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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원정] 히말라야 청소등반
월간산
2007.12.31
환경운동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클린마운틴원정대, 캉첸중가 북면 베이스캠프 청소 트레킹
“히말라야 청소하러 안 갈래요?” 우연한 기회에 내게 던진 산악인 한왕용씨의 이 한 마디에 나는 이미 히말라야 산속 깊숙히 들어가 있었다. 산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많이 다녀보지 않은 나로선 조금은 걱정이 됐다. 그로부터 출발을 기다리는 한 달, 그리고 다시 출발이 늦어지며 보낸 긴긴 시간을 캉첸중가(8,586m) 베이스캠프에 있는 내 모습을 그리며 보냈다.
드디어 출발. 9월28일 인천공항. 클린마운틴 대원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반갑게 만나 가슴 벅찬 경험을 하러 카트만두로 향했다. 도착 즉시 부산히 움직이며 준비에 여념 없는 한 대장을 보며 어떻게 산에 대한 열정이 저렇게 끝없이 나올까 하고 그 열정에 부러움 반, 걱정 반 하며 앞으로 한 달간 산속에서 보내야 할 내 자신도 준비에 열중했다.
마지막 티하우스가 있는 로낙. 현지인들은 여기까지 와서 야크를 방목하곤 한다.
산신께 모든 것 맡기니 마음 편해져
이번 행사를 함께 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온 알리앙이라는 젊은이와 실비아, 그리고 스위스 처녀 알렉시 세 외국인과 합류하여 안전하고 유익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호텔에서 미팅, 또 미팅을 했다. 네팔 국영TV에서도 이번 행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방송제작진이 찾아왔다. 물론 이제 수준급 프로로 자리 잡은 KBS의 다큐멘터리 ‘산’ 제작진도 함께 했다. 이거종 KBS 국장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왔으니 관심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다음날, 국내선으로 비엔나가르로 출발.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타플레중으로 가는 비행기 운항이 취소되었단다. 그 대안으로 버스 한 대가 준비되었는데, 30분이면 갈 그곳을 이틀 동안 가야 된단다. 그것도 비포장도로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짐을 싣고 출발. 이건 길도 예술, 운전도 예술이다. 기막힌 상황을 눈 딱 감고 히말라야 신에게 ‘우리를 무사히 타플레중까지 데려다 주십시오’ 하고 빌었다.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시골에서 하룻밤 지새고 새벽 4시 또 출발, 차로 유명한 일람을 거쳐 늦은 밤 드디어 무사히, 정말 무사히 무진장 덜컹거리며 잘 도착하였다. 그 때 그 운전기사에게 다시금 깊은 고마움을 보내고 싶다. 왜냐하면 아무나 그런 신기에 가까운 기술를 발휘 못하니까.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운전기사가 최고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와 네팔은 그런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캄바첸의 야영장. 실비아(프랑스)와 알렉시아(스위스)가 4,100m 야영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늦은 시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텐트 속으로 들어갔으나, 여간해서 잠은 오지 않는다.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 산행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밤새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으나, 새벽녘 빗소리에 깬다. 이른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우렁찬 한 대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드디어 산행을 시작.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며 고즈넉한 시골길을 가는 여유를 즐기면서도 저 멀리 버티고 있는 큰 산을 생각하니 왠지 좀 불안하기만 하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다친 왼발이 결국 기분 나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대원들에게 걱정 끼칠까봐 억지로 잘 걷는 척을 하자니 비틀거리기 일쑤. 눈치 챈 친구 전 사장이 옆에 가까이 붙어 다소 마음이 놓이긴 해도 걱정이 태산이다. 다치고, 치료 중에 또 다치고,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 가면서 ‘그래도 나는 꼭 갈 거야. 캉첸중가에 꼭 가고 말 거야’ 하며 집념을 갖고 왔는데, 이제는 산신에게 다 맡겨야지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진다.
시골 들녘 같은 캠프장 프름부에서 텐트를 치고 무사히 하루를 마친 기분이 날아갈듯 너무 좋다. 자아, 내일은 치루와(Chhiruwa·1,270m)까지 가는 거다. 머리 위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에 별을 보며 잠깐 동안 서울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예쁜 두 딸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만큼 설산이 보인다. 왜 이리 가슴이 뛰냐. 아직도 갈 길은 먼데.
