함께 지내왔다. 부부란 부족한 공간을 둘이서 채우며 2인 삼각의 하모니를 이룩하는 성인 남녀 한 가족을 말한다. 둘이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속도를 낼 수 없음은 물론 자칫하면 넘어지는 위험도 초래한다. 따라서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같은 목표를 위해 합심해야 그 가정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특히 태생이 예민하고 쉽게 변하는 여자의 본성을 고려하여 남편이 지는 편이 가정을 화목으로 이끄는 첫 번째 관문이다.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말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내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대들 때 ‘버럭버럭’ 소리 지르지 말고 따끈한 커피 두 잔을 끓여가지고 와서 “우리 커피 마시며 싸우자”며 커피 잔 하나를 아내에게 내밀면 대부분 아내는 못이기는 체 하고 잔을 받아든다. 그러다가 “화났어? 미안 해”하고 사과의 말 한마디를 건네면 “웃기고 앉았네!” 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 싸움은 싱겁게 끝난다. 아내와 싸워서 이긴다고 누가 알아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탈무드에도 “아내를 괴롭히지 마라. 하나님은 아내의 눈물방울을 세고 계시다”고 하였다. 아내에게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남편 하나만을 믿고 인생 전부를 맡긴 아내의 믿음에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
헌데 최근 통계를 보면 17.6%가 황혼이혼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참고 살아오던 부부들이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지면서 대거 이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혼은 개인이 겪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크고 아픈 고통이다. 황혼이혼이란 결혼생활을 15년 이상 이어오다가 중년 이후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결혼 15년차는 아이들이 사춘기에 도달하고 부부가 공동으로 막 기틀을 잡아가는 시기이다. 이 중차대한 인생의 도정에서 부부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가겠는가? 부부는 경제공동체이고, 문화공동체이며 생명공동체이다. 부부가 해로하면 3~5년 더 생존한다는 통계도 있다. 하늘이 내린 부부의 연을 거역하고 부부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 부부는 행복해질 수 없다. 결혼은 사랑의 만남이고, 자녀는 사랑의 열매이며, 가정은 사랑의 온상이고, 부부 싸움은 사랑의 훈련이다. 베이컨도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 남자에게는 반려자이고,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라고 설파하지 않았는가. 참고 또 참아보라! 세 번을 참아도 부부가 화목한 가정을 이룩할 수 없다면 그 때는 둘이서 한 몸이 되는 연리지와 비익조가 될 운명이 아님을 깨닫고 부득이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서울자치신문 2022.8.3.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