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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감독님을 추모하며
무스탕 남걀 마을 소수력발전소 프로젝트
2002년 ABC부터 2006년 무스탕까지 나와 함께 5번의 트레킹을 같이 한 가이드는 삼툭 구릉 라마였습니다. 나보다 5살 젊은 삼툭은 무스탕 로만탕 위 남걀 마을 출신으로 90년대 초 대구 자동차 관련업체에서 5년 간 일을 하고 돌아가 고향을 떠나 포카라에서 가이드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잘 하는 덕분에 한국인 트레커와 방송국 팀에서 많이 찾았습니다.
첫 트레킹 때는 타멜의 한 여행사에서 상담을 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트레킹을 마치고 <네팔사랑>에 후기를 올리자 카페 회원으로 이미 두어 번 삼툭과 트레킹을 한 이상규님과 김옥희님이 삼툭을 추천했습니다. 여행사가 아닌 가이드를 직접 고용하면 경비가 많이 절약됩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한국어로 대화가 되니 트레킹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 삼툭이 2006년 2월 한국에 왔습니다. 고향 남걀 마을에 작은 수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모금 때문이었습니다. 삼툭의 방문 소식을 야크존에 올렸고 2004년 삼툭의 안내로 무스탕을 찍은 독립다큐멘터리 이성규 감독님도 자신의 블로그(창작집단 917)에 삼툭의 방문을 알렸습니다. 마침 그는 그때 찍은 다큐멘터리 2부작 <은둔의 땅, 무스탕>을 KBS 아침 방송에서 일주일 동안 소개하는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1963년생인 이성규 감독님은 춘천 출신으로, KBS춘천방송총국에서 라디오 구성작가로 방송을 시작했으며 이후 다큐멘터리 전문 프리랜서 PD로 활동했습니다. 인도의 인력거꾼의 삶을 다룬, 2011년 개봉한 <오래된 인력거>는 1999년부터 2009년에 걸쳐 10여년 동안 열정을 담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네팔 무스탕에도 깊은 애정을 담아 2004년과 2007년(천상고원 무스탕-MBC) 각 2부작(총4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성규 감독님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개봉을 앞두고 2013년 12월 13일, 50세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의 별세 10주기를 추모하며 그의 블로그에 있는 무스탕 남걀 마을 소수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당신의 헌신적인 노력을 소개합니다. 다시 한 번 이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다큐멘터리 <은둔의 땅, 무스탕>
안테바신
2006. 2. 11
다음 주, KBS <세상의 아침> 2부에서 소개할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는 2년 전 KBS 수요기획을 통해 방영된 바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똠방이 촬영하고 연출한 작품인데요... 이번엔 원고또 쓰고 출연까지 하게 됐네요.
2월 13일(월) 부터 18일(토)까지 매일 아침 7시 10분 경,
KBS 2TV <세상의 아침 2부>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답니다.
KBS 2TV <세상의 아침>
제목 : <은둔의 땅, 무스탕>
방송 : 2006년 2월 13일(월) ~ 2월 18일(토) 아침 7시 10분
KBS 2TV <세상의 아침 2부>에서
촬영 연출: 이성규
내용: KBS 2TV <세상의 아침>에서는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무스탕을 집중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네팔의 히말라야 깊은 곳, 무스탕은 오랫동안 금단의 땅으로 알려진 곳이다. 외국인에겐 1992년이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해발 4천 미터의 고산왕국 무스탕은 16세기 티베트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유네스코로부터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찬사를 듣고 있다. 오랫동안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됐던 금단의 땅 무스탕. 한국의 방송사가 단 한번도 촬영하지 못한 ‘은둔의 땅, 무스탕'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미 2년 전 KBS1을 통해 방영된바 있다. 그 내용이 아침 방송용으로 재편집되어, 다큐멘터리를 촬영 연출한 이성규 감독이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해 보다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스탕 왕국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오지 중의 하나다.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왕국으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북쪽과 티베트 고원 사이에 놓여있다. 길은 하상, 절벽, 협곡, 계곡, 구릉,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으로 이어진다.
2억4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던 바다 밑이 6천만 년 전, 현재의 인도와 아시아 두 개의 대륙판이 충돌하면서 지상으로 서서히 밀려올라 형성된 곳으로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길의 고도는 해발 2천700m에서 4천100m 사이에 놓여있다. 무스탕에서 펼쳐지는 계곡들은 미국의 그랜드 케년 그리고 빅토리아 폭포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잠비아 계곡보다 깊고 넓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말라야의 사막이라고도 불리는 무스탕 왕국에 이르기 위해선 반드시 ‘고행의 길’을 가야만 한다. 교통수단은 오직 도보뿐이다. 가까운 공항에서 무스탕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꼬박 4박 5일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무스탕의 산들은 헐벗어 마치 구도자들의 마른 몸과 같다.