베이스캠프에서 모은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하고 있다.
출발하는 대원, 셰르파, 포터 40~50명이 장관을 이루며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정겹다. 이 속에 내가 있다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치루와에서 1박 후 암질로사(Amjillosa·2,500m)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 타메와를 거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빨리 수목한계선을 넘어 빙하와 만년설이 뒤덮인 캉첸중가와 얄룽캉을 보고 싶다.
타메와에서 텐트 치고 잘 때 어느 사이 달라붙은 거머리를 생각하니 웃음부터 난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배꼽 바로 밑에 붙어 어느 사이 땅콩 알만하게 피를 빨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암질로사에서 밤늦도록 포터들과 ‘레산빌릴리’ 노래로 어깨동무하며 한 잔씩 나누는 술잔에 더 할 수 없는 인간적 감성을 느꼈는데, 이것은 산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갑자기 그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으려나.
암질로사에서 길고 긴 오르막을 지루하게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이 갸블라. 이젠 기온도 산소도 어제와 다르다. 하기야 3,000m 가까이 왔으니 내일은 정신적 한계선인 군사까지 간단다. 새벽에 잠이 깨어 밖을 보니 저 멀리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그 아름다운 설산과 눈이 마주쳤다.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에 있는 누군가를 보는 그런 느낌이다.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큰 산을 보며 깊은 숨을 몰아쉬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갸블라 마을의 아이들과 아낙들이 카페트를 팔고 있다. 이곳은 티벳 계열의 종족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 마을이다.
아콩카구아 청소등반 마친 프랑스 청년도 참가
군사를 향해 출발하는 모든 대원들이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큰 산에 마음을 주어서 그런가 보다. 장엄한 열대우림 계곡을 하루 종일 걸으며 히말라야 산군 중에 이렇게 아름답고 싱그러운 산행길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니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히말라야 하면 거칠고 산소 없이 숨쉬기 힘든 그런 곳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너무도 안타깝다. 정말이지 히말라야 산중에 이곳 캉첸중가야말로 한번 산행에 여러 가지 깊은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잠깐 캉첸중가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이 산은 네팔, 인도, 그리고 중국의 3개국 국경을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티벳어로 ‘다섯 눈의 보물창고’라고 한다. 히말라야 8,000m급 14개 거봉 중 세번째 높은 봉우리로 네팔 동쪽에 있다. 산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오지만 이곳 캉첸중가쪽만큼은 발길이 뜸하다. 지금까지 한국인들도 원정대 수준에 약 50명 이내에 사람들만이 다녀간 걸로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어두워지기 직전 군사에 무사히 도착했다. 고소증세에 간간이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올라오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대원 모두 잘 걷는다. 내일은 이곳 군사에서 고소적응차 하루 쉰다니 느긋한 기분에 긴장이 풀린다. 해발 3,500m의 느낌이 몸으로 온다. 쉬는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내일 갈 길이 걱정이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비가 내린다. 한 대장 얼굴이 밝지 않다. 마음 같아선 출발을 서두르고 싶고, 대원들 안전을 위해선 출발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뭐 그런 것 같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30분 후 출발합니다.”
대원들이 술렁거린다. 그리고 한 마디씩 한다.
“비가 오는데 간데?”
출발 후 20~30분이 지나니 비구름이 걷히며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또 한마디씩 한다.
“역시 한 대장이야!”
트레킹 도중 베이스캠프 근방에서. 실비아, 알렉시아, 김종선 대원, 아리안(왼쪽부터)
씩씩하게 걷는다. 오늘은 캄바첸(Kambachen·4,000m)까지다. 수목한계선을 넘기 시작하니 비로소 이제 멀리 깊이 걸어 들어왔구나 싶다. 캄바첸에 가까이 가니 계속 여기 저기 장엄한 연봉이 눈에 보인다. 야크 행렬도 빈번하다. 그 크고 우람한 나무들도 잘 안 보인다. 대신에 더욱 아름다운 야생 꽃들이 우릴 반긴다.
숨이 턱에 와닿아 온몸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다. 고도계를 보니 4,000m에 가깝다. 군사까지만 해도 견딜 만했는데, 산악인이며 스위스 의사인 뒤낭은 7,500m가 죽음의 지대라고 했는데, 겨우 4,000m인 여기가 나의 한계란 말인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온 친구들은 역시 산악국민답게 다람쥐처럼 잘도 걷는다. 산에 오면 그렇게 행복한지 온종일 웃기만 한다.
