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18)
그대 앞의 청맹과니
-안개 낀 카프리 섬 1
1.
속내 감춘 그대 앞엔 하릴없는 청맹과니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자는데
그대의 깊은 속뜻을 끝내 읽지 못했네
2.
무명의 길을 따라 승천하는 우리 틈에
아무리 찾아봐도 불 꺼진 燈 하나뿐
결국은 낡은 인연을 못 버리고 그냥 왔네.
이내에 빠진 나는
-안개 낀 카프리섬 2
내 속살 탐하려고 달려온 시린 가슴
나락인가 천상인가 굽이도는 안개 바다
지척에 너를 두고도 헤매 도는 무명 세계
언제나 그 자리에 너 항상 여전하련만
오욕에 눈먼 나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어
맥없이 미련 한 자락 펼쳐두고 돌아서네.
(홍오선의 제5시조집 『내 손안 푸른 지환』 중에서)
아내가 묻고 남편이 답하다(18)
2002년 4월, 런던에서 파리를 거쳐 로마관광을 마치고 나포리로 향했다. 이태리를 관광하면서 카프리섬을 관광하지 않았으면 이태리를 여행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로마에서 기차로 약 두 시간을 달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히며 지중해의 보석으로 전세계 셀럽들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나포리의 쏘렌토항구에 도착했다. 이날따라 부슬비가 내렸다. 20명의 일행 중 일부는 나폴리 시내를 관광하고 일부는 그 유명한 카프리섬을 관광했다. 페리호에서 내려다 본 바닷물은 로 꼭 카나다 록키의 호수에서 본 에메랄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쪽빛 바닷물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다. 절벽에는 세계의 부호들이 휴양지로 사용하는 별장이 게딱지처럼 붙어 있었고 가이드는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세계적인 테너 파바로티의 별장이라고 한다.
<사진 쏘렌토 항구에서 바라본 화려한 별장들>
<로마에 있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있는 필자와 아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팩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아픈 시늉을 하자 오드리헵번이 울상을 지으며 빼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쏘렌토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카프리섬에 도착했다. 아주 좁은 절벽길을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올라가서 해발 299m로 가파른 언덕인 아나카프리(Anacapri)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리프트를 탔다. 헌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산 정상에 내리니 비가 내렸고 안개가 너무 자욱하여 아름다운 절벽과 푸른 바다를 볼 수 없었다. 산 정상에서 안개만 보고 내려왔다. 아내가 그래서 ‘속내 감춘 그대 앞엔/ 하릴없는 청맹과니/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자는데’...라며 그 아름다운 절벽과 드넓은 지중해를 바라보지 못한 아쉬움에 스스로를 청맹과니라고 탄식한다. 그리고 ‘지척에 너를 두고도/ 헤매 도는 무명 세계’...라는 가느다란 비명만 내 쏟아냈다. 인간이 하고자하는 앞길에 늘 희노애락이 무쌍하게 펼쳐지어 자연 앞에서 경건해지지 않으면 속살은 그만두고 겉도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신의 섭리에 인간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음을 실감했다.(2021. 5. 15)시조시인 지산
첫댓글 작가님 잘 지내시죠?
사진이 너무 멋지고 행복해보여요~~
항상 건필하세여~
안녕하세요 도우미님?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그게 19년전 사진입니다.
지금은 어지럼증으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늙은이가 됐답니다.
세월 금방이군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