걷고 걷고 걸으면서 풍경에 동화하고 구도자 정신에 감응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황량한 풍경 안에 위대한 영혼이 있다’는 말이 적용될 지역을 오늘날의 지구상에서 찾으라고 하면 단연 무스탕일 것이다.
외국인이 무스탕에 가기 위해선 열흘 기준으로 미화 700불의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 무스탕의 외국인 출입에 대한 제한 규정은 고산지대의 환경과 문화를 보호하고 티베트와 인접한 국경지역의 보안과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1편. 히말라야에서 만난 부처
오늘날의 문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시간의 변화와 혜택을 던져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의미와 가치 앞에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대인.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가끔씩 문명의 대로에서 벗어나 장엄한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고 싶어 한다.
히말라야의 사막, 무스탕에서 제작진은 이곳의 마부 참보 그리고 티벳 승려 싱기를 만나 광활한 대자연 속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해발 7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만들어낸 장대한 협곡, 그리고 협곡 사이사이 화석처럼 옛 삶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주민들. 도대체 이런 황량함 속에 신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승려와 마부는 여정 속에서 그 비밀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한다. 신이 무스탕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소금 절벽, 황량한 고원 위에서 산고를 겪으며 어린 생명을 낳고 있는 염소와의 눈물겨운 대화. 여정은 신의 선물, 생명, 사랑, 업, 나눔, 봄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행복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때문에 우리가 만난 승려, 마부, 목동, 농사꾼, 처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야크, 말, 원숭이, 염소를 비롯하여 나무 계곡, 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은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가치 있는 삶의 이미지, 바로 부처의 얼굴이었다.
2편.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히말라야의 깊은 계곡 안쪽 무스탕의 작은 마을 냠걀(해발 4천 미터)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소박한 붉은 사원이 하나 있다. 냠걀 사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원으로 알려진 곳으로 외국인에겐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비밀의 사원이다.
강렬한 태양빛의 음영과 자연색감이 빚어내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함을 엿볼 수 있는 구원의 안식처다. 이 사원을 중심으로 냠걀 마을 사람들은 가장 원초적인, 불교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종교적 삶을 살아왔다.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는 냠걀 사원을 중심으로 승려의 길을 선택한 7살 박이 텐진 구릉이 승려가 되가는 과정과 이를 보살펴 주다가 바람이 되어버린 할아버지 걀첸구릉(67)의 애잔한 이야기를 큰 흐름으로 담고 있다.
흙바닥을 뒹굴며 경전을 읽는 천진난만한 코 흘리게 아이들과 어린 손자의 삭발을 지켜보는 할아버지. 그리고 노승의 품에 안겨서 불경을 읽는 텐진 구릉. 이러한 풍경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남걀 사람들에게 있어 승려가 된다는 것은 전생의 공덕이 발원한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남걀 사람들은 후세를 위해 현세의 공덕 쌓는 일에 부족함이 없다. 비록 가난하지만 베품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공동체 의식, 그리고 어른에 대한 공경, 우애 등등 사람이 갖춰야 할 규범과 예의 모두를 실천해 나간다.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 조금씩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 부처는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히말라야에서 날아온 인연
안테바신
2006. 2. 11
"성규씨! 빅뉴스... "
편집을 하던 중이었다. 가장 신경이 예민해질 때는 몇 시간이고 아니 며칠이고 편집기 앞에 앉아 있을 때다. 그러기에 아내는 내가 편집기 앞에 앉아 있을 땐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을려고 노력한다. 전화에서 평소와는 달리 호들갑을 떨고 있는 아내. "삼뚝씨가 지금 인도방랑기에 와 있어" 히말라야 은둔의 땅 무스탕에서 온 사람.
순간 내 마음은, 편집기의 모니터에 비쳐진 네팔 무스탕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땅, 아름답다고 그렇다고 척박한 황량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히말라야의 고원지대.
삼뚝씨는 네팔의 히말라야쪽으로 촬영을 떠날 때마다 함께 했던 네팔인이다. 은둔의 땅으로 알려진 무스탕 출신으로 한 때는 대구 지역에서 노동자로 일한 바 있다. 그래서 약간의 한국어를 할 줄 알며(지금은 상당히 잘함), 그 한국어를 통해 히말라야 산악 가이드를 하고 있다.