우리와 함께한 이들을 잠간 소개해야겠다. 이들도 누구 못지않게 산을 사랑하며 특히 프랑스 젊은 친구 알리앙은 대학에서 환경학을 공부했으며, 그 배움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남미 아콩카구아까지 올라 버려진 많은 쓰레기들을 모아 25kg씩 배낭에 지고 10km 넘는 힘든 길을 여러 차례 왕복하며 깨끗한 산 만들기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친구다.
그러던 차에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도 한왕용씨가 히말라야 14개 거봉을 클린마운틴이라는 이름으로 청소행사를 계속 해오고 있는 것을 알고, 한왕용씨에게 연락하여 이번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이뤄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와 함께 참여한 실비아, 스위스에서 온 알렉시 모두 산악인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 음식도 곧잘 먹는다.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원더풀!”을 외친다. 무사히 캄바첸에 도착하여 천근만근에 몸을 끌며 입맛 없는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캠프장 옆이 야크 목장이라 밤새 뎅그렁거리는 종소리에 잠을 설쳤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오늘 목적지 로낙으로 향해 출발했다. 4,700m까지다. 이거종 국장은 어느 사이 저 멀리 뒷모습을 보인다. 어떡하면 좋은 화면을 만들까 고민하는 프로정신에 가득 찬 카메라맨의 모습에서 중년의 깊이를 보는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빙하와 둔덕, 그리고 설산들, 가까이 보이는 캉첸중가. 아, 이제 거의 다 왔는가 보다. 이렇게 힘든 걸 보니. 어디선가 탱크 이동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저만큼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보인다. 이 자연의 신비감을 어떻게 표현하나. 폭포 위가 갑자기 궁금하다. 폭포 위에 물안개가 그윽해 마치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 같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더니 드디어 로낙에 도착했다. 더 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석양의 아름다움을 잡으려고 카메라를 들으니 어느 새 어둠이 깃든다. 속속 도착하는 대원들 모습이 상기되어 있는 걸 보니 내일의 기대감 때문일까. 내일은 드디어 최종목적지인 캉첸중가 베이스캠프다.
팡페마 베이스캠프에서 1999년 사고를 당한 두 대원의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이는 모든 대원들이 다른 날과 좀 다른 것 같다. 서서히 오르는 오르막도 평지도 아닌 길을 한 발 한 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고 보니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여기가 베이스캠프인 팡페마(Pangpema·5,143m)다. 도착의 기쁨도 잠시. 캉첸중가 바로 앞 베이스캠프 옆에 서 있는 바위에 조그만한 추모석이 보인다.
1999년 KBS에서 야심차게 제작을 진행했던 캉첸중가 등반 생중계 중 현명근 기자가 순직했다는 얘기는 어디선가 들었는데, 이곳이 그곳인가 보다. 산악인 한도규님도 당시 세락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단다. 저쪽 빙하 옆에 당시 세락 현장이 보이는 듯하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최선을 다하다 최후를 마친 두 분의 순직현장이다.
환경운동 참여로 인생의 기쁨 맛봐
아침 일찍 일어나 베이스캠프 구석구석을 뒤져 10년 전, 20년 전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우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오후에 하산길을 재촉했다. 이번 클린마운틴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거리상으로도 멀고 지형적으로도 접근이 쉽지 않은 이곳까지도 여러 나라 제품(?) 쓰레기들이 널려져 있고, 그 중 우리 한국인들이 버린 쓰레기들도 적지 아니 있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이런 환경운동을 해나가야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를 통해 네팔 현지인들인 셰르파와 포터들이 자국의 자연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하는 정신운동으로 자리 잡아 갔으면 더 할 수 없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운동단체나 산림청, 기타 단체에서 우리 산만이라도 우리 손으로 아름답게 가꾸어나가는 그런 운동이 자리를 잡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 자신부터도 그곳을 다녀온 후, 조그마한 무엇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습관이 붙은 듯싶다.
이제 이 자연환경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나로선 새로운 인생에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 같아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행사에 자주 참여할 생각이다.
청소를 마친 대원들이 캉첸중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글 김종선 대원 / 사진 클린마운틴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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