2년 전 그와 함께 무스탕을 올랐다. 그 아름다운 신비의 고원에서 20여일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그 곳의 이야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KBS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집으로 방영했다. 삼뚝씨는 가이드이기도 했지만 무스탕 주민이기도 해서 당시 다큐멘터리의 몇 장면에서 그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겐 정말 반가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한국행은 뜬금없었다. 그로선 한국을 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런데 무슨일로 온거래?"
사연이 있는 한국행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지만, 무스탕은 은둔의 땅으로 포장되는 곳이다. 물론 은둔의 땅이란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은둔이란 단어에는 뭔가 남다른 냄새가 배어있다. 내게 있어서 은둔과 유목은 늘 가슴을 울려주는 단어다. 그것은 아주 어릴 때 부터였다. 그러기에 은둔이란 단어에서 오는 냄새는 무스탕을 필요 이상으로 포장한다. 지각의 마비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그런 면에서 히말라야의 고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무스탕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슴 설레게끔 하기엔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은둔의 땅이란다. 무스탕이 은둔의 땅일 수 있는 것은 외국인이 가려면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은둔이란 신비감을 일정 주는 것도 사실이다.
무스탕으로 가는 꿈은 1997년 부터 시작됐다. 그러던 것이 2004년이 되어서야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무스탕에서 정확히 21일을 지냈다. 삼뚝씨의 고향 마을인 남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걀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떠나려 할 때, 마을 사람들이 내게 부탁을 한 게 있다. 그것은 전기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아요. 당신들은 우릴 보고 순수한 정신의 광명 속에서 산다고 말을 하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의 현실은 어둡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전기가 필요합니다. 전기로 어두운 밤을 밝게 하고 싶어요. 아이들도 공부할 수 있게끔 환경도 조성해주고 싶기도 하고요. 감독님이 한국 가시면 무스탕의 남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올 수 있게끔 알아봐 주시면 좋겠어요."
여기에 대해선 이러쿵 저러쿵 태클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환경 혹은 정신문명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분들한 테 한마디 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은 전기와 같은 문명이 없는 곳에서 살 수 있는가? 당신은 이미 문명의 한 가운데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떠나려 하지 않으면서, 왜 그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 하는가?"
물론, 전기가 반드시 좋다고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상황에서 일정 대안은 제시해줘야 하지 않을까... 마을 사람들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한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나를 믿지는 말라고.. 약속 아닌 약속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아내와 함께 여기 저기를 타진했다. 전기가 들어가려면 어떤 방법이 최선이고 돈은 얼마나 드는지.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의 냇가에 작은 댐을 만들어 수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비용은 약 2천만원 정도.. 그런데 친 환경적인 설계와 배선으로 할 때 드는 비용은 무려 최소 1억이 넘는다.
2천만원 정도면 어떻게 모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스탕의 자연 환경으로 볼때 적합한 대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1억이 넘는 돈을 각출하기란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가 무스탕의 남걀 마을에 전기를 놓는 일은 유야무야 넘어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과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을 한 게 아니었기에, 그렇게 넘어가는 것에 이렇다 할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삼뚝씨가 한국에 왔다. 그의 방문 목적은 자신들의 마을에 전기를 놓기 위한 기금 마련과 마을 사원의 학교를 위한 지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란다. 가슴이 뜨끔거렸다. 약속 아닌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대구 인도방랑기에 와 있다.
참 묘한 우연이다. 다음 주 부터, 무스탕 이야길 방송에서 소개하게 됐는데, 그 땅에서 삼뚝씨가 온 것이다. 그 것도 지금 대구 인도방랑기 식당에... 아직 자세한 이야길 나누진 못했다. 일요일 서울로 그가 오겠다고 했다. 전화 통화에 따르면 수력 발전 시설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는데, 생각 했던 것 보다 돈이 적게 모였단다.
네팔에서 만난 한국의 유명인사들이 이것 저것 약속을 해놓곤 정작 자신이 한국에 오니까...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저기 환영 모임만 열어 줄 뿐이란다. 삼뚝씨는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유명인이다.
앞 뒤 안가리고 약속하는 인사들도 있었겠지만, 나름대로 고민이 있는 인사도 있을게다. 내 경우 변명을 한다면, 수력발전이 돈은 적게 드는데, 그건 대안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 친화적인 설비로 하자니 돈이 안 따라 주고... 그래서 그 약속을 유야무야 넘긴 분들도 있을게다.
자세한 내용은 이번 일요일 삼뚝씨를 만나봐야 알 것 같다.어찌됐든 무스탕은 이렇게 우연으로 다가와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만다.
2006년 2월 11일
편집을 하다 밤을 샌
토요일 새벽 여의도에서
아래의 글은 오늘 방송이 끝난 뒤,
히말라야 관련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삼뚝씨가 한국에 온 이유?
안테바신
2006. 2. 14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이성규라고 합니다.
이 곳에 오시는 분들 가운데
삼뚝 라마씨를 기억하고 알고 계신 분들 참 많으실겁니다.
그리고 그가 무척 착한 사람이란 것을
경험해보신 분 들도 계실겁니다.
삼뚝 라마씨가 한국에 와 계십니다.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가이드이긴 하지만
그가 한국에 바람 쐬러 놀러 올 정도의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무스탕의 남걀 마을을 비롯해
세 개 마을의 대표선수 자격으로 한국에 온겁니다.
이상하죠?
한국에서 지금 무슨 국제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대표선수라뇨....
속사정인즉 이렇습니다.
무스탕을 다녀오신 분들이 몇 분 계실 겁니다.
임현담 선생님이 한국인 가운데 가장 먼저 다녀오셨죠.
그리고 홍순창 교수님을 비롯해 사진작가 선생님들,
혹은 저와 같은 저널리스트들...
저는 무스탕을 2년 전이 되는,
2004년 3월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정확히 21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죠.
현재 그 다큐멘터리가 재편집되어
KBS2TV <세상의 아침> 2부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은둔의 땅, 금단의 땅, 지구이 마지막 샹그릴라
이렇게 화려한 미사여구가 붙은 땅...
하지만요. 실제적은 무스탕은
님들이 생각하신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두 세개 마을 단위로 위성전화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고요.
로만탕 처럼 큰 곳은 수력을 이용한 자가발전 시설이 있어서
전기도 들어오고 텔레비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긴 하지 않지요.
그 것은 환상을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상은 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팔아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입니다.
환상을 깨버리면 손님들이 오지 않거든요.
순수와 신비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좋은 상품입니다.
무스탕의 자연 환경이 정말 대단한 것임엔 틀림없습니다.
이미 몇 분의 사진이나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신 분들은 '으악'하셨을겁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순간 우리는 아주 겸허해 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을 닮은 사람 처럼 보여집니다.
무스탕으로 가는 길은
마치 신과 동행하는 여행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곳에도 산업문명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이리얀자야의 원시부족 같은 사람들이 아니기에
바깥 세상과 소통 할줄 압니다.
중국 국경에서 무스탕의 로만탕 까지는
비포장 도로이긴 하지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겼습니다.
물론 네팔 쪽에선 걸어가는 방법 말고는 아직 없습니다.
삼뚝씨가 한국에 온 이유는
문명의 때를 긁어서
무스탕에 묻히기 위해섭니다.
아주 순수하고 순수한 인간들 삶의 원형을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무스탕에 말입니다.
삼뚝씨의 고향인 남걀 마을을 비롯해
인근 마을 주민 250여명을 위한 자가발전을 만들기 위한
모금 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답니다.
한국의 누군가 혹은 어떤 단체하고
사전에 이야기 되어 온 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무작정 온 겁니다.
저는 이렇습니다.
삼뚝씨의 희망대로 우리가 움직이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그 곳에 설치될 발전시설은
수력발전입니다.
오래전 우리의 물레방아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댐을 만드는 방식이 아닙니다.
물론, 보다 효율적인 수력바런을 위해
물길을 만들긴 한답니다.
그리고 전선은 지상에
흉하게 올리는 전봇대 방식이 아니라
지하 매설로 한답니다.
현재 45가구 250여명의 주민들이 필요한 전기 용량은 15kw입니다.
거기에 25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50여 분의 스님들이 계시는 남걀곰빠(사원)에서 사용할 전기까지 포함입니다.
이 용량은 한 가구당 340w도 채 안되는 적은 양입니다.
어지간한 백열등의 전기 용량이 60w란 것을 잊지 말아주시길...
작은 전기 난로 하나가 소모하는 전기 용량이 1kw입니다.
한가구당 340w란 용량은
한국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냉장고 하나 돌리는 수준도 안될 만큼 극히 적은 양입니다.
예전에 무스탕 사람들은 전기가 없어도 잘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전기를 전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문명이 주는 달콤함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연회귀 혹은 생명운동 운운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가 주는 편리함을 벗어나서 사는 분은 없을겁니다.
저는 강원도 촌놈 출신입니다.
기억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홍수로 나무 다리가 해마다 무너져 내려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말입니다.
다리만 무너지면 학교를 가기 위해
정말 먼 곳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미군들이 와서 시멘트로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주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비가 아무리 와도
걱정없이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자.. 말이 본론도 안들어 갔는데 길어집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삼뚝씨에게 힘을 줍시다.
십시일반이라고
단 몇 푼의 적은 돈이라 하더라도
하나하나 추렴해서
그들의 발전시설을 만드는데 힘을 보탭시다.
그 엄청난 풍광이 있는 곳에
무슨 전기냐 하시는 분들 분명히 계십니다.
괜한 일 해서 그들의 순수한 마음에
때 묻히지 말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충분히 예상합니다.
지금 그들이 원합니다.
우리의 도움을 얻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삼뚝씨를 대표선수로
한국에 무작정 보냈습니다.
사실 삼뚝씨가 무작정 온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다니며 많은 분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미 만난 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이번 모금에 참여하신 분들에겐
삼뚝씨가 영수증까지 발행해드립니다.
히말라야를 다니다보면 일본인들이 마을에 기부를 한 흔적을
참 많이 봅니다. 다리며.. 학교 병원들을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기부한 흔적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물론 있긴 하더군요..
그러나 일본인들에 비하면
코끼리와 개미를 비교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원활한 모금을 위해 통장을 개설하겠습니다.
님들의 관심과 참여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모아질 기금은
우선적으로 발전시설을 만드는 것이고
두번째로 마을 근처 절벽에 있는
남걀 사원의 교육시설과 프레스코 그림 유지를 위해 쓰여집니다.
여기에서 똔이 더 모아지면
학교와 같은 교육시설 개선을 위해 사용될것이라 합니다.
님들이 말하는 그 착한 삼뚝씨에게 힘을 줍시다.
마치 정치 유세하는 기분 같아 조금 마음이 껄끄럽습니다.
2006년 2월 14일
여의도에서 똠방-이성규 올림
삼뚝의 방문 - 와송굴 대원스님의 글
안테바신
2006. 2. 15
와송굴의 대원스님이 쓰신 글을 옮겼습니다. 삼뚝씨가 준비해 온 영문 서류를 번역하시면서 올린 스님의 글입니다. 대원스님은 선방에 계시지만, 야크존이란 히말라야 트레킹 사이트의 운영자이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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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가이드 삼툭 구릉 라마가 토굴을 방문했다.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왔다는 것을 임현담 님의 글을 보고 알았다.
외부 손님은 일체 방문을 사양하고 있지만 예외없는 법칙은 없는 법. 멀리 외국에서 온 손님이니 마중을 나가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 의령의 한 절에서 이삼일 머물다 얼마 전 랑탕 고사인쿤드 트레킹을 같이 한 밀양의 이계영 님과 연락이 되어 차를 얻어 타고 왔다.
옹색한 토굴에서 하루 밤 머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어렵게 한국에 온 동기는 고향 무스탕 남걀 마을에 조그만 수력발전소 건립 사업을 위해서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0여년 전 한국에 거주할 때부터 알던 주지 스님들이 몇 명 있어 그분들에게 도움을 청할 모양인데 자세한 내용은 말을 하지 않으니 잘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트레킹 손님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툭은 고향 남걀에서는 성공한 인물에 든다. 네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한국도 다녀왔고, 빚을 지고 사긴 했지만 수도 카트만두에 집도 장만했다. 그래서 그의 집은 고향사람들의 카트만두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다. 트레킹을 갈 때마다 그는 버터를 구해 간다. 집에 오는 고향 사람들에게 버터차를 끓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런 그가 고향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번에 보내 온 달력을 보니 무스탕지역 개발위원회의 위원회장 직책을 맡고 있다. 무스탕 지역이라고 했지만 내용을 보니 고향 남걀 마을이다. 아직도 전기가 없어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사는 고향 마을에 조그만 발전소를 세우는 일이다.
트레킹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롯지라도 전기가 들어오는 곳과 그렇지 않는 곳은 차이가 확연하다. 전기 없는 롯지에서 지내다가 작은 전구나마 전기불이 들어오는 방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편안했던가.
그런데 무스탕의 많은 마을들은 트레킹을 위한 인위적인 롯지가 아닌 자연부락임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초 우리 어릴적 호롱불 아래에서 살던 상황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그들의 삶이 얼마나 답답하고 고달플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발전소 건립에 드는 총경비는 우리돈 3,500만원. 그 중 정부에서 50%를 보조해 준다니 나머지 50%인 1,750만원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그 액수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한두 팀이 부담하기에는 많겠지만 몇몇 단체가 함께 도와준다면 그리 어려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인 생각이고 정작 도와 달라고 하면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대는 일이 다반사다. 무스탕에 대해서 생소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도 언젠가 한 번 삼툭을 앞세워 무스탕을 방문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무스탕에 대해서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분위기만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설령 무스탕을 잘 안다고 해도 현재로선 도와줄 형편이 안되니 그저 노자나 조금 주며 격려하는 일외엔 별 수가 없다.
네팔에서 한국비자 받기도 어려워 한국 스님이 티벳 스님을 초청하는 방편을 써서 무사히 비자 받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라마승 출신답게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이 내겐 오히려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삼툭이 떠나면서 영어로 된 문서 두 장을 번역해 달라고 한다. 이른 바 모연문이다. 어제 번역을 마치고 이메일로 보냈다. 떠나던 날 건천역에서 대구로 가는 열차에 오르는 삼툭을 보며 부디 비싼 차비들여 한국에 들어 온 목적이 잘 이루어지길 축원해주었다.
2006년 2월 13일
무스탕 사람들이 준비한 서류
안테바신
2006. 2. 15.
아래의 서류는 와송굴 대원 스님께서 번역하신 문서입니다
보다 본격적인 모금활동이 이제 이뤄질 겁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바랍니다
2월 16일 정오까지 모금액입니다.
안테바신
2006. 2. 16
은둔의 땅, 무스탕에 있는 남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수력발전기 설치 모금운동이 진행중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시는 분은
"은둔의 땅, 무스탕"이란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 가시면 됩니다.
일련의 과정을 적은 글들이 있습니다.
2월 16일 정오까지 제 통장을 통해
모금된 금액은 3백 16만원입니다.
삼뚝씨가 따로 모금한 금액 30만원까지 합치면
3백 46만원이 됩니다.
제 희망은 님들과 함께
1,000 명의 마음을 움직이는겁니다.
천명의 마음이 무스탕으로 움직이면
한 분당 1만원씩. 천만원의 기금이 마련됩니다.
만약 이 희망이 이뤄진다면
저 척박하고 황량한 히말라야 고원에
작은 불 하나 밝힐 수 있게 됩니다.
전기가 반드시 모든 것의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의 밤하늘에
작은 점 하나 찍을 수 있다면
무스탕의 남걀 마을 사람들은
어두운 밤이 따듯해질겁니다.
그것은 나눔의 즐거움입니다.
님들의 관심과 사랑에,
무스탕의 남걀 마을 사람들과 삼뚝씨를 대신 해 감사드립니다.
히말라야의 깊고 깊은 인연
안테바신
2006. 2. 19
오늘 이 시간,
일요일(2월 19일) 아침 현재
무스탕 남걀 마을의
수력발전 설비를 위한 모금 액수는
2,0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정신없이 잤습니다.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스무시간 정도는 내리 잘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달게 잠을 잤는데 눈이 떠져 시계를 보니 고작 5시간을 잤을 뿐입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할게 없었습니다. 심심합디다.
컴퓨터 옆에 놓인 책 가운데 한 권을 들었습니다. <블랙 아테나> 서점에서 사 놓고는 지난 2주간 한번도 펼쳐보지 못한 책입니다. 800쪽이나 되는 양 가운데 50여 쪽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심심했습니다.
KBS2TV <세상의 아침>의 요청에 의해 시작한 방송이 끝났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무심한 듯 하면서도 깊나 봅니다. 어제 뵌 스님이 챙겨 주신 차 한잔을 지금 다려 마시고 있습니다. 함평의 연차입니다. 불자도 아닌데 참 이상하게도 불교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2002년 달라이 라마가 주관하는 "깔라차크라"를 인도의 보드가야에서 취재하면서 스친 인연이었습니다. 그 때 스친 인연이 참 많습니다. 건축학을 가르치시는 김교수님, 인도 연구소에서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는 나선생님, 귀산스님, 설오스님, 정우 스님, 링 린포체, 심지어는 리처드기어란 헐리우드 배우도 있습니다.
무심한 성격인지라 스친 인연을 꾸준히 맺지 못합니다. 그냥 '인연이 스쳐지나갔다' 이 정도로만 제 기억 속에 담겨져 있었지요. 헌데 그 때 맺은 인연들 가운데 몇 분이 이번 모금에서 그렇게 힘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스탕에서 삼뚝라마씨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한 방송도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방송일정과 삼뚝씨의 사연을 서로 맞물리는 인연이 되어 깊은 향기를 냈습니다.
방송을 보신 인연들이 연락을 해 주셨습니다. 방송이 모두 끝난 어제, 참 많이 지쳤습니다.지난 2주 동안 하루 평균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내와 함께 인연을 만나뵈며 인사를 드렸고, 아내가 대구로 간 뒤에도 삼뚝씨와 함께 인연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이미 히말라야를 통해 맺은 인연, 사실 이 분들과의 인연은 저와의 인연일 수도 있겠지만, 삼뚝씨의 깊은 인연이었지요. 그 많은 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시곤 적지 않은 돈을 보내오셨지요. 돈이라기 보다는 수억겁의 세월 동안 지금의 인연을 위해 다져진 '다르마'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무스탕의 황량한 고원지대에 사는 그들, 그리고 삼뚝씨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신 인연들의 선업이의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삼뚝씨를 모르셨지만, 히말라야와 티베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연결된 인연들도 있었지요.
대원스님 백산님, 백두산님 김소희님 정영주님 이유안님 강경남님 김영한님 박혜경님 김정연님 유은영님 김상희님 허정훈님 이경애님 홍희정님 최성렬님 김민조님 황명찬님 최유리님 이상국님 김민수님 김성중님 박영미님 김숙님 Thinktibet 회원님들 박영선님 그 밖에 성함을 일일이 다 올리지 못함을 용서해 주세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시작한 모금이었습니다. 어젯 밤 늦게 삼뚝 라마씨는 눈물 마저 글썽거렸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지난 밤 그는 소리 내어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무작정 한국으로 왔습니다. 자신들의 지인들과 사전 의논 없이 무작정 왔습니다. 그저 경희대 앞 카트만두 식당의 이용훈씨 만이 그를 도왔을 뿐입니다. 그의 한국행을 전혀 알지 못해서 도울 수 없었던 분들도 많으시지만, 알면서도 외면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국에 온 것은 자신들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전깃불 하나 달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그는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입을 열어보지도 이야길 꺼내 보지도 못했습니다.
익히 잘 알려진 작가 몇몇을 찾아갔습니다. 그 작가 선생님들과 삼뚝씨의 인연은 참 깊습니다. 그들은 히말라야의 순수와 신비를 노래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삼뚝씨를 외면했습니다. 외면은 얼굴을 보고도 못본 척 하는 게 외면이 아닙니다. 마음을 외면하는 것도 외면입니다. 그 분들 나름대로 속 깊은 사정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와송굴 대원 스님의 격려와 지원을 바탕으로 해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밖에 여기 저기 지원 받을 곳을 후배(상원)가 부지런히 알아봤고요. 인터넷으로만 모금을 하다가 어제 부터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고 인사를 다녔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고 시작한 모금이 히말라야의 오지 무스탕의 작은 마을에 전깃불 하나 켜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성원을 받고 모금 목표액을 넘어설 것으로 꿈또 꾸지 못했습니다.
무스탕의 남걀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돈의 액수는 1,750만원입니다. 그런데 지금 모금 액수는 2,0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목표했던 모금 액수를 훨씬 넘어선 겁니다. 사실 아내와 저는 모금을 시작하면서 아주 많아야 500만원을 넘어서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삼뚝씨가 희망하는 1,750만원은 멀고 먼 꿈 같았습니다. 그래도 십시일반이란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기적이었습니다.
이제 무스탕 남걀 마을을 수력발전기 설비는 물론이고 남결 사원의 아기 스님들을 위한 기숙사 시절 그리고 남걀 초등학교의 책 걸상 지원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불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부처님의 가피를 느낍니다. 모든 님들을 위해 티베트 불교의 진언을 올립니다.
"옴마니반메훔"
- 그대 가슴에 연꽃 같은 진리의 보석이 피어나기를......
2006년 2월 19일 여의도에서 이성규(똠방) 합장
남걀 마을 성금 이후 이야기
안테바신
2006. 5. 27
인도 답사에서 중간에 예정에 없던
공백이 생기는 바람에
비행기를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네팔의 카투만두를 다녀온바 있습니다.
놀러 간건 아니고요
..
지난 2월, 네팔의 무스탕에서 온 삼뚝 라마씨의 사연...
기억하시는지요.
무스탕의 남걀 마을에 수력발전소를 설치하는 사연 말입니다.
당시 2천 3백만원이 넘는 성금이 모아졌던 기적...
이 곳으로 저희가 이동했던 것은
지난 2월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무스탕 남걀)를 공급하자는
제안과 돈이 모여진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또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네팔의 정정과 관련해선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상태입니다.
삼뚝라마님이 한국에서 돈을 가지고
들어간 이후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카트만두 대학에서 소형 발전기 설비를 연구하고 있는 KOICA단원 기경석씨와 contact됨.
* 카트만두 대학팀에서 설치하는 것을 지도하기로 결정(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엔지니어와 기경석씨, 그리고 현지인 한분), 이에 따라 20만 네팔 루피를 절약할 수 있게 됨.
* 공사기간은 6월 1일 시작해 8월말까지 예상중(어쩌면 9월까지 갈지도)
* 네팔 정부가 공무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하는 상태라 조금 늦어질 가능성은 이 때문임.
* 가장 어려운 점은 발전기와 ipe를 비롯한 각종 설비 기자재를 헬리콥터로 운반해야 한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되려는 일은 엄청난 인연들이 연결되더라는 겁니다. 첫 번째는 기경석씨입니다. KOICA단원들은 한번에 500명씩 1년에 2팀이 파견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는 '국제협력요원'들입니다. 이들은 국방의 의무를 대체하는 이들인 만큼 주어진 tast이외의 일에 대해선 큰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좀 적은 편입니다.
사진은 삼뚝라마 댁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이 삼뚝라마고 오른쪽이 기경석씨입니다.
그런데 기경석씨는 바로 그 '국제협력요원'이라고 하는군요.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양반이 자신의 팀에서 연구하고 있던 그 발전기가 가장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지역으로 무스탕의 마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단원이 기경석씨 분야의 재미있는 일이 그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줬던 거고, 그 이후에 저희와 연결이 되었던 겁니다.
두 번째는 기경석씨가 있는 팀의 네팔 분이 바로 그 무스탕의 남걀마을 출신이라는 겁니다. 저희와 기경석씨가 contact된 후 현지에서 만날 때 또 한번 확인되었다는 군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전부터 되려는 일이었다 싶습니다. 하필이면 삼뚝라마가 한국에 찾아온 바로 그때 무스탕에 대한 아침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님들이 보내 주신 성원은 네팔에서 그 꿈을 무럭 무럭 카우고 있는 중입니다.
삼뚝씨를 비롯해 남걀 마을 분들이 고마움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남걀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결코 잊지 않을겁니다."
[편집자 주] 당시 네팔은 오랬동안 마오이스트들과의 내전으로 황폐해젔습니다. 2006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 기존의 절대군주국에서 잠정적으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었고 공산당이 정식 정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스런 네팔 국내정치 사정으로 정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지부지 하던 남걀 마을 소수력 발전소 건립은 201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발전소는 물 사용 문제로 로만탕 주민들과 분쟁이 있어 발전은 얼마 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다행히 몇 년 후 좀솜에서 전기가 연결되어 이제는 발전소가 필요없게 되었답니다. 결국 그동안의 노력이 헛된 감이 없지 않지만 그 과정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7년 전 야크존을 통해 후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첫 ‘이성규영화상’에 이마리오 감독
박종일 기자
2023.09.11
춘천영화제, 초심으로 돌아가 독립영화 주목
9개 부문 62편 상영···11일 성료
제10회 춘천영화제가 ‘영화의 봄, 낭만의 가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7일 공지천 ‘아울러’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11일까지 메가박스 남춘천점·아울러 등에서 개막작 〈오래된 인력거〉를 비롯하여 극영화 43편·다큐멘터리 12편·애니메이션 7편 등 9개 부문 총 62편 영화를 선보였다. 또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도 인권센터와 함께 지속가능발전을 주제로 한 ‘차근차근 상영전’이 열렸다.
올해 춘천영화제는 초심으로 돌아가 독립영화에 주목했다. 특히 영화제의 출발점이 된 춘천 출신 고 이성규 다큐멘터리 감독의 10주기를 맞아 ‘이성규 영화상’을 처음 제정해서 의미를 더했다. 첫 수상자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작은정원〉 등을 제작한 이마리오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마리오 감독은 “살면서 가장 큰 상을 받은 것 같다. 고 이성규 감독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논쟁도 많이 했던 좋은 동료였다. 최근 독립영화 예산이 크게 줄어 상황이 좋지 않은데 춘천영화제가 독립영화제의 초심으로 돌아와 기쁘다”라고 말했다.
영화제 기간 데뷔 30주년을 맞은 이준익 감독의 작품을 돌아보는 시간도 마련되어 안성기·박중훈·이준기·최희서·박정민 배우 등이 관객을 만났다.